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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난 사람 별난 이야기 - 조선인들의 들숨과 날숨
송순기 지음, 간호윤 엮음 / 경진출판 / 2022년 12월
평점 :
별난 사람 별난 이야기(기인기사록)
한학에 조예가 깊은 물재 혹은 물재학인, 봉의산인 등의 필명으로 야담, 소설, 한시, 논설, 기행문 등 다양한 글쓰기를 했던 송순기, 매일신보 논설부장으로 일하다 36살에 요절했다. 1921년 그가 대한신보에 쓴 야담 ‘기인기사록’은 현토식한자(한문에 토를 다는 것으로 구절과 구절사이에 조사나 어미 등을 붙어 읽는 방법)였다. 연재의 특성상 1700자 내외의 이야기로 이뤄졌고, 상, 하권이다. 이 책은 국문학자 간호윤이 기인기사록 상권을 번역, 해설한 27편을 실었다.
의병장 김천일 부인의 예지담을 비롯하여 일지매와 임백호의 인연, 효종과 이완의 북벌담, 여인들의 박학과 시재담, 자신의 눈을 찔렀던 최북이야기 등 27편이 실렸다.
창의사 김천일 부인의 미래 예측과 방비
글은 여성 영웅담이다. 시아버지에게 곡식을 빌려달라 하고, 김천일에게는 동네의 바둑고수와 내기바둑을 하라고. 그리고 근동의 기갈 있는 이들과 교류하고 곡식을 풀어 민심을 얻으라고, 후일 임진년 일본군의 조선 침공 때, 김천일은 의병을 일으켜 신출귀몰한 방법으로 일본군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고. 이 이야기는 <청구야담>이나 <계서야담>에 실려있다고 한다. 간호윤의 재미있는 해설이 실려있다.
임진왜란 이후, 고와 갈이 거센소리와 된소리가 돼 코와 칼이 됐다고 말소리마저 변화시킨 것이 전쟁이라…. 이 얼마나 재치있는 해설인가, 또, 이 무렵 조선의 여성 전쟁영웅들(박씨전, 홍계월전 등)이 등장하는 것도 전쟁의 비극과 전쟁을 초래한 부조리한 남성 중심사회와 남존여비라는 가두리 양식장에서 사육되는 여성들에 대한 보상심리였다고….
이런 시각의 시비를 가리는 것은 별 의미 없다. 왜 여성들이 전쟁영웅으로 등장했을까 하는 당대의 시대적 상황을 유추해보는 것이 흥미로울 듯하다. 당대는 사색 당쟁의 시대였다. 동인과 서인, 바다 건너 일본의 전국 통일, 심상치 않은 군사이동, 일본으로 건너갔던 동인 김성길과 서인 황윤길은 각각 의견을 달리했다. 황윤길은 침략 조짐이 있다고, 김성길은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글쎄다, 단순하게 당파에 따른 경쟁심리가 국가위기를 초래했다고…. 좀 더 정치하게 살펴봐야 할 일이지만, 아무튼 그렇다. 하지만, 또 하나 알아둘 사실은 임진왜란 전의 조선은 남녀상속권은 동등했다. 율곡의 어머니 사임당은 본가에서 생활하고, 아버지 이원수는 사실상 데릴사위였으니. 전쟁 후로 여성의 지위가 하락했다. 아마도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여성들의 반발을 누그러뜨리려 여성 전쟁 영웅담이 나올 법도 하지 않았을까….
옛이야기는 액면 그대로라기보다는 나온 시기와 당대의 조정 내 권력 구도 등을 살펴보는 점도 중요할 듯하다.
또, 보자. 주인을 위해 원수를 갚은 계집종, 남을 대신하여 원수를 죽인 의로운 남아
누구 이야기일까, 동계 정온이 등장한다. 과거 보러 가는 길에 장례 때 상제가 타는 하얀 평교자를 탄 부인의 뒤를 따르는 계집종이 정온을 보며 추파를 던지는데…. 실은 그 집 주인은 부인과 정을 통한 자에게 죽임을 당했다. 숨겨뒀던 화살을 정온에게 내밀며 살인자를 죽여달라고 부탁하매. 정부를 죽이고 음부마저 죽이려 할 때, 계집종은 모시던 분이라 죽이지 말라고. 이렇게 해서 맺은 인연, 바로 과거에 급제한 후, 정온은 그 계집종을 부실(첩)로 맞이하여 회로 했다고.
실은 정온이 과거에 합격할 때 나이가 42살이고 보니, 뭐가 들어맞지는 않지만, 야담이니 아무튼 이 이야기는 남녀 간의 애정으로 인한 비극은 죽음을 부르기도 한다. 자신의 몸을 팔아서 주인 사내를 위해 복수한 계집종의 이야기는 누군가에겐가 괜찮은 사람일 수도, 또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고….
야담 속에 담긴 시대상 읽어내기
간호윤은 야담을 실은 뒤에 “별별이야기 간 선생 왈”이란 코너에 재미난 해설을 싣고 있다. 이야기의 시대적 배경과 당대의 사회상을, 남녀 관계와 질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불편의 진리인 듯,
이장곤의 이야기, 연산조 갑자년에 사화(선비들이 떼죽음을 당한 일)가 일어 청류가 거의 죽었다. 교리(조선 시대 종 5품 벼슬, 오늘날 중앙부처 과장급 정도라)를 지내다가 목숨을 지키려고 달아난 이 씨는 전남 보성을 지나는 길에 목이 말라 마침 시냇가에 한 처녀가 물을 긷기에 황급히 다가가 물을 청하자 처녀가 바가지에 물을 뜬 후, 냇가의 버드나무 잎을 훑어서 물에 띄워주었다. 이런 인연으로 유기장 집의 사위로 들어가는데…. 중종반정으로 이 씨는 복권되고, 그 처녀는 후부인에 봉해지는데.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 이야기는 이장곤 이야기로부터 시작하는데, 유기장의 딸은 임꺽정에서는 함흥 백정의 딸 봉단이다. 실제로 이장곤이 유기장의 딸과 혼인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장곤을 구해준 운명의 여인인 것만은 틀림없다. 춘향전은 춘향 역시…. 운명의 여인…. 이런 운명 같은 만남이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지혜에 관한 이야기
서애 류성룡의 삼촌, 어리숙한 바보로 알려졌다. 류성룡이 안동 본가에 내려왔을 때의 일이다. 평소 바보 삼촌(치숙, 痴叔)은 재능을 숨기고 산 지혜로운 사람이었다. 류성룡에게 바둑이나 한판 두자고 청하여, 본색을 드러내니 이에 놀란 성룡에게 삼촌은 일본에서 보낸 자객이 집으로 올 것을 알고, 스님이 오거든 절대 집에서 재우지 말고, 절로 보내라고….
왜 류성룡의 바보 삼촌 이야기가 생겨났을까? 해설이 없으니 알 턱은 없다. 진짜로 그의 집안에 치숙이 있었는지는…. 임진왜란, 풍전등화 같은 조선을 이끌 지도자로서 류성룡에게는 알려진 것 외에도 지혜가 있는 자들이 숨겨져 있다는 뜻인가,
조선 시대의 야담이란 게 이런 것이요. 내용은 이러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글 속에는 현실과 반대일수도 이상적인 사회의 모습을, 권선징악, 민화 속에 어리어리한 호랑이는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돌아다니는 이야기가 아니라, 민초들이 그리는 이상 사회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전설 따라 삼천리의 지명에 얽힌 이야기, 효녀, 효자, 효부의 이야기는 그렇지 못한 사회상을 이상적으로 바꿔보려는 계몽일수도….
이 책에 실린 글을 읽으면서, 해석해보고 상상해보는 재미가 있다. 이 책을 쓴 물제 송순기는 총독부 기관지 대한신보에서 일했다는 점 때문에 친일인명사전에 올라있다.
간호윤은 단순히 대한신보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친일파로만 볼 수 없다고, “조선인들의 꿈을 훔치는 글”을 쓰지 않았고 우리 고유의 야담 보급에 힘썼다는 것이다. 그의 글에서는 친일의 흔적을 발견하기 쉽지 않았다고, 하권에는 임진왜란 때 조선으로 귀화 이순신 장군 휘하에서 전승을 올린 사야가(沙也加) 김충선 이야기가 실려있어 당시 금서가 되기도 했다고…. 실제 모하당 김충선은 가토기요마사 휘하의 좌선봉장으로 침입, 경상좌병사 박진에게 귀순했다. 이후 권율 휘하에서 전공을 세웠다. 선조는 모래(沙)를 걸러 금(金)을 얻었다며 김해 김씨로 사성한다.
물론 친일파가 아닌 척했던 친일파도 수두룩하다. 자력으로 독립을 하지 못한 탓에 친일파청산은 여전히 지금도 제자리걸음이다.
<출판사에서 보내 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