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죽을 때까지 지적이고 싶다
양원근 지음 / 정민미디어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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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을 때까지 지적이고 싶다

 

지은이 양원근은 촌철살인 “지적인 생각은 어떻게 내 삶의 무기가 되는가?” 지적 허영심만 채우는 교양 속물이 될 것인가, 아니면 실천하는 지성인이 될 것인가?

 

철학서가 아니라면서 철학을 논한다. 여기에 실린 글들, 그가 이전에 펴낸 책<부의 품격>에서 그의 영혼이 담담함을, 풍성함을, 그리고 교양 속물이 되지 않으려는 노력을 읽었다.

 

이 책<나는 죽을 때까지 지적이고 싶다>은 그가 20대, 30대 어딘가에 당시에 느꼈던 무언가를 적어놓은 노트를 한 장 두장 넘겨보면서 지금의 내 삶은 어떠한 거라는 성찰의 글쓰기를 시작한 듯하다. 희미해진 기억의 소환이라 할까,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가, 나 역시 해보고 싶은 일이다.

 

이 책은 3부로 나뉘어 있다. 1부는 배움의 의미이란 주제로, 여행하면 누구나 철학자가 된다, 나는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가? 소크라테스 말처럼 내가 아는 것은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 뿐이라고…. 지식을 채워 넣는 게 아니라 사유하는 법을 터득하는 것이 내 삶에서 중요하다고 지은이는 넌지시 말한다. 푸코와 소쉬르, 언어란 무엇인지를, 우리가 관념하는 것에 의문을 가져보라고 말한다.

 

2부 삶의 지혜 편에서는 세상에 중요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 정도를 지키는 욕심쟁이 등, 참으로 곱씹어 볼 만한 문장들로 채워져 있다. 3부에서는 세상을 사는 이치, 관계의 법칙에 관해서 논한다. 꽤 철학적인 제목들이 등장한다. 너도 옳고 나도 옳고, 너도 틀리고, 나도 틀리고, 이황이 그랬다 했던가, 싸우던 집안사람들의 주장을 듣고 너도 옳고 너 또한 옳다고, 옆에 있던 부인이 무슨 말을 그리하오라 하자, 부인 말도 옳소라고, 이 같은 이야기가 무려 2400여 년 전 크세노폰<키루스의 교육>에도 나온다. 동서고금을 통해 보편성은 이리 오랜 세월이 흘러도 변함이 없는 것인가,

 

지은이는 <부의 품격>에서, 졸부와 품격있는 부자를 정의하면서 선의지 5법칙을 주장했는데, 이 책의 교양 속물은 마치 졸부인양 여겨진다.

 

고등학교 밖에 안 나와서, 죄송합니다

 

우리나라 위대하고 큰 나라(大韓民國), 너무 위대해서 그런지 전 국민이 ‘대학’이라는 초등학교를 나와야만 국민이요. 시민이 되는 나라,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선거권을 가지려면 대학을 나와야 하는 것처럼 여기는 곳, 그래서 그 무거움에 짓눌린 국민은 선거 때 외에는 아무런 말대꾸도 할 수 없는 곳, 정작 선거 때가 되면 또 입을 굳게 닫아버리는 곳, ‘과연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사는 걸까?’라는 생각을 하는 것마저 힘든 나라.

 

자기 생각을 글로 옮길 수 없는 천재들의 나라, 기가 막힌 암기력으로 대학에 가는 나라, 세상 꼴이 이렇다 보니 “어느 대학 나왔어요?” 시작되는 대한민국의 기가 막힌 호구조사. 나이가 몇인지, 고향이 어딘지, 도대체 눈앞에 서 있는 존재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저는 대학에 안 갔는데요? 00 고등학교 나왔어요”라고 말하는 대신에 ‘고등학교밖에“라는 한계적 조사가 붙을 수밖에, 마치 고등학교 나오면, 반 토막짜리 인생인 양. 자신도 그렇고, 학력을 묻는 사람도 그렇다. 언제부터 대한민국의 국민 자격 기준이 대학 졸업이 되었을꼬. 헛똑똑이에 달달 외움도사들이 세상살이를 현명하게 잘할 수 있는 기준이 되었을꼬, 인간은 결국 인간이 편리성을 위해 만든 제도와 권력 관계 안에서 몸부림치는 한낱 존재로 본 푸코,

 

지은이의 고백을 들어보자, 나는 사람을 학력을 평가하지 않는다. 어느 대학을 나왔건 행여 대학이 아니라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 사람이 가진 재능을 우선시한다. 그러나 나의 이런 진심과 관계없이 면접을 볼 때면 ”이력서를 보니 대학을 안 나왔던데 특별한 사연이 있나요? “하는 말이 나갈 때가 있다. 특별한 사연이라니! 대학을 안 갔다는 이력에 특별한 사연씩이나 필요한 일인가. 우리 사회가 만든 생각이라는 게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61쪽).

 

지은이는 말한다. 교양 속물 대신에 실천하는 참된 지성인이 되라고, 이 말은 즉, 고전에 등장하는 된 사람, 난 사람, 든 사람의 구분처럼 세상의 소리를 한쪽으로만 듣지 말라고 두 귀가 있고, 한쪽으로만 보지 말고 모두 보라고 두 눈이 있고, 두말하지 말고 한 말만 하라고 입이 하나가 있는 게 아니냐는 말처럼 들린다. 그런데, 두 귀는 한 귀요, 두 눈도 한 눈이요. 하나의 입은 두 개의 입이 되었으니, 아마도 이 책을 읽게 되면 그런 줄 몰랐던, 아니 까마득히 잊고 살았던 이들에게 귀와 눈과 입의 역할을 생각나게 해 줄지도 모르겠다.

 

옳거니, 하는 소리와 함께 책장을 넘기는 속도도 빨라진다. 두꺼운 책이 쉬이 읽힌다.

 

 

<출판사에서 보내 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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