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모사 1867 - 대만의 운명을 뒤흔든 만남과 조약
첸야오창 지음, 차혜정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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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모사 ”아름다운 섬“ 타이완은 1867 역사의 소용돌이 속으로

 

중국에서는 타이완(대만성)이라 부르고, 대만사람들은 중화민국이라 부른다. 우리가 아는 대만이란 우리처럼 일본의 식민지시대가 있었고, 1949년, 장제스 국민당 정부가 밀리면서 정부를 대만으로 옮겼고, 50년대에서 70년대까지, 중화민국으로, 이후 원 차이나 정책으로 1979년에 미국과 외교가 단절되고, 일본, 이어서 1992년에는 한국도 단교, 국제무대에서는 중화민국 타이완 등으로.

 

포르모사는 아름다운 섬(美麗島)의 별칭으로 포르투갈어다. 조선왕조실록(현종실록)에서에는 대번국(大樊)으로 표기됐다. 본래 네덜란드와 스페인의 동남아시아 방면 해상 거점이었고 다두 왕국 등 원주민이 거주하는 섬나라에 불과하였으나, 정성공(鄭成功,반청복명 운동을 했던, 중국의 아들이며 타이완의 아버지 격이다)이 동녕 왕국을 세운 뒤 본격적으로 중국사에 편입되었다.

 

국공내전의 과정에서 장제스의 중화민국이 패퇴하여 국부천대(국민당 정부의 대만 파천)가 이루어졌으며, 이에 1950년대부터 지금까지 중화민국(대만)의 영토 중 가장 큰 땅이자 중심지로 기능하고 있다. 이러한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대만은 명목상 과거 중국의 영유권을 모두 주장하는 나라이지만 실질적으로는 타이완섬이 곧 중화민국 그 자체로 인식되고 있다.

 

포르모사 1867년 우리가 몰랐던 ”대만의 아픈 역사 질곡 속으로“

 

1867년 일본, 도쿠가와 막부의 대정봉환(막부가 정부에 권력이양하고 막부폐지)과 왕정복고(메이지 시대)가 이뤄지는 이 해에 대만 남쪽에서 암초에 부딪혀 좌초한 미국 상선 ‘로버호’사건의 선원 10여 명이 배를 버리고 해변으로 도착했다가, 원주민에게 살해된 사건이 발생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당시 하문 주재 미국영사 이양례(찰스 윌리엄 드 장드르, 프랑인으로 미국으로 귀화, 후일 일본 외무성 고문으로 이름을 이선득으로 바꾸고, 대만점령에 관여했다가 이른바 토사구팽을, 이후 한국으로 건너와 경성에서 죽었다)는 이 사건에 주시, 사가라 족의 리더 탁기독과 교섭 끝에 남갑지맹을 체결한다.

 

지은이 첸야오창은 ‘로버호’사건이라는 어찌 보면 대만 역사에서 늘 있었던 양인과의 갈등 정도로, 타이완 역사에서조차 눈여겨보지 않을 정도로 취급됐던 이 사건이 훗날 타이완에 예상하지 못한 엄청난 결과를 불러일으킨 ‘나비효과’라 봤다. 1874년 일본의 타이완 침략, 1875 청나라 심보정의 개산무번으로 1885년 타이완을 성으로 승격시킨 타이완 건성과 1895년부터 1945년까지 50년간 이어진 일제강점기를 불러왔다는 것이다.

 

첸야오창의 타이완 삼부곡의 첫 번째 책으로 역사의 우연으로 시작된 나비효과를 하나의 거대한 서사 대하극으로, 우리가 몰랐던 타이완, 1867년 이전, 훨씬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다양한 민족이 존재했음을 고산족과 평지족, 생번, 객가인(화교)과 북로인 인 등 생소한 이름이 연이어 등장한다. 이들이 서로 살아가고, 충돌과 전쟁을 하면서도 서로 용서하고 공감, 공생하는 이야기를,

 

687쪽에 달할 만큼 많은 양의 이 책은 지은이 역사소설가 첸야오창의 프롤로그와 앞의 추천 서문 3편, 그리고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를 적은 에필로그 2편도 본문을 읽기 전에 훒어보는 게 좋을 듯하다. 실제 시공간, 사건의 인물을 주시하며 역사적 팩트를 바탕으로 지은이의 상상력을 더한 팩션이다.

 

나비의 작은 몸짓

 

타이완, 청나라의 지배권이 전혀 미치지 못한 곳을 고산지대를 생번, 괴뢰 등으로 불렀다. 외지에서 들어온 이들과 평지에 살았으며, 원주민 사이에서 태어난 이들을 토생자(혼혈)이라 부르는 숙번, 종족 간의 반목과 갈등, 타협 등으로 타이완은 그렇게 역사를 이뤄왔다.

 

이 소설의 주요 등장인물은 탁기독을 비롯한 원주민 생번과 그의 양아들 문걸과 문걸의 누나 첩매, 그리고 문걸과 첩매를 돌봤던 평지토생자 숙번인 면자와 송자, 양인 이양례(이선득)과 피커링, 맨슨, 청나라 관리 유명등, 왕문계 등이다.

 

이 소설의 핵심의 핵심을 꿰는 문걸의 깨달음

 

문걸, 생번의 총두목 사가라족 탁기독의 양자(실제는 외삼촌이다)로 생번이라는 정체성 속에서 38년 동안 끊임없이 몰려오는 강권세력을 상대하며 저자세로 대응하고 그럭저럭 양보하며 줄곧 협조해왔다. 그 덕택에 사가라족 사람들은 수십 년간 평화롭게 지낼 수 있었으며, 문걸 자신도 아버지가 바라던 청나라의 관리가 됐고, 조정으로부터 ”반“씨라는 성도 받았다. 낭교 18부락을 아우르는 총두목에 오를 수 있었다. 이런 감사의 표시가 부족의 자주권을 잠식하고, 자신의 통치권을 앗아갔다.

 

어느 날 문득, 그는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깨달음을, 현실에 눈을 뜨게 한 것은 넷째 아들이었다.

양부 탁기독의 의연한 대처를 떠올린다. 꼿꼿한 패기에 이양레도 그를 존경하고 두려워서 화의를 맺고 평화를 제한했던 것처럼, 그리고 그 패기를 바탕으로 양부는 사가라족을 지켰으며 아울러 부족의 정체성을 보존할 수 있었음을.

 

너무 늦게 깨달은 것인가, 조상의 영령을 지키고 자아를 지키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만약 항춘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면 사가라는 사라지고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문걸은 현명한 넷째 아들에게 조상의 고향이 보이는 곳으로 깊은 산속으로 옮겨가라고 한다.

 

격동의 근대를 살아온 타이완 원주민의 삶의 이력이다. 아니 어쩌면 최명희의 미완성 대하소설 ”혼불“ 어려운 근대 사회에서도 양반 사회를 지켜나가려는 기품, 평민과 천민의 고난과 애환을, 소설의 무대를 만주로 넓혀 그곳에 사는 조선 사람들의 비극적 삶과 강탈당한 민족혼의 회복을 혼볼에 담아 염원하듯,

이 소설은 문걸의 입을 통해 그의 평생을 회복하면서 자신의 힘으로 자신을 지킬 능력이 없으면 언제든 노예가 될 수 있음을. 몸으로 깨닫는 데는 시간이 너무도 오래 걸렸다. 아니, 일찍 깨달았는지도 모른다. 그런 자신을 합리화하며, 수렁 속으로 깊이 빨려 들어가는 척 하면서 스스로 들어가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른바 매국노라는 이름으로,

 

반문걸도 한때, 타이완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것 같았던 일본에 협력하며, 일본어학교를 만들기도 하고... 일본을 도와 청나라에 대항하기도 했지만 결국,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냉엄한 국제질서 앞에, 자력갱생의 길의 의미를 새롭게 깨닫게 된다는 대목. 지난 일은 그저 지나 간 일이 아니라 그만큼의 발자취를 남기는 역사다. 그 역사 위에 오늘이, 그리고 내일이 쌓여가는 것이다.

 

이 소설을 통해 타이완의 근대사를 들여다볼 수 있다. 우리의 근현대사와 오버랩되는 건, 아마도 나비효과 때문일까,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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