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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모험 - 대립과 분열의 시대를 건너는 법
신기욱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3년 6월
평점 :
대립과 분열의 시대를 건너는 법, 이중의 토크빌, 아시아의 토크빌
이 책 부록에 실린 경희대 안병진(정치학)과의 지은이 신기욱과의 대담에서, 안병진은 그를 ‘이중의 토크빌, 아시아의 토크빌’이라 불렀다. 미국인보다 더 탁월하게 미국을 관찰한 프랑스의 지성 알렉시 토크빌에 비한 것이다. 지은이가 미국에서 학자로 삶을 살게 된 연유는 물론 현재 남북문제, 한미일 삼각동맹,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한중관계까지 신기욱의 이야기를 끌어내는 인터뷰어 안명진과의 “지식인의 역할과 민주주의 미래”, 그리고 또 하나의 인터뷰, 신기욱이 스탠퍼드대학의 프랜시스 후쿠시마를 인터뷰한 “민주주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일본계 미국인으로 비록 3세이기는 하지만, 그의 눈에 비친 미국과 아시아, 그리고 중국과 북한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이 책에 실린 신기욱의 글은 그가 미국에서 학자 생활을 하다, 안식년을 얻어 한국에서 머문 (2015년 가을부터 2016 봄까지) 동안, 느꼈던 경험을 바탕으로 <슈퍼피셜 코리아>를 펴낸 후, 6년 만에 다시 이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2022.4-2023.3까지 “신동아”에 연재한 글을 손질한 것이다. 그는 역사사회학자이며, 미국의 대학에서 ‘한국학’을 연구한다.
이 책은 4장으로 엮었다. 1장 민주주의와 리더십에서는 민주주의와 리더십의 위기를 그리고 민이의 회복을 위해서라는 소제목으로 결론은 제로섬게임이 아닌 포지티브섬 사회를 향해서 고민할 때라고 말한다. 2장. 자유주의와 안보에서 지은이는, 한국 사회는 자유주의보다는 민족주의가 강한, 대 중국 관계에서는 문화적 민족주의를 드러내 보인다고 진단한다. 국제정세를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한일갈등, 우크라이나 전쟁과 민주주의 연대, 세상에 공짜는 없듯, 국제관계에도 무임승차를 결코 없는 냉엄한 질서임을 강조한다. 또, 중국은 미국을 추월하지 못할 것이며, 대북 관계에서는 북을 악마화해서는 안 된다고, 북한 인권에 대한 우리의 원칙을 세우라고 말한다. 이 대목은 뭐 글쎄다. 남한 사회의 인권을 기준 삼으면, 비교 대상으로 하면, 안 된다는 말이 아쉬운 대목인데. 3장에서 다양성과 혁신을 이야기한다. 대학의 힘과 글로벌 인재를 유치하라고, 세계적으로 인재 유출이 가능 큰 나라 중 하나인 한국, 왜, 어떻게 인재 유출을 막고, 글로벌 인재를 유치할 것인지, 그의 미국 경험에서 나온 이야기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그리고 문화와 미래를 논하는 4장, K컬처와 문화의 힘, 미래는 인도에 있다 등의 글이 실려있다.
이 책에서 눈여겨 봐야 할 대목은 본편보다는 뒤에 실린 후쿠시마와의 인터뷰 내용이 흥미롭다. 아니 흥미롭다기보다는 지은이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를 보는 그의 시각과 진단 속에서. 신동아에 연재했던 내용이야 각 주제와 관련된 그의 생각을 이야기 한 것이지만, 후쿠시마와의 인터뷰는 그의 사고체계의 전체상을 드러낸 것이어서 그렇다. 안병직이 인터뷰하고 지은이가 인터뷰이가 된 또 하나의 인터뷰, 우선 이 두 개의 글을 보고 책을 읽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한국 사회 진단이 옳고 그름을 떠나,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터널 속에 있는 사람은 앞밖에 보이지 않는다. 어둠으로 가려진 옆을 보지 못한다는 제약도 있지만, 터널 끝에 밝음에 끌려, 상하좌우를 살피지 못함이다. 한국에 사는 이들이 한국 사회를 제대로 보지 못함과 같은 논리라 해두자. 마치 플라톤의 이데아론의 “동굴비유”처럼, 동굴 안에 갇힌 사람들이 동굴에 사물들의 빛이 동굴 벽면에 비치면, 사람들은 그 그림자를 사물 자체로 인식한다고, 나중에 아리스토텔레스가 질료,형상이론에서 비판하기는 하지만...
이 책은 미국 사회에서 연구 대상으로서의 한국과 실제 살아 움직이는 현장인 한국 사회에서 그가 본 것들을 그는 리더십의 위기를 논하면서, 무엇이 공정과 상식인가라는 문제를 제기했고, 관용과 권력의 절제에 관해서도 이야기했다.
무엇이 공정과 상식인가?
우선 그는 문재인 정부는 ‘소나기에 흠뻑 젖었던 한국 민주주의’를 구하기보다는 무능력과 내부 분열로 국정 동력을 잃어버렸고 지리멸렬할 위기에 처했다고 평했다. 트럼프의 유산을 처리해야 하는 바이든처럼 윤석열도 문재인이 남긴 유산 때문에 억울한 대목이 있다고.
그는 윤석열이 법률가가 아닌 정치인으로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한다. 반이재명 연합군의 사령관 성격이 강한 윤석열, 윤석열의 적은 윤석열이다. 윤석열은 공정과 상식을 회복하겠다며 정치에 뛰어들었다고 하면서 취임식에서 ‘자유’를 수없이 외쳐왔지만, 정작 국민에게는 그 의미가 무엇인지. 공정과 상식을 정책에 어떻게 반영할지. 자유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무엇을 할지. 국민은 윤석열이 주요직을 임명할 때, 공정과 상식을 버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가 생각하는 공정과 상식은 무엇인지, 국민이 궁금해한다.
관용과 절제
법치 만능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말로 시작된 지은이의 이야기는, 이렇다. 주요 정책을 추진하려면 충분한 ‘공론화’ 과정을 거치라고, 거대 야당과 진보적 시민사회의 견제와 도전을 감수하려면 정치적 리더십 구현이 중요하다.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귀를 열고 들어야 한다고, 지금은 글로벌 민주주의 위기가 아니라 글로벌 리더십 위기의 시대라고 말한다.
이 두 단락에서 지은이는 윤석열에게 당부한다. 제발 정신 좀 차리라고, 법이 만능이 아니라고, 정치란 관용과 절체, 타협과 양보, 공정과 상식이 통해야 한다고. 검사, 검찰공화국이란 소리를 듣지 말라고, 왕도정치에서도 왕이 받들어야 할 하늘은 곧 백성이라 했다. 성악설 논자인 순자는 백성은 물이라고, 새로운 물길도 낼 수 있고, 왕인 배를 띄울 수도 있다. 하지만, 배를 엎어버릴 수도 있다고.
국민이 윤석열을 지지해서가 아니라, 문재인이 정부의 잘못을 고쳐나가라고 윤석열호는 물에 띄워준 것인데, 저 스스로 물 위에 뜬 모양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고.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