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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되지 못한 말들 ㅣ 문학인 산문선 3
김동현 지음 / 소명출판 / 2023년 5월
평점 :
제주, 우리 안의 식민지
이 책<기억되지 못한 말들>의 지은이 김동현은 1948년부터 시작된 제주 비극의 역사는 여전히 진행 중이라고, 제주 4.3항쟁이었든 사건이었든 이미 끝난 일은 아니라고, 진상규명이 끝이 아니라 그때부터 지속해서 이어져 온 식민지, 해결되지 못한 과거 역사와 그 역사가 잉태한 현재에도 제주도는 여전히 타자다. 대한민국이 기억하지 않은 바다 건너 섬, 제주도, 국가는 기억하지 않지만, 제주도민은 오랜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선명하게 기억한다. 제주는 하얀 눈 위에 떨어진 붉은 동백이다. 붉은 피다.
이 산문집에는 15개의 생각거리가 담겨있다. 도둑같이 찾아온 해방이 가져온 제주의 비극, 4.3의 중력과 1991년 5월의 기억들, 왜 제주에서 오키나와를 읽는가, 기억이 되지 못한 기억들, 사이를 읽다. 다시, 분단을 생각한다, ‘필연’이 되어버린 재일의 시어들…. 4.3과 5.18의 기억, 그리고 이어지는 1991년 세상, 분단과 재일동포작가들의 시어들, 이 모든 것들은 기억되어야 한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못한 말들로 남는다.
냉전 시대의 제주와 오키나와
제주 4.3 너머로 오키나와의 그림자를 본다. 여전히 미국기지인 오키나와 일본 본토(야마토)와 오키나와 인의 경계, 1969년 신문 지상에 오르내리던 오키나와 미군기지를 제주로 옮긴다는 이야기는 하나의 헤프닝으로 끝난 게 아니다. 오키나와 전쟁과 제주 4.3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고시홍은 <물음표의 사슬>(삶창, 2015)에서 제주 강정마을에 건설 예정인 해군기지, 주민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반대파의 입을 빌려 기지 건설의 배후인 미국의 제국주의적 속성을 그대로 노출한 날것 표현대로 그의 책에 담았다,
“이 해군기지는 오로지 중국을 압박하고 포위하는 7함대(미군 태평양통합사령부에 소속, 태평양 전역과 동북, 동남아시아 전역을 방어) 기지로 사용되기 위해 지어지고 있습니다. 미 제국주의 대(對)중국 해군기지 강력반대! 동북아에 전쟁을 몰고 올 강정마을 해군기지 강력반대! 평화의 섬 제주도에 군사기지 웬 말이냐? 4.3 영령들이 통곡한다. 60년 전에는 미 군정의 양민학살, 앞날에는 미 제국주의 전쟁기지!!.”
제주가 우리 안의 식민지라는 함축적 의미가 녹아있다.
제주 너머로 보이는 오키나와, 최근 한미일 안보동맹 미, 일은 진즉에 중국을 이른바 “가상적국”으로 규정했다. 한국은 중국에 관해서 이들과 조금은 다른 접근 태도를 보여왔다. 안보는 미국과 경제는 일본과라는 국익 우선주의의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를 해왔다. 한적하고 평화롭던 강정마을은 기지 건설 찬반론으로 들끓는다. 제주와 오키나와를 관통해왔던 냉전 질서는 역설적으로 지역의 근대가 폭력적 방식으로 기억을 억압할 수도 있다는 근대에 대한 근원적 성찰, 현기영과 김석희, 고시홍의 작품에서 4.3의 기억과 일본 작가 메도루마 슌, 오시로 사다토시, 그리고 오시로 다쓰히로의 작품을 불러온다.
기억이 되지 못한 말들
제주 4.3에 대한 문학적 사유 중, 국가 폭력의 문제를 제주 정체성의 훼손으로 바라보는 흐름처럼, 미군과 일본군이 일본 국내에서 지상전을 벌인 유일한 곳 오키나와 일본 내 미군기지의 80%가 오키나와에, 현실에서 미군기지문제는 오키나와 인들에게 현실적 위협이자 실존의 문제였다. 제주 4.3을 과거에 종결된 사건이 아니라 현재적 시간이 개입하는 과정으로…. 제주도 공동체의 존립을 위협하는 사건이라는 인식 속에. 지금, 한미일과 북중러, 특히, 대북, 대중관계 속에서... 미국의 이해를 대변하는 쪽으로 무게 중심이 쏠리는 한국...
누군가는 말했다. 싸워야 할 대상이 명확했던 그 시절이 차라리 행복했다고,
지금은 싸워야 할 대상도, 분노로 가득 찬 주먹을 휘둘러야 할 세상도 복잡해졌다고. 세상은 요령부득(要領不得)이고,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해버렸다고, 능력주의로 포장하는 불공평은 여전하고, 김동현의 이 책은 그저 제주 4.3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제주도민에게는 무엇이었나, 한반도의 통일과 평화, 그리고 강정마을의 해군기지는 오키나와의 미군기지와 어떤 맥락에서 같고 다른 것인가, 문학의 사회적 책임이란. 이런 생각을 불러 오게 해준 책이다. 김시종에게 일본에서의 삶, '재일'은 중력이다. 현실의 제약으로 다가온다. 김시종문학을 새롭게 읽을 수 있었다. 오래 전에 봤던 김시종의 글들을... 김석범 문학은 잘 알지 못한다, 찾아보련다...
우리 현대사의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은 과거가 아니다. 여전히 생각의 휴전(정전)상태다. 단 한 번도 어떤 사건의 진실이 속 시원하게 명쾌하게 밝혀진 적이 없다. 아쉽게도….
제주4.3, 여순항쟁, 해방정국에서 벌어진 국가폭력의 기억들, 그 너머에 미국의 군사기지 오키나와가, 그 닮은 꼴인 제주가보인다. 김동현 산문집 속에서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