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손님
윤순례 지음 / 은행나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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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손님

 

말해도 외쳐도 들리지 않는 이들의 목소리가 닿지 않는 세계, 기록되지 않은, 너무나도 사적인 침묵의 역사

'이방인', '벌거벗은 생명', 존중받아야 할 인간들의 이야기, 여름 손님은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 달갑지 않는 손님이다.

 

 

여름, 이런 때 귀한 손님이 찾아오면 더 난처해진다. 마땅히 대접할 음식이 없고 흐트러진 살림살이를 보이게 되니, 흉잡힐 것이 걱정되어 찾아온 손님이 호랑이처럼 두려운 대상으로 느껴지기 십상이다. 그리하여 옛 분들은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바쁜 농번기나 한여름에 남의 집을 방문하는 것을 실례로 알고 삼가는 것이 양식 있는 사람이다. 

 

윤순례 소설집<여름 손님>은 북에서 남으로 내려온 새터민들의 심란한 삶을, 아픈 삶은 담담하게 써 내려간다. 어설픈 동정도 연민도 없이…. 있는 그대로, 그들의 내면세계를 세상에 드러내 보여준다. 이들은 우리 사회의 반갑지 않는 여름 손님이었다.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존재였다. 이런 손님들을 윤순례는 손님으로 맞아들이고,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북에서 왜 탈출했을까, 저마다 이유가 있겠지…. 탈출 과정에서 변화하는 심리, 브로커들의 본능, 중국 공안에게 잡히면, 앞날을 알 수 없는 불안감, 중국에 숨어 살면서 아랫도리로 밥벌이를 해야 했던 사람들.

 

남쪽에서 와서 삶은 북을 떠나 남으로, 희망인지 아니면 북보다 더 지옥 같은 삶인지 알 수 없다. 불안감과 미래를 알 수도 희망도 가질 수 없는 남녘의 삶 속에서…. 남자는 새터민을 싸잡아 욕하는 노인을 그냥 둘 수 없었다. 아니라고 대거리를 할 수도 없다. 어차피 나는 탈북민이니까, 애초부터 이곳 사람이 아닌 그저 부평초이니까, 

 

북에서 넘어온 놈들에게 아파트를 내주고 살라고 하고, 우리 같이 기댈 곳도 없는 사람들은 나 몰라라하고….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데, 게들에게는 밥 주고 일자리 챙겨주고…. 불만에 가득 찬 노인, 술 한잔 걸치면 에스컬레이터 한다. 

 

북에서 온 남자, 그리고 여자, 남한에 사는 사람. 북에서 온 그들에게 과하게 대우해준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 북에서 온 사람을 백안시하는 이들, 남쪽 세계에 대한 희망은 절망이 되고, 영화 <황해>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했던 장면들….

 

소설집에 실린 <여름 손님>, <바람빛 자장가>... <사적인, 너무도 사적인 침묵의 역사> 등 여섯 편의 연작소설, 불안정한 삶의 그늘에서 힘겨운 나날을 보내는 북에서 온 사람들이 등장한다. 남한이라 세계에서 그들은 여전히 ‘이방인’이다.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하는.

 

영화<이상한 나라의 수학자>의 북한 천재 수학자, 남한 생활에 적응을 못 한 아들은 북으로 돌아가겠다고…. 강을 건너다 죽었다. 왜 자식은 북으로 가고자 했을까, ‘이방인’으로,

 

남한의 삶은 트라우마로…. 늘 소외됐고, 당연히 무시되는 존재, 열심히 살아도 늘 간첩으로 의심받고 때로는 간첩으로 체포되기도, 따뜻하게 받아들이겠노라고, 한때는 북에서 사람들을 탈출하도록 공작했던 적도….

인간의 고귀한 생명이 도구나 수단으로 쓰일 때, 또 그렇게 해서 출세를, 업적을 성과라고 여기는 가치관과 세계관은….

 

작가는 북에서 온 이들 ‘벌거벗은 생명’에게 섣부른 연민이나 동정을 보내지도 민족 감정에 호소하지도 않고 그들의 내면세계를 좇아갈 뿐이다. 누구의 잘못인지, 왜 이런 세상이 됐는지도 묻지 않는다. 그저, 담담하게 말할 뿐이다. 삶은 늘 힘든 거라고. 벌거벗은 생명이건, 화려한 치장을 한 생명이건, 모두 사람이라고. 인간의 존엄성은 어떻게 존중돼야 하는지, 새삼스럽게…. 인간이란 도대체 뭐지, 노숙자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도, 북에서 남으로 내려온 사람들을 주목해보는 것도, 그림자처럼 일하는 유령 노동자들을 보는 것도, 그 안에 숨겨진 인간을 찾아내려는 노력이…. 이 소설은 꽤 긴 여운을 남긴다. 우리 사회의 폐쇄성을, 이방인을 멀리하는, 경제적으로 우리보다 못사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은 정말 평등한가, 아마도 우리 사회 속에서 형성된 것들, 학습된 제한 행동. 너와 나는 다르고, 우리는 같지 않다는 생각들, 혐오 사회로 번져갈지 모른다는 우려도

 

 

<출판사에서 보내 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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