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한 사람들만 남았다 - 세상이 멸망하고
김이환 지음 / 북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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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하기에 살아남은 사람들

 

소심(小心)한 사람들이 아니라 소심(素心, 본디 마음)한 사람들이다. 본디, 이기(利己)보다는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게 익숙한 '이타', 이기나 이타의 또 다른 모습을 이 소설 속에서 봤는지도 모르겠다. 작기 김이환식의 역설적인 아포칼립스,

 

수면 바이러스는 신경세포를 공격하는 바이러스다. 인류와 함께해 온 바이러스, 체체파리를 매개로 전파되는 게 아니란다. 19세기에 유럽에서 유행했던 정체불명의 열병, 수면 바이러스는 그때 열병을 일으켰던 바이러스의 변종이었다. 모르면 신비스럽거나 두려운 것이다.

 

소심한 인간이 본래 우리의 모습이지 않을까 싶다. 소심하지만, 겉으로는 강하게 보이고 싶어 하는 최강자라는 캐릭터, 허우대만 멀쩡하지만, 마음은 아주 여린 영남, 똘똘한 중학생 지우, 배달꾼 나나, 등장인물 속에서 우리의 이웃을 본다. 어릴 적 동네 집 문 앞에 '맹견 주의'라고 써놓은 걸 보고, 조용조용 그 집 앞으로 지나간 적이 있는데, 지내놓고 보니, 그 집에는 작고 귀여운 애완견밖에... 반려견을 누가 훔쳐 갈까 봐 그렇게 적어놓은 듯하다.

 

본디 요란하게 짖는 개는 겁쟁이다. 오지 말라고, 더는 가까이 오지 말라고, 무섭다고 짖어대는 것이다. 방어본능, 허장성세(虛張聲勢)다. 진짜 맹견은 먹잇감을 사냥하듯, 꼬리를 흔들면서, 상대방이 아무런 기색도 느끼지 못하게 안심하는 순간, 번개같이 달려들어 목줄을. 우리 사회와 꽤 닮은 구석이 있다. 워리어스(전사들)라고 가죽옷에 껄렁하게 보호색을 펴고, 방어본능 때문에 겁쟁이 개처럼 먼저 짖어대는, 본디 모습은 소심하다. 불량하지 않다.

 

소심한 사람들이 편의점으로 마트로, 소풍도 다니고, 아파트로 호텔로. 조심스레 떼 지어 다닌다. 소심하면, 살아남는다. 작은 마음이 아니라 본디 가져야 할 마음 소심(素心)으로, 마트에 가서 비싼 레고를 가져가면, 나중에 갚아야 할 때 부담이 되니, 놓아두고 온다고. 지우의 말처럼 아포칼립스 상황에서 누군가를 생각하는 걸 보니 천상 소심한 사람이다.

 

부와 지위가 그 사람의 본질을 드러내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본디 겸손한 사람도 있지만, 부와 지위라는 완장을 차는 순간, 어떤 자리에 앉는 순간, 파우스트에게 영혼을 팔아 지위와 명예를 얻듯, 누군가의 위에 서고 싶어 하는 사람들, 뽐내려고 안달이 난 사람들, 이 사람들은 모두 수면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사라졌다. 어떤 의미에서는 수면 바이러스는 청정효과일 수도….

 

세상이 뒤집히는 사건, 소심한 사람들만 살아남은 사회, 사람이 지녀야 할 본래의 마음을 지닌 사람들을 소심한 사람이라 새긴다.

 

역설적이다. 소심한 사람들이 씩씩하게 앞서나가고 물불 안 가리고 생존의 늪에서 헤어나오던 사람들이 잠들 듯. 마치 영화 투모로우처럼, 순식간에 얼어붙은 세상이. 살아남은 자들에게는 맑은 공기와 새로운 미래가 기다리는 것처럼, 세상은 망해도 착한 사람,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려는 사람들은 살아남는다. 영악하지 않아서... 수면바이러스는 노아의 홍수처럼, 물질문명과 돈이 세상의 가치척도인 세상을 향한 열심히 살아가려는 사람들을 피해가는...아마도 수면바이러스 천적은 인간의 착한 심성인가?, 소심한 사람들의 공화국

 

<출판사에서 보내 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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