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심연 속으로
앤서니 데이비드 지음, 서지희 옮김 / 타인의사유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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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 속으로 

 

영국 UCL 정신건강연구소 소장 앤서니 데이비드의 임상 사례 연구 노트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의 제목 ‘심연 속으로’를 보는 순간, 20여 년 전 조승우가 출연했던 영화<H>가 떠오른다, H는 최면의 머리자다. 조승우는 연쇄살인범으로 교도소에 복역 중인데, 그의 수법을 모방한 사건이 이어지고…. 교도소로 찾아온 형사에게 “심연을 들여다보라고”라는 말을 남기며, 최면을 건다…. 꽤 강렬한 인상을 받아서인지 20년이 넘었지만 지금도 기억한다. 

 

“심연(深淵)” 문자 그대로 깊은 못, 좀처럼 빠져나오기 힘든 구렁을 비유한 말이다. 지은이는 이 책에서 그가 경험한 사례를 소개하면서 정신건강의 세계를 소개하고 있다. 7장 체제인데, 1장은 파킨슨병과 우울, 이 사이에 심연은 도파민이다. 부족해도 문제, 넘쳐도 문제, 이를 어떻게 조절, 조율할 것인가를 고민한다. 그리고 2장 외상성 뇌 손상의 무서운 후유증, 현실과 비현실의 망상을, 조율하려 해도 그사이에 놓인 깊은 구렁텅이는 결국 그의 인격마저 변화시키는데, 신체와 정신의 그 중간 어디에 존재하는 무엇을 어떻게 달래야 하는가?, 3장에서는 자살을 뒤르켐이 도덕적 선택이라고 말했던 것들, 자살에 관한 우리 인식과 오해, 자살의 메커니즘 등, 4장 병원 안과 밖에서 일어나는 인종차별, 인종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인종사고, 조증과 우울의 중간은…. 5장 허기와 생식에 관하여, 6장 조용한 음악, 조현병 환자, 사고로 식물인간 상태에 놓이는데…. 7장에서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히스테리를 들여다보기도….

 

뇌와 정신, 심신의 작동, 자살의 메커니즘

 

이 책은 뇌와 정신이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는지, 혹은 어떻게 지배권을 두고 다투는지에 관한 내용인데, 우울과 조증에 관한 설명이 꽤 재미있다. 인종시각, 즉 조현병이든 뭐든 인종차별이라는 요소가 관여한 건 아닌지에 대한 생각들, 그리고 뒤르켐의 자살론, 개신교도와 가톨릭교도의 자살률 차이에 관한 설명에서 종교적 요인을 들고 있는데, 본질에서 개신교는 더 개인주의적이며 ‘자살 완화 작용’의 기능을 하지 못한다고…. 이 대목 역시 흥미롭다. 많은 쟁점, 아직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은 여러 현상에 관한 지은이의 견해 또한 새겨 둘만 하다. 

 

생리 리듬을 깨지면, 심신의 균형이 깨지고, 잠재적 질병 상태는 드러나는데, 

 

우리가 인식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순환 기분 장애”를 경험하면서 산다. 뭐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어떤 때는 생각하는 대로 말이 술술 나와서 재치 있고 영리하고 박식해 보이며, 더불어 행동거지도 부드럽고 우아해지고 센스도 고양되는 경험 말이다. 사람들은 때때로 창의력과 에너지가 높아지는 시기와 조용히 사색에 잠기는 침체기가 있다. 

 

이렇게 오르락내리락하는 순환, 이 양극성은 유전적 결함으로 타고난 것이라고 다수의 전문가는 말한다. 이는 생식주기와도 관련성이 있는듯하다. 겨울잠을 자야 하는 포유류가 그렇지 못할 때, 또 일부 포유류는 성적 흥분 상태인 발정주기가 있다. 우리 조상들의 생활상을 보자. 해가 뜨면 일어나서 일을 하러 나가고 해가 지면 잠을 잔다. 이런 생리 리듬은 하루 주기로 돌아가는데, 이런 생리 리듬은 복잡한 호르몬과 신경 생리학적 제어체계에 의해 뒷받침된다. 예를 들어 주·야간 교대근무 (최근 빌딩 경비팀장의 쉼 없는 근무로 갑작스레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망한 사건을 기억해보라) 는 생리 리듬을 방해하여 안녕과 기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이런 상태 변화에 특히 취약한 사람(개인차는 분명 존재한다)은 조울증세가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미….

 

심신의 조화는 생리 리듬이다

 

우리는 심신의 조화라는 옛사람들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고 귓등으로 흘려보냈다. 지금도 그러지만 말이다. 그런데 최근 정신건강에 관해 태도, 정신건강이란 말만 나와도 정신병자 취급을 하던 그 시절에서 지금은 누구나 정신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는 열린 태도로 조금씩 바뀌고 있지 않은가, 감정노동, 장시간 노동, 주·야간 교대근무 등이 정신과 신체, 뇌와 정신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됐다. 아직도 왜곡된 형태로 인식하는 때도 적지는 않지만….

 

이 책은 심신 건강, 정신건강이 어떻게 망가지는지를 그리고 어떻게 회복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성공사례를 다루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준다. 

 

69시간 노동 시간제…. 이를 주장하는 이들에게 이 책을 보내고 싶다. 인간은 기계와 달리 생리 리듬이 깨지면 그 후유증은 다양한 현상으로 나타난다. 전혀 연결고리가 없어 보이는 것들이 놀랍게도 연결돼있으니 말이다. 또 이 책은 우울과 조울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뒤르켐의 자살론의 소개에서 자살에 관한 우리의 인식의 천박함까지... 꽤 많은 이야기거리를, 과제를 남기고 있다.

 

<출판사에서 보내 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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