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 미학과 한국 현대미학의 탄생 - 캉유웨이, 야나기, 고유섭 인물세계철학 1
정세근 지음 / 파라아카데미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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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사람- 동양 미학과 한국 현대 미학의 탄생

 

캉유웨이, 야나기 무네요시, 고유섭 이 세 사람을 지은이 정세근 선생은 동양의 미학과 한국 현대 미학의 탄생과의 관계를 들여다보는 이 책은 일반에게 쉽게 읽힐 수 있는 대중 교양서를 지향한 듯하지만, 내용은 꽤 어렵다 아니 어렵다기보다는 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이 철학, 미학, 미술사, 철학사 등 개념만을 이해하는 데도 한참 걸리는 분야다 보니 도입부부터 장애물을 만나게 된 셈이다. 

 

세 사람의 이야기- 왜 세 사람인가? 

 

중국의 개혁가였던 캉유웨이(강유위)는 서예와 미학적 전환을 시도했던 인물이었다. 한나라의 옛 글씨로 돌아가자고 했는데 그 안에 담긴 정신은…. 일본인으로 조선을 사랑했던 민중 예술(민예)연구자 야나기 무네요시, 귀족적 예술보다는 소박, 순박하고 수수한 조선의 예술을 발견했다. “조선의 예술은 인류의 비극을 담는다”라는 한 마디로…. 한국의 고유섭은 야나기의 영향을 받으면서, 예술사, 철학을 담아낸 미학을, “탑”에 담긴 힘참을 노래했다. 이야기 전개는 캉유웨이, 야나기 무네요시, 고유섭 순으로….

 

 캉유웨이 글씨체가 바꿔야 정신세계가 바뀐다 


중국의 캉유웨이는 조선의 김옥균과 비슷한 사람이다. 김옥균은 삼일천하로, 14년 후 캉유웨이의 무술정변은 백일천하로 개혁 사상이 꽃을 피우지 못하고 스러졌지만, 후자는 전자와 달리 제자를 길러냈다. 그리고 서예 이론가로서 역사에 등장하는데….

 

캉유웨이는 약해 빠진 중국을 보고 분발한다. 그의 이상은 강한 중국이었다. 지도자들의 문란, 문화의 방만, 정치의 우유부단함, 학자들의 태만함을 넘어설 길의 하나로 그는 글씨체를 바꿔쓰는 것이었다. 금석학의 부흥이다. 철이나 돌에 새기는 글씨는 글씨로서 그치지 않고 정신세계의 복원이다. 강건하고 힘 있는 글씨를 쓰면서 예쁜 글씨에 매달리는 식자들의 사고가 개혁된다는 생각을…. 그의 서예학은 심미의식 전환을 꾀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사화 개혁에서는 혁명적이지 않았다. 군주제를 옹호하면서 황제에게 권력이 집중되지 않는 한 개혁은 실패로 돌아갈 것으로 생각했다. 지은이는 이러한 캉유웨이의 사고를, “한글 창제” 당시 조선의 권문세족들이 한결같이 반대했던 것처럼. 국가, 계급, 인종, 남녀, 가족의 경계조차 허물어 버리자는 <대동서>에서 주장과 모순되는 보황론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이는 또 다른 문제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야나기 무네요시의 “민중예술” 이름이 있음에서 이름이 없음에로


야나기는 이름 없는 사람들의 예술이 참다운 예술이라고 생각했다. 당대의 일본 사회는 군국주의자와 자본가가 중심세력이 된 흐름 속에서 민중예술을 찾는다. 그에게 영향을 미친 18세기 말, 19세기 초에 활동했던 영국의 시인이자 판화가 블레이크, 야나기는 블레이크가 산업혁명 당시 아이들에게 강요되는 노동에 분개, 아동노동의 현실을 고발한 시를 통해, 예술적 구원을 만난다. 그리고 민예의 이상적인 모습을 한국에서 찾고, 슬픈 한국의 선에서 종교적 구원을 만난다고 지은이는 평하고 있다. 

 

고유섭, 한국의 탑은 기백을 드러낸다

 

당대의 흐름은 철학은 서양철학이요. 사상 또한 외국사상이 유행이던 때, 그가 생각한 것은 우리나라에 할 일이 무엇인가였다. 그래서 한국 미학과 한국 미술에 전념하게 되는데, 야나기의 말을 수용하고 그에 대해 정면으로 반발하지 않았다. 산천을 누비며 탑을 찾고, 보고, 느끼고 노래했다. 그가 한국의 탑으로 말하고자 했던 것은 “기백”이었다. 고유섭에게 스승은 노자였다. 노자가 바로 ‘소박’이란 말의 어원이자 예술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모두 다함의 세계가 버젓이 있음을 말한 철학자다. 그는 노자를 통해 부정의 변증법을 익혔다. 

 

 

이 세 사람 모두 미학적 전환을 이룬다. 캉유웨이는 근대사회로 이행되는 중국 사회의 혼란함과 나약함을 극복하자는 정신개혁을 글씨체를 바꿈으로써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서예를 통해 종이에서 돌로, 야나기는 이름이 있음(존재를 드러내고 권위를 내세우는 있는 자들의 세계)에서 이름 없음으로, 고유섭은 그릇에서 집으로 나아간다. 

 

미학이란 서양철학의 내용 중 하나로 미학이란 번역되기에 아름다움의 학(美學)이라고 하면 선뜻 그 의미가 와 닿지 않는다. 미학은 본디 감성학(Aesthetics)에 바탕을 둔다. 서양식 분법에서 철학이 이성만 다루기에 감정의 영역도 다루게 된 것이고, 이어서 예술사도 건드리게 된 것이다. 세 사람이 활동하던 시대에 미학은 양식사적인 관점이 우세했다. 어느 시대마다 중심되는 양식이 있어 이를 통해 미의식이 드러난다는 미술사 인식방법이다. 고전주의니 낭만주의니 하는 ‘주의’ 역시 형식 속에 사상이라는 내용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이들 세 사람의 미학을 탈바꿈의 미학이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종이에서 돌로, 이름있음에서 없으므로, 작은 그릇에서 집(탑을 포함)으로라는 예술, 탐구, 심미의 대상이 달라지면 세계가 달라지듯, 내용이 존재를 규정하듯, 세계관의 전환이라 해도 좋을 듯하다. 

 

고유섭 연구는 미학 분야에서보다는 예술사 분야에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지은이는 고유섭의 한국 현대 미학의 창설, 이후의 변천 과정을 연구해보고 싶다고 말한다. 고유섭의 모순되는 어법에 대한 이해가 어려웠던 점들(한자 중심의 글쓰기라는 점, 일본어 번역 투의 문장들)도 이해의 곤란에 한몫했다고... 

 

아무튼, 꽤 흥미 있는 주제를 다룬 이 책이 널리 읽히기를 바라며….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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