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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창세기 - 사회들의 기원에 대하여
에드워드 오스본 윌슨 지음, 김성한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23년 2월
평점 :
우리는 어떤 존재인가, 어떤 존재가 되고자 하는가?
무엇이 우리를 만들었는가, 우리는 궁극적으로 어떤 존재가 되고자 하는가, 인간 조건을 다루는 철학서의 핵심은 우리는 무엇인가라는 궁극의 질문에서 시작된다. 이 세 가지, 어떤 존재이며 누가 인간을 창조했는가, 여기까지 나름의 정리를 했다면 마지막으로 우리는 어떤 존재가 되고자 하는가, 이것이 관건이요. 화두다. 인간 진화에 관한 이야기다.
지은이 월슨은 유물론적 진화론자다. 신의 섭리와 힘의 작용으로 지구상에 태어난 인간을 전제로 하는 창조적 진화론이 아니라는 말이다. 진화는 모든 개체군에서 항상 일어난다. 한쪽 극단에서는 한 세대 안에 새로운 종이 창출될 정도의 빠른 속도로 진화가 일어났다.
이 책<새로운 창세기>은 에드워드 오스본 윌슨이 2019년에 쓴 것이다. 사회들의 기원에 관하여, 라는 부제로, 인간사회건 개미사회건 진화해간다. 그는 이 책에서 기존의 주장과는 달라진 태도 변화를 보였다, 오늘날 진화론에서 받아들이는 기본적인 이타성이 혈연 이타성과 호혜적 이타성이라 생각했고, 집단에 대해 나타내는 개체의 이타성은 중심에서 벗어나 있다고 봤다. 즉, 개체의 이타성은 변방 정도로 치부했는데, 월슨은 인간과 일부 개미 집단의 진화를 설명하는 중심에 집단 이타성을 배치하고 있다.
역사상 대부분의 시간 동안 조직화한 종교는 자신들이 인간 존재의 의미를 알려주는 전권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실제 인간 존재의 의미를 설득력 있는 방식으로 다루기 시작한 것은 최근이라는 것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환상 중 어떤 한 가지를 선택해서 믿음을 이어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부족 중심주의 때문이다. 부족 중심주의가 인류가 탄생한 방식으로 인해 나타난 결과임을 보여준다(선민주의?),
인간은 어떠한 진화 과정을 거쳐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일까 "진화의 대전환" 과 “진사회성”
진화의 대전환을 보자, 지구 생물의 역사는 자연 발생적인 생명 탄생에서 시작했다. 수십억 년이라는 시간을 거치면서 세포가 형성, 이어서 기관과 유기체, 마지막으로 200~300만 년이라는 시간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 수 있는 종이 태어났다. 인간은 무한정 확장할 수 있는 언어와 추상적 사고능력을 갖추게 됐는데, 이 덕분에 탄생으로 이어지는 단계를 상상해볼 수 있다. 진화의 대전환의 과정, 생명의 기원에서 복잡한 세포의 발명으로, 유성생식의 발명, 이것으로 DNA 교환을 위한 통제가 이루어지고, 시스템이 구척되고 종이 다양화됐다. 이런 경로로 다세포로 이루어진 유기체의 기원, 사회의 기원, 언어의 기원이 차차로..
다음으로 진사회성을 보자. 지은이가 설명하는 개념은 ‘진사회성’이다. 진사회성 집단은 사회성을 갖춘 동물들이 이를 수 있는 최정상에 자리하는 집단으로 전문적인 역할을 하는 개체들이 다른 개체들에 비해 번식을 적게 하는 높은 수준의 협력과 분업이 이루어지는 집단을 말한다. 진사회성에 관해서는 두 가지 의문이 제기된다. 첫째 사회를 위해 일하는 많은 개체가 번식을 중단할 경우 어떻게 발달된 사회가 진화할 수 있었을까?, 이에 관한 답변은 집단의 일부 구성원들의 희생이 다른 경쟁 집단들보다 그 집단에 충분한 이점을 제공한다면, 그러한 구성원들은 자신들의 생명을 단축하거나 자신들의 개별 번식을 줄이거나 두 가지 모두를 실천에 옮길 수 있다.
인간의 진사회성을 보여주는 그럴듯한 사례가 있다. 폐경 후의 할머니 도우미 계급이다. 인간 개체들은 사회에 유용하지만 그들 자신의 번식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직업을 갖거나 사회의 부름에 기꺼이 동참할 준비가 돼 있기도 하다. 또한, 동성애자들은 다른 사람에게 유달리 많은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런 사실을 고려하면 동성애자들을 진사회성 계급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집단 선택이론을 통해 진사회성에 대한 의문을 해소한다. 이런 진사회성 집단을 이루는 종은 17종에 불과할 정도 희귀하다.
그렇다면 진사회성 집단이 다른 집단보다 살아남을 가능성이 크다면 많은 종에서 진사회성 발달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 아닌가, 하지만 왜 그렇게 되지 않았을까, 지은이는 일부 계급의 진사회성 개체들이 이타성과 이기성이라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 데에서 그 답을 찾는다. 하나 혹은 그 이상의 유전자 돌연변이가 진사회성 군락을 탄생시킬 수 있지만, 원래 유전체의 나머지 부분은 모두 홀로 사는 생활에 적응된 채 남아있다는 것이다. 만약 집단을 이루는 일부 개체들에서 홀로 사는 생활에 적응된 측면이 완전히 사라져 버리면서 오직 이타적인 특성만 남게 된다면 진사회성 집단이 훨씬 빈번하게 나타났을 것이라고 한다.
마르쿠스 가브리엘은 인간이란 종은 본능적으로 군집 생활을 한다고, 인간종의 군집 생활을 통해 진화해온 것인가, 그렇다. 동맹 관계 등을 통해 다른 집단과 경쟁을 통해서, 인간 사회의 진화 원동력으로서의 집단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경쟁의 중요성은 문화 진화 과정을 거쳐 온 인류사 전반에 걸쳐 이러한 동맹이 선호됐다고 생각하는 편이 합당하다는 의견도 있다.
아무튼, 이런 과정을 거쳐서 진화해 온 인간은 궁극적으로 어떤 존재가 되고자 하는 것인가,
이 질문에 관한 답은 아직도 고민 중이다. 궁극적으로 생물학적으로 인간의 진화경로가 밝혀졌고 객관성을 지니면서 새로이 조명을 받고 있지만, 인문학적으로는 어떠한가,
가장 듣고 싶었던 “어떤 존재가 되고자 하는 것인가?”라는 답은 아직이다. 이에 관한 답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출판사에서 보내 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