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kus Gabriel VS - 마르쿠스 가브리엘의 차이와 분열을 극복하는 철학, 서로 이해할 수 없는 사람과 살다
마르쿠스 가브리엘 지음, 오노 가즈모토 엮음, 쓰키타니 마키.노경아 옮김 / 사유와공감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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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쿠스 가브리엘 vs

 

이 책은 서로 이해할 수 없는 사람과 살다, 타자는 상대적인가, 차이와 분열을 극복하는 철학을 주장하는 마르쿠스 가브리엘과 그의 저서<지나치게 연결된 사회>(이진아 번역, 베가북스, 2022)에 실린 “타자화”를 중심으로 인터뷰를 한 일본의 저널리스트 오노 가즈모토가 편집한 것으로 저자는 마르쿠스 가브리엘로 표기되었다. <왜 세계사의 시간은 거꾸로 흐르는가>(김윤경 번역, 타인의사유, 2021) 역시 가즈모토와의 인터뷰가 책 뒤쪽에 실려있다.

 

가즈모토는 오랜 시간 마르쿠스 가브리엘의 “신실재론”에 관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번 주제인 타자란 무엇인가라는 “타자화”는 오래전부터 철학에서 다루었던 주제이지만, 세계는 실존하지 않는다고 믿는 신실존론자들과 가브리엘이 타자, 차이, 양극화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이 책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의 구성은 5장 체제이며, 1장은 나에게 ‘타자’란 무엇인가를 시작으로, 2장 우리는 ‘타자’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3장 가족은 무엇이고, 사랑은 무엇인가?, 4장 내 감정과 마주하기, 5장 종교-윤리-타자의 관계를 논한다. 

 

타자란 무엇인가?

 

타자성이야말로 우리 인간이 공유하는 하나의 특징이다. 타자성은 우리를 유일무이한 존재로 만드는 동시에 같은 인간으로 한데 묶어 준다는 말, 이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즉, 나는 이전 시간에 다른 사람과 함께 있었을 때의 ‘나’와는 다른 인간이라 할 수 있다. 인간으로서의 내 존재 방식이나 인간성에 대한 이런 해석은 서로 느슨하게 이어져 있지만, 그 안에는 비타자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차이’의 총칭이 타자성이다. 나는 어제와 나와 오늘의 내가 다르듯, 한 인간 안에서도 차이가 나타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기존철학은 타자를 어떻게 인식했는가, 칸트는 윤리학과 정치철학 분야에서 타자성을, 헤겔, 마르크스, 하이데거 등이 생각한 타자성이란 모두 ‘동일성의 반복’ 나는 주체이고 너도 주체이기에 우리는 공통성이 있다고 하는데 타자를 하나의 정체성 집단에 속한 존재로 여겼기 때문이다. 정체성=아이덴티티, 타자성과 대립하는 의미의 정체성이란 개념에 문제가 많기 때문이라고 가브리엘은 지적했다. 

 

우리는 정체성에 속고 있다

 

지금도 정체성이란 전통적 사고방식은 여전하다. 그 사고방식에 따르는 사람들은 인간들 사이에서 여성, 남성, 트랜스젠더, 아시아인, 유럽인의 정체성의 패턴을 찾아내려 한다. 그 정체성을 공유하는 사람들에게는 공통성이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실제 정체성은 인간의 출발점이 아니다. 인간은 인간들 사이에 특정한 정체성이 있다는 전제 아래서 다른 인간관계를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정체성에 대한 아무런 인식 없이 그저 다른 인간끼리 관계를 시작할 뿐이다. 

 

인간 전체에 공통되는 형상-어떤 사물을 사물로 만드는 성질-은 존재하고 그 형상이란 차이를 말한다. 전통철학은 이런 사고방식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고 보는 것이 가브리엘의 주장이다. 정체성을 강조하게 되면, 개인이건 사회이건 인종, 피부, 문화 배경에 따라서 무의식적인 편견에 사로잡히게 될 수 있어, 차이를 강조하고 분열을….

 

타자와 어떻게 어울려 살 것인가, 우리의 미래상

 

자신과 타자를 넘어 사회 모든 구성원이 서로 이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브리엘은 대화는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는 전제 아래 민주주의를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아울러 기술지상주의를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인간은 어차피 타자와 함께하는 운명이기에….

 

특히, 기술(소셜네트워크, 사회적 관계망, ICT)은 인간의 편의를 위해서, 인간사회 공동체의 발전 방향으로 제 기능이 발휘되어야지, 분열과 차이를 조장하는 도구나 수단으로 가는 것을 경계해야 하고, 여기에 종교-기술-윤리라는, 체계를 주장한다. 미신을 극복하는 종교, 하지만 종교에는 그들만의 규율일 존재할 뿐, 도덕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울러 기술 역시, 본말전도 현상이 두드러져 인간을 통제하거나 규율하는 데 기술이 사용되기에 이른다. 정보를 얻고 이를 이용하는 것이 특정인의 이익을 위해서 복무해서는 안 되며, 이를 규율하는 것은 윤리다. 우리 사회는 윤리관 확립에 힘을 써야 지금의 세계를 바꿀 수 있다. 유치원부터…. 윤리가 무엇인지….

 

역지사지, 다른 사람의 처지가 되어보고, 그 사람의 눈으로 나를 본다면 어떻게 비칠 것인가, 내 주장의 옮고 그름의 문제 이전에 상대방의 처지를 살펴보라는 것인데….

 

가브리엘이 주장하는 우리 모두 함께하는 삶(특히 도덕론, 인간론)이란 우리 선조들이 말씀하신 것들과 놀랍게도 한두 개가 아니라 아주 많은 부분과 서로 통한다. 

 

남을 탓하기에 앞서 나를 되돌아보라는 말 또한 같은 맥락이다. 부모와 자식, 자식을 소유물로 보는 우를 범하는 것은 인간 생명 무한론과 같은 것이다. 부모가 자식이 죽을 때까지 돌봐줄 수도 없고, 그 전에 죽음을 맞이할 것인데…. 가족은 한데 모여 사는 사람들이다. 아이라고 부모의 소유물일 수 없고, 나이가 어리다고 생각마저 유치하다는 착각(고정관념)을 버리라는 말 또한 그러하다. 아이를 인격적으로 존중하라고, 가족들 모두가 나와 같은 생각을 한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이기에….

 

인간관계를 늘 안정되고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라, 변화가 없는 것은 관계가 아니다. 매일 같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갈등도 생기기 마련이다. 갈등을 일부러 피하려 하는 것 자체가 갈등을 키우는 것이고, 민주주의에 반하는 것이다. 본디 민주주의는 갈등 속에서 진화하기에….

 

가브리엘의 이야기는 개념을 잡는 데 어려움이 있지만, 전체적인 내용은 상식적이고 보편적이다. 신 실재론은 어떤 사물에 대해 그 사물 자체의 존재 뿐만 아닌 그 사물에 대해 생각하는 사고 역시 동시에 존재하므로 그것들이 나란히 존재한다는 사상이다. 인간이란 존재와 사고, 사상이 따로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관념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라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할 때, 세상은 달라 보이지 않을까?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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