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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비탈에서 흔들리지 않도록 - 노년의 철학자가 산을 오르며 깨달은 것들
파스칼 브뤼크네르 지음, 최린 옮김 / 와이즈맵 / 2023년 7월
평점 :
노년의 철학자가 산에 오르며 깨달은 것들
산을 제대로 탄 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까마득한 옛날, 구례 쪽에서 남원 쪽에서 산청에서 지리산을 탔던 기억, 그저 무리 지어 산을 오르자 하니 올랐던 것 외에는. 그리고 후지산을 올랐던 게 마지막이었다.
이 책<인생의 비탈에서 흔들리지 않도록>의 지은이 파스칼 브뤼크네르는 산의 정상을 오르는 것에 우리가 매혹되고, 감탄하지만 꼭대기에 오른다고 우리가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란다. 다만, 우리는 우리의 자취를 따라오고, 우리를 앞장서서 산에서 내려온 후에도 산 정상에 머무르는 '열정'과 함께 산을 오른다고. 작가이자 철학자다운 표현을 한다. '열정'과 함께…. 그것이 무엇으로부터 오든 간에, 그가 하는 말에 공감한다.
많은 사람이 묻는다. 이미 인생은 내리막길에 접어들고 있는데 왜 우리는 오르는 행위를 하는 걸까?, 일부러 몸을 고달프게 한 다음 거기서 기쁨을 얻는 것도 행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라고, 우리는 신념 때문에 산에 오르는 게 아니다. 산이 우리 신념을 자극해서 그곳을 오르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산이 거기에 있어, 오를 뿐, 전문 산악인들이 산을 오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세계 최고령 84세, '히말라야 14좌' 완등 코앞에 두고 부상이라고 SBS가 영국의 가디언 등의 보도를 전했다. 스페인의 등반가 카를로스 소리아가 아직 정복하지 못한 히말라야의 정상 두 개 중 하나인 네팔의 '다룰라기리' 등반 중 다리를 다쳤다고, 코로나19로 희생당한 이들과 함께하는 마음에서 생애 마지막 도전을 한 것이라고. 결국은 포기하고 말았지만. 그는 용기를 내면 극복 못 할 게 없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싶다.
산에 오르는 이유는 제각각일 것이다. 높은 산에서 우리는 무엇을 새롭게 배우게 될까? 그 산의 취약점과 강함이라고, 지은이가 산을 좋아하는 이유는 바다나 시골과 달리 산만이 내게 육신이 있다는 걸 느끼도록 해주기에. 산의 오솔길이나 암벽 위에 있으려고 애쓰는 것, 그것이 살아 있다는 증거라는 것이다.
아마도 산을 오르는 이유는 철학자 스피노자의 말처럼 몸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나이가 들어도 우리 몸뚱이는 여전히 활력이 넘쳐나고 육신의 긍정적인 힘을 강요하기에. 또 다른 육체가 우리가 의심하지 않는 우리의 몸에서 태어난다고, "휴식"이 모든 고통을 보상해 줄 것이라고 믿는 것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이탈리아 철학자 노르베르토 보이오는, "나는 나를 잃어버릴 때까지 달린다. 내가 달리기를 멈추는 그곳에서 나를 잃어버린다"라는 말을 남겼다.
왜 산을 오르는 걸까?
지은이는 명쾌하게 말한다. 산을 우리를 부르기 때문이라고, 어떤 산과 산맥은 그 안에서 길을 잃고 자신을 탐색하라고 우리를 초대한다고, 그렇다면 무엇으로 부르는 걸까, 하나의 답은 없다. 제각각의 이유가 있을 테니, 벌써 인생, 삶에서 은퇴 즉, 하산할 때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일까, 아니면 자기와의 싸움을 , 내 체력과 능력의 한계를 시험해 보고싶은 욕망때문일까,
중요한 건 바로 내가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나를 설득하기 위해서 일지도 모른다. 나를 산으로 데려가는 것은 끈기 있게 밀고 나갈 수 있는 체력과 능력, 산을 오르려는 욕망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은 높이에 따라 달라지는 다양한 관점은 노력에 대한 보상이다. 지은이의 이 말은 꽤 설득력이 있다. 산을 오르면서 깨달은 것 중에, 이 대목이 가장 와 닿는다. 산의 정상에 오르지 않고 밑에서 이러쿵저러쿵하는 평론하는 이른바 개소리하는 비평가(비평가도 아니지만)들, 9부 능선, 9.9 능선과 정상은 질이 달라진다.
오래전 후지산을 오르면서 내가 겪었던 고산증, 머리가 깨질 듯 아프고 숨쉬기 곤란한데 이런 현상이 고산증이란 걸 모르고, 허리춤에 차고 있던 휴대용 산소통을 쓸 생각도 못 했으니. 9부 능선에 다다를 때 하산길의 노인이 나를 보고, 그렇게 괴로우면 산소를 한 번 들이마시면 될 걸, 산소가 다 떨어졌나 라고 묻는다. 바보처럼 허리춤에 찬 산소통의 존재를 잃어버렸다. 아무튼 노인의 말씀대로 산소를 힘껏 들이마시니, 두통이 사라졌다. 드디어 후지산 정상에서 일출을, 그 반대편에 생긴 산그림자가 더 감동적이었지만... 할 수 있어, 하면 돼...라는 자신감, 뭐 이게 오래가면 좋겠지만, 아무튼 그런 느낌으로 충만됐던 기억이...
왜 산을 오르는 걸까라는 물음에 답은, 인생사를 배우기에는 산처럼 좋은 교실도 없으리라 생각한다. 정상에 오르지 않고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이 있어서다. 그 감동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자, 지은이의 말을 들어보자. 등반은 영적, 물질적, 신은 존재의 또 다른 영역
모든 등반은 영적이고, 물질적이라 한다. 산은 존재의 또 다른 영역이라고, 초월적 존재가 광물 형태로 실존한다고나 할까, 산은 우리의 가장 위대한 기쁨, 침묵, 야만의 시, 풍경과 교감하기 위해 새로운 풍만함을 발견하는 것을 허락한다고. 산은 모두를 위한 사치와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들에게 제공되는 아름다움의 오래되고 혁명적인 꿈을 선사한다고,
오늘날 사치란 모든 희귀한 것에 있다. 불가침의 공간, 다시 발견한 느림, 명상, 시간에 얽매이지 않는 삶의 즐거움, 걸작과 영혼의 향유, 돈으로 살 수 없고 말 그대로 가격을 매길 수 없는 여러 특권…. 아마 산은 그래서 철학의 공간이고, 인생의 교실일까?
호기심과 열정 있는 사람이 되는 데 우월함이 있다. 산을 오르는 사람들에게는, 인생에 비탈에서 흔들리지 않는 강인한 정신은 이렇게 끊임없는 도전과 극복 속에서 단련되는 모양이다.
<출판사에서 보내 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