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의 종말 - 우리는 왜 일에 지치고 쓸모없다고 버려지는가
조나단 말레식 지음, 송섬별 옮김 / 메디치미디어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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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아웃은 상대방의 존엄성을 존중하지 않은 결과물

 

이 책은 번아웃의 기원을 추적한다. 왜 죽도록 일을 하는가, 그 원인이 무엇인가, 마치 불을 찾아 몸을 날리는 불나방처럼.

 

번아웃(소진)은 우리가 일터에서 경험하는 압박과 불안을 이야기할 때 자주 사용하는 용어다. 하지만 번아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이 담론은 노동자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은이 조나단 밀레식도 이런 노동자 중 한 명이었고 종신교수직을 그만두면서 고통에서 해방됐다. 

 

20세기의 사람들은 기술이 발전하게 되면 노동시간도 짧아지고 경제적으로 풍부해지며, 충분히 여유 생활을 즐길 수 있는 시대가 오리라고 막연한 기대와 희망을 품었다. 모두다 힘든 육체적 노동에서 벗어날 것이라고…. 하지만, 오히려 일하는 시간이 늘고 정신적 황폐에 이르기까지 온 힘을 다해 달리는데. 지금까지 번아웃에 관한 생각은 번아웃이 노동자들의 수면 부족, 사기 저하를 불러일으켜 심장병, 우울증, 불안의 가능성을 크게 한다는 점에 주의를 촉구한다. 또한, 스트레스로 의료비가 더 든다는 번 아웃의 결과만 말할 뿐이다. 

 

번아웃이라는 복잡한 현상은 일 안팎의 행동 모두에 영향을 미치는 내면적 경험이다. 이 책은 2부 8장으로 이뤄졌다. 1부에서는 지난 50년간 어떻게 번아웃 문화가 형성됐는지를 다룬다. 1장에서는 번아웃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번아웃이라는 개념조차도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상황을 논하고, 2장에서는 번아웃과 질병을, 3장에서는 번아웃이 폭넓고 다양한 현상이 됐는지를, 4장에서는 일터에서의 스트레스 증가, 번아웃문화는 노동자의 인간성을 존중하지 못한 윤리적 실패의 결과물, 5장 일, 우리의 노동윤리는 이상을 위해 번아웃을 기꺼이 감수하는 순교자의 자세를 궁극적인 미덕으로, 노동자의 희생으로 궁극적으로 이익을 얻는 것은 고용주다. 2부에서는 일을 삶의 중심에 두지 않는 새로운 문화창조 방법을 다룬다. 번아웃을 방지하고 치유하려면 집단적으로 일에 관한 이상을 낮추고, 노동자들의 인간 존엄성에 맞는 나은 노동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6장에서는 교황,초월주의자, 마르크스, 페미니스트를 비롯한 사상가의 생각을, 7장 베네딕트회 수도사들은 하루 3시간만 일하는 사례를, 8장 반 번아웃 문화의 예시를 들고 있다. 

 

번아웃은 노동환경문제만이 아닌 일에 대한 사회적, 도덕적, 영적 믿음의 좌절이다

 

지은이는 대학 종신교수도 번아웃을 겪을 수 있다면 노동환경만이 문제가 아니다. 급여, 혜택, 안정성이 전반적으로 개선된다고 해서 근절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또 다른 문제는 무엇일까, 일한다는 것, 바로 일이 사회적, 도덕적, 영적으로 충만한 삶으로 나아가는 확실한 방법이라는 우리의 믿음이다. 일은 우리가 바라는 이상을 가져다주지 못하며, 이상과 현실의 거리만큼이나 소진, 냉소주의, 좌절을 일으킨다.

 

번아웃은 사람들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이 일하는 사회적 환경의 문제다. 일터가 업무의 인간적 측면을 인정하지 않을 때 번아웃의 위험성은 커지고 뒤따르는 대가는 크다. 결국, 번아웃은 개인이 아니라 제도에 의해 유발되는 것이다.

 

일, 노동이 아니라 일하는 사람, 노동자를 존중해야,

 

지은이는 우리는 왜 일에 지치고 소외되고 쓸모없다고 버려지는가, 왜 이로 인해 삶에서 실패했다고 느끼는가, 직업은 왜 인간의 가치와 정체성의 상징이 되었는가라는 질문을 내놓고 이에 천착하면서, 과학과 문학, 철학이라는 돋보기로 번아웃을 들여다본다. 왜 순교에 가까울 정도로 일에 높은 이상을 두려워하는지 그 기원을 찾고, 지속해서 일해야 한다는 문화적인 헌신에 저항하는 개인과 공동체의 모습을 그린다. 

 

번아웃은 궁극적으로 상대방의 인간적 존엄성을 존중하지 않은 결과물이기에 내가 번아웃을 어떻게 막을까 하는 ‘나’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당신의 번아웃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하는 접근법이 되어야 한다. 더 나은 일터, 더 나은 사람이 되는 방법은 무엇인지, 

 

지은이는 노동자가 아닌 노동에 존엄성이 생겨야 하는 것이 번아웃을 방지하는 첫 단계라고 본다. 고용주는 업무환경에서 틈새를 좁히는 책무를 가진다는 것인데, 문화 전반은 이상이라는 차원에서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1891년 교황 레오 8세의 자본과 노동의 관계를 다룬 <레룸노바룸>칙서, 인간존중원칙

 

교황 레오는 고용주의 첫째 의무는 “모든 이가 기독교적 성품으로 인해 고귀해진 한 인간으로서 가지는 존엄성을 존중하는” 것이라고, 이런 존엄성이 있으므로 노동자들은 생활임금을 받을 ‘자연권’을 지닌다. 즉, 일하는 이라면 일의 종류와 관계없이 한 가족을 부양하기에 충분한 임금을 받아야 마땅하다는 뜻이다. 나아가 교황 레오는 노동시간과 휴식 시간은 “일의 속성, 시간과 장소의 상황, 그리고 일하는 자의 건강과 힘에 따라 정해져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육체적으로 힘들고 위험하므로 노동시간이 짧아야 하는 특정 노동자의 예시로 광부를 들었다. 레오 교황은 일의 존엄성이 아니라 사람의 존엄성이야말로 가장 고귀한 원칙이며 고용주는 직원에게 그 존엄성에 걸맞은 환경을 제공해야 하고, 이는 병약한 노동자에게 적은 노동시간을 할당하는 것 역시 이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전일제 근무를 할 수 있든 없든 그 누구에게도 생활임금에 미치지 못하는 금액을 지급해서는 안 된다. 

 

후대 교황들 역시 노동 정의를 더 고차원의 기반 위에 놓으려 한다. 교황 레오의 칙서 발표 90년 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라보렘 엑세르센스>라는 칙서에서 일이 존엄성을 가지는 이유는 오로지 인간이 존엄하기 때문이라고…. 인간의 일의 가치를 결정하는 근간은 이루어지는 일의 종류가 아니라 그 일을 하는 것이 한 인간이라는 점이다. 

 

존엄성이 인간에게 내재한 것이라는 개념은 또한 업무환경이 그 존엄성에 걸맞은 것이 되어야 한다고, 노동자의 능력에 맞춘 업무량, 가족을 부양할 수 있을 정도로 안정적인 임금과 일자리, 의사결정 능력에 대한 신뢰, 그리고 모든 노동자는 똑같이 가치 있다는 사실에 근거를 둔 공정대우가 그것이다. 이 원칙에서 윤리적으로 더 나은 노동이 나와야 번아웃을 깨뜨릴 것이다. 

 

이 책은 번아웃의 기원을 톺아보면서, 물신숭배, 일의 성과, 생산체계 속에서 기계부품으로 치부되는 노동력, 인간 노동의 진정한 의미는 인간과 노동력을 분리할 수 없다는 점이고, 일이 당신 미래에 꿈과 희망을 실현해주는 것이며, 이는 사회적, 도덕적, 영적으로도. 하지만 이런 믿음은 깨진 지 오래다. 19세기 말 교황 레오의 칙서, 90년 후의 요한 바오로 2세의 칙서에서는 여전히 자본과 노동의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일하는 사람에 대한 존중 “인간 존중”을 말하다. 이에 걸맞은 노동환경이 이뤄져야만 번아웃을 방지할 수 있다고…. 번아웃은 개인차에서 생기는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제도, 환경 정비가, 거기에 문화와 철학의 패러다임이 아니 본래 노동에 관한 태도가 바뀌어야 한다고….

 

 

<출판사에서 보내 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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