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는 이렇게 말했다
최인 지음 / 글여울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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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는 죽었다. 인간의 악함이 악마를 죽였다

 

악마는 형상이 없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악마는 아름답기 조차한다. 형상화된 보기에도 무서운 그것이 아니다. 날마다 우리와 함께한다. 같은 공간에 있기도 하고, 조금 떨어져 있기도 하지만 늘 마음속 한구석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인간의 악함은 이에 비할 바가 아닐지도…. 선과 악의 구도라면 얼른 와 닿겠지만, 애초 선과 악의 절대적인 구별이 어디에 있겠는가, 성선설과 성악설을 외치는 옛사람들조차 이 둘이 반드시 구별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다. 

인간의 악함은 타고난 것인가, 아니면 세상에 나와 점차로 물들어가는 것인가, 

이 소설은 줄 곳 풀리지 않는 “악마”와 “악함”에 관한 이야기다. 글 속에 섞여 있는 명언의 구절들. 압축적으로 보여주고자 했던 것들의 키워드일지도…. 4악장(惡章), 악을 4개의 단락으로 구분할 수 있나?. 아무튼 흐름은 그렇다.

 

선의 이성이여, 악의 이성을 따르라

 

“이제 나는 악의 이성이 이끄는 대로 토굴 밖으로 나가려 한다. 토굴은 친절하게도 나를 30년 동안 품어주었다. 토굴은 짙고 푸른 어둠으로 나의 고독한 영혼을 끌어안았다. 그 고독과 편안함을 벗어 던지고 광기와 혼란으로 얼룩진 세상 속으로 나가려 한다. 그리하여 이기와 탐욕으로 일그러진 세상을 악의 이성으로 평탄케 하려 한다.”(11쪽)

 

인간은 다 똑같은 인간이다. 이 소설의 대미는 그와 여자는 순두부 탕을 먹고 인근 모텔로…. 여자의 신음과 함께 점점 넓어지는 질 속으로 빨려 들어가 점이 되더니 마침내 완전히 녹아버렸다(568쪽), 악마는 죽었다. 인간의 악함이 악마를 죽인 것이다. 

 

작가 최인은 이전 소설<도피와 회귀>(글여울, 2021)에서 한 체제로부터의 도피는 또 다른 체제에는 회귀가 된다. 영원히 홀로일 수 없다. A로부터의 도피는 B로의 회귀, 에리히 프롬의<자유로부터의 도피> 는 어디로 회귀한단 말인가? 프롬은 인류가 자유에 내재해 있는 책임을 질 수 없다면 권위주의에 의지하게 될 것이며, 자유로부터의 도피의 중심 사상은 불안한 인간이 온갖 부류의 독재자들에게 자신의 자유를 넘겨주거나, 스스로 기계의 작은 톱니가 되어 호의호식하지만, 자유로운 인간이 아니라 자동인형 같은 인간이 되고 싶은 유혹에 사로잡힌다고….

 

<도피와 회귀>에서 말하려는 것들과 <악마는 이렇게 말했다>, 산다는 것은 죽음 위를 걷는 영혼의 그림자라고…. 악마의 인간에 대한 법칙은 살리는 자는 죽이고, 죽일 자는 더욱 철저히 죽이는 것, 인간의 선행은 이제 인간에게도 쓸모없는 것, 선행은 악마의 밥이 되는 것….

 

최인의 소설은 읽는 사람을 혼란스럽게 한다. 사유하란다. 제 머리로 지금 여기서 생각하란다. 당신에게 악마란 어떤 이미지인가, 또 인간의 악함이란 어떤 것인가, 불가 수행자의 화두처럼 들리기도 하고, 그의 소설<도피와 회귀>에서 인간성 회복이란 그렇게 쉬운 게 아니라고 몸은 편할지 모르지만, 영혼의 자유를 잃어버린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감옥에 갇혀,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면 배부르게 먹고 마시고 하는 따위가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차라리 배고픈 철학자가 되라고 함인가.

 

이 소설은 167개의 경구와 함께 시작한다. 166. 악함은 선함이고, 선함은 악함이다. 소수의 노예가 되지 말고, 만인의 노예가 돼라. 용기는 별로 인도하고 두려움은 죽음으로 인도한다.

 

나를 위하여

 

이렇게 작은 제목만 보더라도 ~ 관하여라는 말이 떠오르지 않는가, 최인은 167개를 말로 악마의 존재와 인간의 악함을 견주었다. 물론 끝내는 인간의 악함이 악마를 죽였지만 말이다. 악마는 내게 존재하여 나로부터 상대화되고, 악함은 상대화되지 못한 채, 내 안 어딘가에 똬리를 틀고 있는 또 다른 잠재적 악마가 아닐까 싶다. 존재 그 자체 이외에 행복이라는 것은 없다.

 

“신의 종이여, 행복이라는 것은 스스로 만족하는 점에 있다. 남보다 나은 점에서 행복을 구한다면 영원히 행복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누구든지 남보다 한두 가지 나은 점은 있지만, 열 가지가 다 뛰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대들 아는가? 영어의 행복이란 단어는 옳은 일이 자신 속에 일어난다는 뜻을 가진 단어에서 나온 말이다. 행복이란 글자가 가진 뜻과 그것이 그 사람의 올바른 성과이며, 우연히 외부에서 찾아온 게 아니다.”(531쪽)

 

행복이란 무엇인지, 악마는 뭐라 답할까? 

 

인간의 악함을 대면하고 직면해서 이야기를 나눠본다. 행복이란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악마는 밖이 아니라 스스로 달콤하고 유혹적이라 상상하고 또 그렇게 되리라는 믿음이다. 악함이란 악마의 유혹을 딛고서 일어났지만, 또 그 자체가 악마가 되어버리는 순환이 아닐까. 여전히 행복이란 단어는 낯설기만 하다. 

 

이렇게 이 소설은 오만 생각을 알게 만든다. 돌아가지 않는 굳은 머리를 애써 돌리게 한다. 하지만 때때로 이런 악마 같은, 악마처럼 말하는 이야기가 재미있다. 악마는 나에게 말한다. 끊임없이. 이렇게, 날개 없는 희망에 집착하지 말라고…. 아마도 167개 속삭임을 다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악마가 나에게 당신에게 하는 말, 한두 구절쯤은 기억해두자. “악마가 이렇게 말했다”라고. 내 안의 악마가 나에게 하는 말을. 우리 인간의 악함으로 악마를 죽여버릴 수 있다. 물론 또 다른 악마가 생겨나야…. 끊임없는 번뇌가 없다면 흥분도 긴장감도 없는 그런 생활이지 않겠는가. 의욕도 함께 잠들어버려서는 안 되기에

 

<출판사에서 보내 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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