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일리치의 죽음 (러시아어 원전 번역본) - 죽음 관련 톨스토이 명단편 3편 모음집 현대지성 클래식 49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윤우섭 옮김 / 현대지성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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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앞에서 깨달은 삶의 의미<이반 일리치의 죽음>

 

세계고전문학에서 톨스토이는 독특한 존재인 듯싶다. 자신에게 명성과 풍요, 번영을 안겨주던 영지를 버리고 빈손으로 민중 속으로 들어가 사랑을 실천하려던 그는 한적한 기차역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군 복무를 마치고 영지로 돌아와 농민학교를 세우고 농민과 아동교육에 애를 쓰기도…. “농노해방”, 그의 대표작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그리고 <부활>에서도 죽음이 나온다. 삶과 죽음 사이에 올곧게 살아가려는 노력,

 

확실히 독특한 그만의 삶의 방식이 아닐는지, 이 책에 실린 세 편의 작품 <이반 일리치의 죽음>, <주인과 일꾼>, <세 죽음>의 관통하는 “죽음”, 이들 작품 속에는 그의 인생관, 종교관, 윤리관이 드러난다. 삶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겨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전한다. 그리스도의 사랑, 세속적인 삶을 살다가 갑자기 찾아온 죽음 앞에 자기를 포기하면서 전에 없던 기쁨의 실체를 만난다.

 

소크라테스의 전설, 그에게 크산티페라는 악처가 있었기에…. 톨스토이의 경우와는 다르지만, 번번이 갈등을 빚는 아내 베르스, 그녀와의 갈등기 동안에 그는 글쓰기에 천착할 수 있었던 아이러니.

 

검사 이반 일리치가 추구했던 삶은 안락하고 편안한 삶이다. 아내의 임신, 출산 이후 아내와 부딪치는 일이 자주 생기면서, 귀찮은 일은 애써 피하려 했다. 성실하게 오래 근무했지만,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 그는 좋은 자리를 찾아다니다 우연한 기회에 얻어 자리를 얻지만, 그에게 닥쳐오는 죽음의 병마, 자신이 온 힘을 다해 차지하려 했던 지위 그 자리만 얻으면 그에게 안락하고 편안한 삶이 찾아올 줄 알았건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고통과 죽음, 이게 무엇 때문에….

 

생각이 여기에 미치고, 어린 시절, 순진무구, 자유로움, 모든 것을 의심 없이 받아들였던 그 시절로 되돌아가려 하지만. 자신이 지금껏 잘못 살아왔음을. 그의 내면의 세계가 열린다. 모든 걸 받아들이면서 찾아온 기쁨을... 잡으려 했던 삶의 끈을 놓는 순간에 찾아오는 그 무엇,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묻는다.

 

이웃 사랑의 구현<주인과 일꾼>

 

상인 바실리 안드레이치 부레후노프의 삶의 원칙은 “열심히 살아라. 그러면 하느님이 주실 것이다”라는 말, 즉 부의 창출이다. 반대로 니키타는 성 니콜라우스처럼 부지런하며 이웃을 위해 일하는 일꾼이다. 대비되는 가치 체계를 가진 두 사람의 이야기는 신을 향해. 바실리에게 신의 먼 존재, 그의 생각은 그저 열심히 일하면 하느님이 보상해주는 것이라고,

 

톨스토이는 여기서 ‘이웃 사랑’을, 그에게 중요한 종교개념 중 하나였던 이웃 사랑이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주인의 신이요 일꾼은 인간임을.

 

바실리는 버려진 썰매에서 얼어붙어 니키타를 발견하고, 그의 몸을 데워주는데, 이 과정에서 뭔가를 깨우친다. 니키타가 자신임을…. 니키타는 결국에 살아나고, 제아무리 자신만을 생각하고 사는 사람이라도 어떤 국면, 장면에서는 무의식 속에 갇혀있던 ‘이웃 사랑’이란 본래의 것 ‘측은지심’ 주인의 신이요 일꾼은 인간임을….

 

자연법칙에 순응<세 죽음>

 

각각 다른 형태의 세 죽음, 귀부인, 마부, 그리고 나무의 죽음을 보여준다. 앞의 두 죽음은 인간의 그것이다. 그들이 죽음을 맞이하는 자세도 전혀 다르다. 하지만 인간의 죽음이다. 마부 표도르는 그저 죽는다. 이를 일반법칙이라 하자. 귀부인의 죽음은 일반법칙과 충돌한다. 무덤 앞 십자가용으로 도끼에 찍혀나가는 나무는 아무런 저항 없이 죽는다. 아름답게.

 

마부는 불치의 병에 걸렸다. 그는 이를 받아들여 정신적, 육체적으로 저항하지 않고 서서히 죽어가는 모습을 톨스토이의 눈은 좇아간다. 귀부인의 죽음, 영적인 면, 그녀가 겪는 정서적 경험. 그녀는 이탈리아에 갔더라면 건강을 회복했을 것이라고…. 그러면서 약초 치료에 매달리는데,

 

죽음을 맞이하는 인간과 나무, 톨스토이에게 죽음이란 성직자도 해결해주지 못하는 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이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찾아오는 법, 살려고 몸부림치지만 잠시 유예를 얻을 뿐이다. 나무 역시 그러하다.

 

세 작품이 쓰인 시기는 각각 다르다. 1858년에 쓴 <세 죽음>, 1885년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 1895년의 <주인과 일꾼>, 하지만 일관되게. 러시아의 현실 사회에서 종교와 윤리,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매개 혹은 관념 중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다가오는 죽음, 계급도, 부의 많음과 적음도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

 

애써 외면하고 피하려 하지만, 인간에게 다가오는 죽음을 생각한다면, 내세도 없다. 다만, 현세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들에게 회한이 있듯, 이를 건강하게 왕성하게 활동하는 시기에 생각했더라면,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았을까, 우리 모두 죽는다. 언젠가는 죽음이 찾아온다.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염세도 그 무엇도 아닌 그저 우리 앞에 놓여있는 통과의례다. 죽음 앞에서는 아무것도 필요 없다. 그저, 겸허하게 열심히, 이웃을 사랑하며, 후회 없는 삶을 살라고….

톨스토이의 삶이 전하는 메시지 그 자체다.

 

<출판사에서 보내 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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