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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에는 이야기가 숨어 있다
목경찬 지음 / 담앤북스 / 2023년 4월
평점 :
절에는 그 나름의 이야기가 있다. 신화이든 전설이든
지은이 목경천 선생, 불교 문화를 설파하는 전도사라고 해야 할까, 오래전 템플 스테이 프로그램 평가회에서 대 여섯 시간 정도 강의를 들은 적이 있는데…. 마치 그때의 강의 뒤편을 듣는 듯하다.
절에는 절 마다의 이야기가 있다. 비슷비슷한 이야기도, 아주 신기한 이야기도, 전남 화순의 운주사의 와볼(누워있는 불상) 이러고 알려졌는데, 실은 와불이 아니라 일으켜 세우지 못한 상태로 미완성 상태다. 우리가 잘 모르거나 오해하고 있는 것들에 대한 답이 이 책에 담겨있다.
불교 문화도, 절의 웃어른을 방장이니 조실이니 하는 따위는 그저 주지 스님의 스승, 큰 스님 정도로…. 방장은 총림 사원(선원, 강원, 율원을 갖춘 사찰, 통도사, 해인사, 송광사, 수덕사, 백양사의 가장 큰 스님), 조실은 그 아래 단계 절에서 가장 큰 스님을 부르는 용어다.
불기(불멸 기원)로 따지면 2023년은 2567년이다. 이 천여 년의 역사를 거치는 동안 부처는 절간에서 대중의 마음속에서 제각각 표현되기 마련이다. 변화 없음은 죽음이요. 사멸인데, 불기란 불멸이어서 끊임없이 대중과 함께 모습을 바꿔가기 마련이다.
종교의 진리는 나를 찾고, 나로 돌아가는 것 아닐까? 부단한 정진.
로마 가톨릭의 성직자들을 통해서만 하느님과 통할 수 있나? 신은 라틴어로 하는 기도만 알아듣는 것인가, 독일어는 안 되나, 일본의 창가학회(창가교육학회, SGI, 일본의 공명당)역시 출가 수행자만 부처가 될 수 있는가, 재가 수행자도 부처가 될 수 있다. “법화경”을 경전으로 인간혁명을 지향하며, 기원문은 “南無妙法蓮華?=난묘호란케쿄)” 우리가 보통 남묘호랑게교라고 부른다. 이 모든 변화가 교조적이거나 부패, 본질의 왜곡에서 시작된 대응, 응전, 자각이라 할 수 있으나, 이 역시 진행형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3부 체제다. 1부에서는 돌부처님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싣고 있다. 시대를 닮은 부처님의 얼굴, 마을로 간 불상, 다양한 소통으로 우리 곁에 오신 부처님, 이 짧은 문장 속에 모든 게 담겨있는 듯하다. 부처란 멀리 떨어진 첩첩산중 절간에 모셔진 철상, 동상이 아니라는 말이다. 모든 이들의 마음속에서 있다가 필요할 때 나타나는 그런 존재라고나 해야 할까, 2부는 절간, 어디에나 그려진 동물 그림들, 열두 동물과 나누는 법담, 쥐, 소, 호랑이, 토끼, 용, 뱀. 12간지…. 이 그림들 속에 담긴 이야기들, 3부는 사찰 속 숫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다. 33응신과 원이삼점, 팔상도, 염주를 돌려 108번뇌를 없애다 따위의 흥미로운 이야기가. 그중에서도 흥미로운 대목을 골라보면,
스님들이 성불하면 들판에는 소가 없다는 말, 시주만 먹고 놀면 소가 된다
왜 스님들이 성불하면 들판에는 소가 없을까?
출가 수행자가 시주물을 제대로 사용하지 않아서 구렁이도 태어나기도 하고, 시주물을 받고서 그 공덕을 모르고 수행을 게을리하여 소로 태어난다는 이야기도 있다. 시주물이 무섭다는 말이다. 일본에서는 게으른 사람을 소 같고 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쉽게 이해되지 않을까?
절간 어디엔가 그려져 있는 심우도(尋牛圖)-잃어버린 소를 찾아가는 여정을 표현한 그림이다. 심우도는 마음을 소에 비유하여 수행자가 본성인 불성을 깨달아가는 과정을 시각적으로 나타낸 선화다. 십우도, 목우도라고도 한다.
합천 해인사에는 한산 스님과 습득 스님 이야기를 그린 그림이 있다. 이 스님들은 요즘 말하면 습득 스님은 공양간에서 그릇을 씻거나 불 때는 일을 하였는데, 설거지하고 난 뒤에 남은 밥을 바위굴에 살면서 늘 해어진 옷에 큰 나막신을 신고 다니시는 한산 스님이 오면 내주었다. 대중들은 이들이 그들에게 보인 모습과 기이한 언행을 이해하지 못해 멸시와 천대를 받았다는데…. 어느 날 주지 스님이 산 아래 목장을 지날 때, 이 두 스님이 소 떼를 향해 이 도반들아 소가 된 기분이 어떠한가? 전생에 시주밥을 먹고 놀더니 기어코 소가 됐구나 하며….
100여마리 소 무리 중에 30마리가 스님이었다나. 이 음식은 어디서 왔는고. 내 덕행으로 받기에는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을 버리고 몸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 도업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라고 공양하기 전에 외우는 이 공양게는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준다.
우리가 아는 유명한 이야기, 고려말 조선 개국초 훌륭한 스님 세 분의 화상, 인도 출신인 지공스님, 지공스님의 법을 받은 분이 나옹 스님이고, 그의 제자가 무학 스님이다. 이성계와 일화, 돼지 눈에는 돼지로 보이고, 부처님 눈에는 부처로 보인다는 무학 스님의 말에 이성계가 호탕하게 웃었다는데, 만일 성질을 냈다면 어땠을까? 이런저런 평가는 결국에는 자기 잣대로 하는 법, 일체유심조(모든 건 마음 먹기에 달렸다)로다.
국민이 낸 세금(시주)으로 먹고사는 이들(공무원, 국회의원, 대통령 따위)이 시주만 축내고 제대로 일을 하지 않으면…. 내 덕행(임무와 역할)으로 받기가 부끄럽지 않은지…. 생각해봐야 할 듯하다. 밥만 축내는 밥충이들이 행세하는 나라.
절 이야기, 모든 가르침은 하나로 돌아간다. 세상에 누구나 귀하다. 높고 낮음이 없이
하늘 위 하늘 아래 오직 나만이 존귀하도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절대자란 말이 아니다. 누구나 가진 존엄성은 누구에게도 무시될 수 없다. 누구나 존중되어야 하므로 높고 존귀한 것이다. 노자가 말한 자중자애, 세상의 기준은 바로 “너”, “나”, 나를 존귀하게 여기지 않고, 모델, 맨토를 좇는 일은 허명을 좇는 일이다. 그들에게는 그들의 기준이 맞기에 그런 것이니…. 나를 중히 여기고, 나를 사랑하라는 말과 통한다.
<출판사에서 보내 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