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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의 세 딸
엘리프 샤팍 지음, 오은경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3년 1월
평점 :
절판
이브의 세 딸
이브란 원조의 아이콘, 가부장제의 질서 속, 여성의 지위는 어떻게…. 이브란 존재를 몰랐던 고대 동양세계에서도 여(女)는, 그 존재 자체로 낙인이었다. 한자권 문화 속에서건, 신의 세계에서든 여성이란 존재는 늘 남성 다음 혹은 부차적인 지위에 머물렀다.
엘리프 샤팍의 장편소설 <이브의 세 딸>은 종교와 무교 사이에서 혼란스러운 주인공 페리, 히잡을 슨 독실한 무슬림 모나, 종교를 혐오하는 무신론자 쉬린, 이들은 주어진 자신의 생을 나름대로 풀어가며 살아가는 가족과 친구들의 인생 이야기다.
이 책의 중심 무대는 옥스퍼드에서 유학했던 세 명의 여성, 그리고 페리의 현재와 과거를 씨줄과 날줄로 엮어내면서 그들의 세계를 그린다.

놀랍게도 튀르키예의 현대사를 바탕으로 페리 가족의 서사를 풀어내는 대목은 한국의 현대사의 모습과도 너무 닮아있다. 여성의 존재,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절대자인 신은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 그렇다면 왜 악행은 사라지지 않은 것일까, 이 또한 신의 계획하신 일이란 말인가, 신의 왜 착하고 선한 사람이 고통 속에 사는 걸 묵인하는 걸까? 신이란 무엇인지, 여성이란 무엇인지, 가족이란 무엇인지…. 현대사회의 정신적 공허와 물신숭배,
이 소설의 메시지를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1장 첫머리에 실린 이 글일 것이다.
“편안한 환경에 젖어 있는 물고기들은 위험한 바다에서 살아남기 힘든 법이니까. 그래도 단 1분이라도 물고기들이 맛본 자유를 아쿠아리움에서 지낸 수많은 세월과 바꾸고 싶어 하지는 않겠지”
“자유’를 맛본 물고기, 페리의 가족, 아버지는 사회주의를, 어머니는 광신도적 이슬람에 빠져들고, 갈라진 가족들, 신념을 내세우며 서로 할퀴고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기도…. 페리와 그녀의 딸 데니즈와의 대화는 한국의 그만한 또래의 여자아이와 엄마의 대화와 다를 바 없다. 페리의 아버지는 그녀에게 기대한다. 좋은 대학에서 좋은 교육을 받는 것만이 유일한 탈출구인 것처럼…. 이 또한 우리네 그것과 참으로 닮아있다. 마치 이전에 이 책을 읽었던 듯한 기시감마저 든다.
페리의 오빠, 정치적 이유로 박해를 받는데, 레드퍼지, 이른바 빨갱이 사냥의 희생물로, 1980년 쿠데타를 경험한 튀르키예, 이슬람주의로 되돌아가려는 정치…. 여전히 용광로 사회다.
옮긴이의 역량 덕분인지 지은이의 뛰어난 문장이 되살아난 듯하다. 번역이라는 벽을 뛰어넘어 작가의 느낌마저 살려낸 듯하다.
한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사랑, 영혼의 떨림. 페리를 통해 한 여성의 인간해방 일지를 쓰고 싶었는지 모른다는 옮긴이의 말이 꽤 적절한 표현이다.
무엇보다도 작가의 튀르키예 역사와 현상 그리고 사회의 모순에 대해 참으로 적절하고도 냉철하게 서술하고 있다. 아마도 이는 작가의 역량을 충분히 드러내 보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그래서 책 속으로 자연스레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랄까…. 언어의 선택과 문장, 표현까지도….
이브의 세 딸이라는 제목, 그 바탕에 자리한 튀르키예 사회의 모순들, 자유, 그리고 한 인간의 해방일지….
<출판사에서 보내 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