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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습 자본주의 세대 - 88만원 세대는 어쩌다 영끌 세대가 되었는가?
고재석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3년 4월
평점 :
세습 자본주의 세대
80년대 생들이 경험한 한국 자본주의의 축복과 고통을 주제로 쓴 이 책, 88만 원 세대는 어쩌다 영끌 세대가 되었는가?
이 책의 지은이 기자 고재석은 1986년생이다. 넥타이 부대의 강풍과 노동자 대투쟁의 깃발과 만장이 거리를 메우기 한 해전에 태어났다. 그는 2005년에 상경했다. 이제 새내기 대학생이 되어 가장 먼저 배운 것은 숨죽이는 법…. 88만 원 세대, 그리고 운동권 세례를 받은 마지막 세대?, 뭐가 좀 이상하다. 운동권, 비운동권의 구분법이 묘하다. 아무튼, 그렇다. 이른바 정치에 관심이 있냐 없느냐로 구분 짓는다면, 소설가 한강이 말했다는 표현을 빌려와 보자. "애초에 우리는 개인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을 구분할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다." 딱 들어맞는 말 아닌가?
88만 원 세대의 저자 우석훈이 해제를, 아주 간략하게. 그가 88만 원 세대를 쓸 때가 30대 후반인데, 고재석이 <세습 자본주의 세대>를 쓴 때도 30대 후반이니, 이 20년 동안, 우리 사회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하고 제자리를 맴돌았다. 아니, 오히려 후퇴한 것인가, 80년대 젊은이들은 386세대라는 별칭도 있지만, 지금의 30대는 MZ로 묶인다. 40대 초반부터 20대까지…. 이렇게 통으로 묶인 세대, 뚜렷한 특징이 없는 것인가?
이 책은 80년대 생이 생각하는 아, 대한민국이여. 어디로 가는가, 라는 부제가 어울릴 듯하다. 7장 체제로 구성됐는데, 1장에서는 결혼과 부동산 시장의 패자, 이른바, 5.6.9평이 삶의 공간인 세대, 삼미남(30대 미혼남)이 넘쳐나는 세대를 말한다. 2장. 불행한 세대라는 자괴감인가, 어쩌다 80년대에 태어나서 이 고생을. 3장, 사다리를 잃은 세대, 즉, 패자부활전은 없다. 달리는 기차를 놓친 이들을 위해 뒤늦게 출발한 임시열차는 이제 없다. 멈추어 설 정거장이 없기에 달려도 이미 출발한 기차를 따라잡을 방법이 없기에, 4장에서는 진보 담론이 우위였던 시대를 그린다. 5장, 1980년대 생의 변심, 마지막 운동권세대인 80년생들이 노무현을, 문재인을 그러다가 윤석열을 찍었다. 왜 변심했을까, 6장 이준석으로 대표되는 능력주의, 가장 논쟁적인 능력주의의 본질은 뭐지, 7장, 너무 차갑지도, 지나치게 뜨겁지도 않은 이란 소제목 아래 꽤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80년 대생들의 항변이다.
88만 원 세대, 시간이 국가 부도 위기에서 벗어나 평상을 되찾게 되면, 회복될 거라는 생각은 너무 순진했다. 우리 사회에 넘쳐나는 똑똑하다 못해 절세 신공을 뽐내던 경제학자들이 왜, 그들은 알고도 모른 척했던 것인가, 아니면 정말 몰랐던 것인가, 신자유물결이 한반도를 휘감아 칠 때, 이렇게까지 기나긴 어둠의 터널 속을 헤맬 줄이야….
사다리를 잃은 세대
이 책 중에서 가장 눈길이 가는 대목은 “사다리”을 잃어버렸다. 어떻게 해서든지 위층으로 올라갈 희망마저 없어졌다면. 고도원의 책<고도원의 책>에서 절벽 벼랑 끝이라도 길은 있다고…. 꽤 희망적인 생각이다.
1988년생, 그들은 <88만 원 세대>가 출간된 해에 대학에 들어갔다. 입학 동기 200명 중 5%, 10명만이 대기업과 공기업에 들어갔고, 10% 중견기업에, 50%는 중소기업에 입사했다. 여기까지도 좋다. 여기서 정규와 비정규로 구분되는 예도 있으니, 다 취직됐다고 기뻐할 일은 아니었다.
정규직이 그렇게 대단한가?
정규직에 목을 매는 사람들, 미래 설계를 할 수 있냐 없냐, 불안정이냐 안정이냐의 기준이 되기에 그런가, 적어도 90년 초반, IMF 사태 이전까지, 정규냐 비정규냐 하는 생소한 단어는 들어 본 적이 없었던 세대들, 느닷없이 계약직, 88만 원 세대가 생겨난 시대, 별 인기 없던 쥐꼬리 봉급이라던 공무원이 철가방, 정년보장의 정규직이라는 꿈의 직장이…. 너나 할 것 없이 노량진으로 몰려들어 “노량해전”을 방불케.
고재석은 자신도 영끌이라고 고백한다. 80년대 생들의 정서는 민생과 경제 이슈에 민감하고, 거대 서사에는 반감을 갖는다고….
아무래도 이 대목에서 미국의 이야기를 해야겠다. 백인 노동자층이 왜 공화당의 부동산 재벌에 구라만 쳐대는 몰상식의 지존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했을까? 왜. 재미있는 분석이 있다. 제니퍼 M.실바<사라질 수 없는 사람들>(문예출판사, 2022), 우리 사회의 정치적 냉소주의. 노동자들이 왜 노동계급과 연대하겠다는 정당을 지지하지 않았을까? 바로 그 해답이 여기에 있다. 정치적 상상력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희망을 잃게 되면 극단적으로 되는가, 꼭 그렇지는 않다. 제니퍼 M 실바의 문제의식은 간단명료하다. 빈곤과 폭력, 각종 약물중독에 시달리는 콜브룩(미국 펜실베이니아의 한 지역으로 무연탄산업으로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할 수 있었던 곳을 부르는 가상의 이름)에 거주하는 노동자들은 자신의 비극적 상황을 어떤 방식으로 대처해나가는가, 정치적 무관심과 냉소주의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지, 자신들의 계급적 이해관계와 충동하는 공화당 대통령 후보인 80억 달러의 재력가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한 의도는 무엇인가, 그들은 왜 공적 제도나 공동체를 불신하고 고립된 삶을 집착하는가,
도대체 이런 모순되고 역설적인 상황에 대한 사회학자들의 해명은 오래된 과제였다. 노동계급에 관한 통상적인 설명은 계급의식이라는 의식적 범주로 노동자들의 행위를 규명해왔지만, 이제는 이런 규정은 통하지 않는다. 노동자들이 보수정치인이나 자유주의자 혹은 친자본적인 정치인에게 지지를 보내는 현상, 이는 미국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도 발견되는 현상이다.
미래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이미 한 층 위로 올라갈 수 있었던 사다리가 없어진 지 오래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그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80년대 생들이 변심한 게 아니라, 그들의 처절한 몸부림이다. 어리석게 왜 윤석열을 찍어, 아무리 민주당이 똥볼에 헛발질을 했더라도 그건 아니지, 아니다. 이미 이런 논법은 통하지 않는 시대다.
우석훈은 해제 제목을 “30대가 맞이한 공포에서 나오기 위하여”,라고 달았다. 30대들이여 진보와 보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 누가 현실을 바꿀 것이냐가 문제야, 이제 30대 버전의 흑묘백묘 시대가 오면 좋겠다고 소원한다.
혼란 시기에 나아갈 방향을 잃은 게 아니라 이게 혼란의 시기인지 그런 시대인지조차 모를 정도로 어지럽게 돌아가기에, 내가 서 있는 곳이 어딘지 조차 알 수 없는 건 아닌지, 지은이 고재석의 30대론을 읽으면서, 30대 80년 대생의 심란상태를 엿볼 수 있었다. 파편적으로 퍼부어대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30대 기수론을 외치며 우리 사회를 젊게 만들, 청년들의 반란을 기대한다. 청년들이여 일어서라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라.
<출판사에서 보내 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