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유기, 근대 한국인의 첫 중국 여행기
이병헌 지음, 김태희 외 옮김 / 빈빈책방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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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한국인의 첫 중국 여행기

 

진암 이병헌은 경남 함양 출신의 한말 유학자다. 영남의 유림 곽종석의 문인으로 유학을 공부했으나, 시류의 변화를 보면서 청의 강유의의 변법의 영향을 받아 개화사상으로 전환, 유학의 본고장인 중국의 변화를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1914년부터 25년까지 5회에 걸쳐 중국을 여행했다. 이 책<근대 한국인의 첫 중국 여행기>이라는 제목은 명나라와 청나라에 걸쳐 적어도 1,500회 이상 중국을 찾은 사신단은 정해진 경로를 통해, 공무 수행이라는 측면에서 “여행’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여행이란 키워드를 강조하기 위해 첫 중국 여행기라 이름 붙인 듯….

 

이 책을 포함한 이병헌의 일부 저작은 중국과 국내에서 간행됐지만, 대부분은 유고본으로 남아있다. 이 책은 원전이 한문이라서 역사학, 지질학 등을 배경으로 한학에 밝은 김태희, 박천홍, 조운찬 등의 연구자들이 번역을 했다.

 

아무튼, 이병헌은 10년에 걸쳐 다섯 번의 중국 방문을 통해 무엇을 보고, 느꼈을까, 그의 중국 여행기<중화유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이병헌은 중국 여행 기간 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일기를 썼다. 이른바 여행기다. 일제 강점기의 지식인이자 개혁 유학자로서의 세계관을 드러내고 있다.

 

요동과 심양, 이른바 만주족의 성지요 청나라의 발상지를 둘러보면서 존왕양이를 내세워 명을 숭상하고 청을 배척했던 조선의 소중화, 소아병적이고 자가당착적인 태도 이른바 중화사상을 강하게 비판하기도. 한편으로 임진왜란 때 도움을 준 명나라의 은의 못지않게 병자호란 때 청이 베푼 관용 덕분에 조선이 보존될 수 있었다, 조선은 한족, 만주족과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는 한족의 기자 조선설을 인용, 묘하게 동북공정과 닮은 구석이 느껴지기도 한다. 당시 유학자들의 생각은 정녕 이러했던가 싶다. 그것도 개혁의 사상을 품은. 위정척사에 터 잡은 충절인가,

 

이런 관점을 또 달리 볼 수도 있겠다. 공자를 내세워 동아시아 국가를 통합시키고자 하는 공교의 가르침에 터 잡은 듯하기도 하니 말이다. 이병헌은 강유위의 지도를 받고, 유교의 종교개혁운동을 전개, 공교사상을 체계화하기도 했다.

 

근대 유학자 이병헌에 눈에 비친 중국, 글 속에 드러나는 많은 쟁점이 있기는 하지만, 그의 유학 공부나 역사 인식, 개혁 사상 등을 들여다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여행기를 통해 그의 가치관을 조금 엿볼 수 있을 정도이니, 섣불리 판단할 수 없다. 특히 서양과 동양의 종교와 철학, 공자는 종교인가, 철학자인가, 아니면 사상가인가, 이병헌은 종교와 철학을 어떻게 이해했을까 하는 대목도 흥미롭다.

 

그는 서양은 종교와 철학, 둘로 나뉘지만, 동양은 합일, 즉 하나라이며, 그 차이를 깊이 들여다보면 진지와 미신의 구분이 있을 뿐이라고…. 서양의 종교는 진지를 추구하는 철학과 미신을 신봉하는 종교가 구별될 수밖에 없지만, 동양의 종교인 유교는 미신을 벗어난 것이라서 철학과 종교가 하나다. 공자가 여러 철학을 통합한 종교인이기 때문에 공교야말로 전 세계적인 대동교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대목은 매우 중요하다.

 

아무튼, 구한말, 일제 강점기라는 환경 속에서 유학자들의 세계관은 어떻게 변화해갔는가, 그들에게 한계는 무엇이었나 하는 점 등을 찾아보는 것은 아주 흥미로운 작업일 것이다.

 

<출판사에서 보내 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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