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루스의 교육 - 키로파에디아 현대지성 클래식 51
크세노폰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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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루스의 교육, 리더십의 고전

 

크세노폰의 <키루스의 교육>은 리더의 성품과 태도, 자기관리, 인간관계, 조직경영 등 에 관한 지도자의 덕목을 담아냈다.

 

소크라테스 제자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진리와 정의와 미덕을 중심으로 정통적인 철학을 추구했다면, 크세노폰은 군사전략가로서 실용적인 정의와 미덕을 추구했다. 전자가 추상적, 이상적이라면 후자는 구체적, 현실적이다.

 

아마도 이런 크세노폰의 사고는 그가 아테네 시민이면서, 철학자로만 만족할 수 없었던지, 군사 전략가로서의 삶을…. 스파르타의 동맹국인 페르시아의 왕위쟁탈을 벌이는 소키루스쪽에 그리스 용병으로 참전, 바빌론 근방에서 소키루스가 전사하자, 그리스 용병 1만 명을 이끌고 참전, 후일 그리스 용병 1만 명을 이끌고 눈이 쌓인 아르메니아에서 흑해 연안을 지나 소아시아까지 2년 만에 귀환했다. 그는 이 일로 아테네에서 쫓겨나, 스파르타에서 생활한다. 그는 전쟁참전의 경험을 쓴<소아시아 원정기>, 아케메네스 왕조의 페르시아 제국을 세운 키루스를 다룬<키루스의 교육>, <기마술>, <기병술>, <사냥술> 등을 썼다. 아마도 이상적인 세계를 현장에서 직접 실천하려 했던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이 책<키루스의 교육>은 역사 소설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내용은 허구적이라기보다는 실천행을 강조하는 것이다. 계몽이다. 8권으로 구성됐고, 1권에서 소년 키루스에서 8권 제국의 건설과 키루스의 죽음까지를 다루는데,

 

키루스는 페르시아인의 나라이자 부족 연맹체인 안샨왕국의 왕자로 페르시아에서 교육을 받는다. 소년, 청년, 장년반에서 교육을 받고, 메디아의 왕이 된 삼촌 키악사레스 군대의 총사령관으로 전쟁에 참전, 아시리아의 왕을 죽이고 바빌론 성을 점령, 왕에 올라 제국을 다스리다 얀산왕국에서 숨을 거둔다.

 

크세노폰이 이 책을 쓴 동기는 당시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이 택한 여러 정치체제 중에서 어느 하나가 특별히 낫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들에게 행복을 보장하는 것은 정치체제보다는 인물이라고 생각하고, 아케메네스 왕조의 페르시아 제국을 건설한 키루스 왕을 그런 인물로 제시한다.

 

인물이냐?, 정치체제냐?, 동서고금의 논쟁

 

이런 생각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금까지 이어지는 논쟁거리다. 플라톤의<국가론>의 철인정치, 철인왕, 이상적인 세계다. 아무튼, 이런 예는 조선의 건국에서도 볼 수 있다. 고려말 정도전 사상 “재상정치” 즉 정치체제, 시스템 정치다. 현군(현명한 왕)이 왕위에 오르면 별걱정이 없겠지만, 왕의 재목이 아닌 이가 왕위에 올라오면 즉, 암군(어리석은 왕)이 다스리는 곳은 지옥이라는 것이다. “왕도정치”시스템 즉, 왕을 위한 보강시스템(현자들이, 정의롭고 지혜로운 철인)이 필요하다는 말인데, 정도전은 재상정치를 제각각 다르게 이해한 때문에, 결론이 달라진다. 인물이냐 체제냐의 구분법보다는 이들을 어떻게 보강할 것인가?

 

재상 정치체제의 논거는 암군이 지배하면, 왕의 권력에 빌붙어 자신의 이익을 취하려고 민초를 쥐어짜는 일을 서슴지 않을 무리가 나타나고, 이로 인한 악순환을 애초부터 막자는 것이다. 정도전의 눈 앞에 펼쳐진 고려말의 현상이었으니, 아무튼 어리석은 왕이 등극하더라도 현명한 재상들이 정치를 이끌어나간다면, 백성은 편할 것이라는 말이다. 시스템으로 돌리면 안정된 질서가 보장된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었을까, 이는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이야기다. 학자 중에는 재상정치를 이렇게 해석하는 것은 정도전의 정치철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반론도 있는데 결론은 정도전도 왕도정치를 보강하는 시스템을 구축하자는 것이었지, 신권정치를 하자는 것은 아니라고.

 

<삼국지>에 이야기 한 대목도, 유비가 제갈량에게 유언하기를, 유선이 암군이 되면 그를 폐하고 촉을 다스려달라고.

 

현대 정치에서 의원내각제나 이원집정제냐, 대통령제냐 하는 따위도 결국에는 한 국가를 어떻게 합리적으로 운영해 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와 연결된다. 이런 때문에 오늘날까지도 이 책이 훌륭한 고전으로서 읽히지 않을까 싶다.

 

7권 4장에서 키루스는 제국 전체를 탄탄히 하고 확장해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숙고하면서, 용병은 그 수가 얼마 되지 않기에 자신의 신민을 활용하는 것보다 더 나을 게 없다고 판단한다. 그는 신들의 도움으로 자신에게 승리를 안겨준 용맹스러운 장병들을 단결시켜야 하고, 그들이 지금까지 보여준 미덕을 잃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함을 깨닫는다.

 

키루스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었다고 해도, 계속 굶주리고 목말라하며 피땀을 흘리고 고생을 해야 한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런 사람은 좋은 것들을 얻기 위해 고생한 정도만큼 기쁨도 더 커진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람이 부족함이 없어지면 아무리 좋은 것이 그에게 있어도 기쁨을 얻을 수 없는 법이다.

 

지금,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키루스의 말은, 이것도 생각해보라는 말로 이어지는데, 지금,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이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그 대목을 보자 우리가 이전보다 더 형편없이 사람이 되도록 우리 자신을 내버려 둔다면, 우리는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우리는 지배자들이기 때문에 괜찮다고, 지배자가 자신의 신민들보다 더 형편없는 자가 된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이전보다 지금이 더 행복하니 그것으로 된 것 아니냐고 말한다면, 다른 사람들은 행복하기만 하면 악덕을 저질러도 되느냐고 반문할 것이다.

 

우리에게는 노예들이 있고, 그들이 악하게 굴면 처벌하면 된다고 말하겠냐고, 우리 자신은 악하고 형편없이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들이 악하고 나태하다고 처벌한다는 것이 말이 되겠냐고,

 

 

<출판사에서 보내 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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