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이부치 - 단 한마디를 위한 용기
최덕현 지음 / 북멘토(도서출판)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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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이부치“ 라는 단 한 마디가 그렇게 어려운가?

 

최덕현 작가의 글과 그림<뚜이부치>는 난징 대학살의 기억, 1937년 난징에 들어간 점령군대 일본 육군 16사단 20연대 소속 육군소위 아즈마 시로(東史?는 남경대학살 50주년이 된 1987년 <아즈마시로 일기>를 세상에 내놓았고, 당시 기자회견은 아즈마와 모두 3명이 했다. 한 사람은 1937년 12월 13일 난징 일본군에 함락됐을 때 중국의 패잔병과 젊은 남자들 500명의 포로를 일제 사격으로 처형했다고 증언했다. 다른 한 사람도 숫자는 제시하지 않았지만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이 자리에서 아즈마는 ”나는 이것을 공표함으로 인해서 비난 받을런지 모른다. 또 목을 자른 장소, 일시도 써 있습니다. 중국측에서 알면 어떤 반응이 있을런지 모른다. 오늘 여기에 이르기까지 감출 필요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라고 이렇게 서두를 꺼내고 50년 전의 일기를 보여주었다. 6년 후, 아즈마의 전우이자 상관은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그를 고소, 일본 최고재판소는 2000년, 아즈마의 상고를 기각, 2006년 1월에 아즈마는 9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다.

 


 

 

그의 일기를 토대로 우치야마 가오루(內山薰, 필명)는 <난징 대학살, 기억의 암살>부제(아즈마 시로(東史郞)는 왜 재판에 졌는가)라는 책을 중국 베이징에서 2007년 12월31일에 출판했다. 학살사건 70주년에.

 

우치야마의 말에 따르면 재판소의 법정에는 두 개의 정의와 진실이 존재한다. 하나는 사실 그대로의 정의와 진실이고, 또 다른 하나는 허구의 정의와 진실, 즉 만들어진 거짓의 정의와 진실이다. 아즈마의 정의와 진실은 대일본제국의 망령 속에 지금도 난징대학살 범죄를 부인하는 국가의 거짓된 진실과 정의에 터 잡아 재판이 진행됐다. 넘쳐나는 증거도 모두 인정되지 않았다. 이른바 아즈마 기억에 대한 암살 즉, <기억의 암살>이 이뤄졌다.

 

양심의 가책 속에서 자신의 학살행위는 국가의 명령에 따른 것이고, 나는 그저 모든 것을 잊고 싶다. 우리는 군인으로서 명령에 충실했을 뿐, 누구를 죽인 적이 없다고 그렇게 믿고, 또 그렇게 믿어야만 살아갈 수 있었던 난징학살에 투입됐던 군인들, 아즈마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던 그의 상관도, 상처 입은 영혼이다. 비록 우익의 조정을 받았다 할지라도...

 

일본과 한국 국가범죄에 대한 사죄 없는 꼴은 똑같아,

 

이는 마치, 베트남전쟁 중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사건은 80여 건, 9000여 명에 이른다. 현지에 위령탑이 세워진 대표적인 사건들은 퐁니·퐁넛 학살, 빈안 학살 등이 있다. 빈안 학살은 1966년 맹호부대에 의해 민간인 1004명이 희생된 사건이다. 하미 학살은 꽝남성 디엔반현에 위치한 하미마을에서 1968년 2월 22일 역시 해병대 소속 청룡부대에 의해 민간인 총 135명이 희생된 사건이다. 이보다 앞선 1966년 12월 3일, 12월 5일, 12월6일에는 꽝응아이성 빈선현 빈호아사에서 청룡여단에 의해 주민 430명이 희생된 사건이 벌어졌다. 그중 12월6일에는 빈호아사 꺼우 마을의 동코 우물가에서 벌어진 학살로 141명이 목숨을 잃었다.

 

한국의 법원이 인정한 학살사건, 한국군이 베트남 중부 휴양도시 다낭에서 12킬로 떨어진 꽝남성 디엔반현에 퐁니·퐁넛이란 마을이 있다. 베트남전쟁이 한창이던 1968년 2월12일 오전, 이 마을에서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 베트남에 파견된 한국군 청룡부대 소속 군인들이 수색 정찰 도중 마을에 들어와 주민들에게 “빵을 나눠줄 테니 모여라”고 했다. 마을 주민들이 모이자 일제히 사격을 가해 74명이 즉사했다. 희생자는 대부분 부녀자와 어린이 등이었다.

 

현장에서 살아남은 이들 중에는 8세 소녀 응우옌티탄도 끼어 있었다. 재판정에 나온 63세인 응우옌티탄 씨에게는 그날의 참상이 마치 영화 필름처럼 1초 단위로 선명하다. “당시 우리 마을은 남베트남 군인 가족들….

 

 

 

나고야 시장 가와무라 다카시(河村たかし)는 일본 정부의 혁신을 부르짖으며, 정당을 만들기도 했지만, 국가이익 앞에서는 역시, 한통속일 수밖에. 나고야시와 자매우호 도시인 난징에서 일어난 학살을 부정하는 그의 태도에서 이중성을 엿볼 수 있다.

 

안정효의 <하얀전쟁>에서는 전쟁에서는 인간이 모두 죽는다고, 비록 육체는 살아 있더라도 다른 사람의 죽음을 통해 모든 병사의 영혼이 마르고 죽어버린다. 하나의 개인을 인정하지 않는 무차별 살인의 마당에서는 보람찬 도전조차 없다. 이는 이 책<뚜이부치>, 하나의 개인을 인정하지 않는 무차별 살인의 마당에서,

 

아즈마 시로의 기억 속에 난징 대학살 현장에는 인간은 없었다. 다만, 살인 병기만이, 일본 정부가 뭐라고 하든, 난징에서 이뤄진 민간인 학살은 전쟁범죄다.

 

일본은 왜 난징 사람들에게 ”뚜이부치“라는 말 한마디를 건네지 못하는가?,

우리는 왜 베트남의 퐁니·퐁넛의 학살현장에서 살아남은 이들에게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라는 말 한마디를 건네지 못하는가?

 

이 책 뚜이부치를 통해, 일본과 한국의 모습을 다시금. 안정효의 말처럼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여전히 누군가의 기억 속에 지옥으로 남아있는 그런 하얀 전쟁이다.

 

 

 

난징 대학살은 유대인 학살과 원폭 투하와 함께 2차 세계대전의 3대 비극 중 하나로 꼽힌다. 1937년 12월13일부터 6주간 동안 벌어진 잔인한 학살... 아즈마시로는 50주년기념일인 1987.12.13.일 난징 대학살 기념관 앞에 무릎을 끓고 ”뚜이붙이“라는 말을 건넨다. 이 책 속에는 일본군 위안부로 한국인과 중국인 등이 있었음을 증언한다. 난징대학살은 전쟁, 인권, 광기, 개인으로서의 인간의 갈등 등에 관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출판사에서 보내 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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