법은 얼마나 정의로운가 - 법과 정의에 대한 19가지 근원적 질문들
폴커 키츠 지음, 배명자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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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시대일수록 서로에게 정의롭기를

 

지은이 폴커 키츠의 ‘법 이야기’다. 모든 법이 정의롭다고 생각하는 세상 사람들은 실제로는 아주 적다. 자신의 이해관계와 맞아떨어졌을 때, 법의 정의롭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너무나도 유명한 이야기다. 그만큼 법은 그 규율대상이 되는 사람의 행동만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행위자의 사회적 지위와 작업, 재산 등도 고려의 대상이 된다는 국민 일반의 생각이 반영된 것이다.

 

먹고 살기 힘든 사람이 굶는 자식에게 빵 하나를 가져다주려고 빵을 훔친 것이나, 나라의 경제를 뒤흔들 만큼 파장이 큰 범죄를 저질렀을 때, 우리는 누가 재판정에 서서 실형을 받으리라 생각하는가?, 당연히 나라를 뒤흔드는 경제범죄를 저지른 이가 감옥에 갈 것으로 생각한다면, 너무 순진한 것이다. 세상에 법은 있는 자에게 늘 유리하게 작동되는 마법의 지팡이나 도깨비방망이 같은 것이다.

 

진짜 그럴까, 극단적인 예를 들어 논한다면 그렇기도 하겠다. 하지만, 이 책에서 다루는 것은 미묘한 그럴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경계 판결이라 부르는 게 어울린다. 즉, 세계관에 따라 법의 적용 여부를 달리할 수 있기에 그렇다. 법은 예측 가능성과 기대가능성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렇지 못할 때, 나는 법으로부터 나 자신을 어떻게 지켜야 할 것인가?

 

이 책은 들어가면서부터 우리 머리를 아프게 한다. 철학자와 법학자의 차이는 뭐지라는 질문이 바로 그것이다. 철학자는 결론을 내지 않아도 되지만, 법의 결말은 절대 열려있어선 안 된다. 바로 예측, 예견, 기대가능성이 있어야 한다는 점 때문이다.

 

지은이는 법과 정의, 한참 사람을 헷갈리게 하는 19가지 근원적인 질문을 6부 20장에 실제 사건과 그에 관한 판결을 토대로 엮었다. 1부에서는 국가가 내 자유를 제한해도 되는가, 그리고 무엇인 폭력인지 그렇다며 나는 도대체 어떤 법을 따라야 하는가, 우리의 법 감정을 어느 쪽을 향하고 있는지를 확인해 볼 수 있다. 당신은 어느 쪽인가?, 2부에서는 나란 존재라는 열쇳말로, 우리에게 성별이 필요한가, 여자 아버지라는 존재에 관해서, 국가가 어디까지 개인의 사생활에 관여할 수 있는가,

 

이미 코로나19 재난 속, 대한민국의 민낯을 본 사람들에게는 흥미로운 주제이기도 하다. 다른 사람이 내 정보를 유포해도 되나, 평등지수, 우리는 얼마나 평등한가, 인간은 동물과 자연보다 우위, 우월적 존재인가, 3부에서는 개인의 자유를 다룬다. 종교, 표현, 예술, 양심의 자유가 그것이다. 4부에서는 내 삶과 생활 속으로 들어온 법률 쟁점이다. 가족, 국가가 보호해야 하는 가정이란, 아이가 학교에서 무얼 배울지 누가 결정하는가, 5부, 인간 같지 않은 인간에게도 존엄성이 있는가, 최근 인간이기를 거부한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경악, 극악 범죄자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 정당한 형벌은. 그리고 6부, 죽을 권리, 안락사, 생명의 가치

 

우리가 접하는 법의 세계에서 다뤄지는 주요 쟁점을 망라한 듯하다. 여기서는 표현의 자유와 개인의 자유가 겹치는 사건, 그리고 인간 같지 않은 인간에게도 존엄성 있느냐는 문제를 살펴보련다.

 

어떤 의견이든 자유롭게 표현해도 되는가? 군인은 살인자다

 

A는 자기 차에 군인은 살인자란 문구의 스티커를 붙이고 다니다가, 대중선동죄로 고소당하고 상고심에서도 패해, 약 500만 원의 벌금을 내야 한다. 그는 헌법소원을 냈다. ‘표현의 자유’는 진실 혹은 거짓이 명확한 것은 해당하지 않는다. 그러면 군인은 살인자라는 A의 주장은 사실의 주장? 개인의 의견 표명?, 사실의 주장이라면 허용되지 않는다. 거의 모든 군인은 형법상의 살인을 저지르지 않으니, 이는 사실상 의견 표명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니 판결은 뒤집힐 수밖에. 무죄다. 꼬꼬무 버전으로 그렇다면 한 인간의 명예는 언제 훼손될까? 하지만, A는 누구라고 특정하지 않았고, 전쟁에서의 살인에 초점을 맞춘 것이기에.

 

구조를 위한 고문 허용되나? 답은 안 된단다.

 

아이가 납치됐다. 빨리 못 찾으면 아이는 죽는다. 유괴범이 요구한 대로 돈을 줬건만, 아이를 풀어지지 않은 채 외국으로 도망가려는 B를 공항에서 잡았다. B는 그가 아는 다른 사람이 범인이라고 자백했다. 경찰은 아이가 어디 있는지 B가 알고 있다는 물증 등을 통해 확신했다. 그리고 아이 구조를 위해 이른바 부득이하게 고문했다. 생명을 살리기 위해…. 인간답지 않게 행동한 인질범은 스스로 인간의 존엄성을 버리지 않았는가?, 범인의 존엄성을 훼손할 수 없다는 이유로 결국 인질을 못 구하면 다들 마음이 편치 않다는 걸. 결국 B를 고문해 경찰은 아이를 찾아냈다. 법원은 법의 원칙을 적용했다. 죄는 벌하지만, 경찰에게는 "경찰의 명예로운 신념"이라는 논리로 각각 그 집행을 유예...

 

너무 싱겁지 않나. 그렇다 이렇게 법은 아무 맛이 없어야 정상이다. 이 책이 흥미로운 이유는 당연한 일이 왜 당연한지, 우리가 아는 게 맞는 건지를 되묻고 있어서다. 많은 쟁점을 소개하는 이 책은 하나씩 음미해보면서, 한국 사회에서 일어난 사건들, 그리고 판결들과 견주어 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일듯하다. 조금 머리 아프지만...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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