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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의 것들 ㅣ 이판사판
고이케 마리코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2년 8월
평점 :
![](http://image.yes24.com/blogimage/blog/m/o/moonbh/IMG_ihyung.jpg)
이 세상 것들이 아닌 존재들에 관한 이야기
지은이 고이케 마리코의 <이형의 것들>은 이 세상의 것들이 아닌 저세상(다른 세계)의 경험, 호러 엔솔로지다. 북스피어의 이판사판 시리즈로 나왔다. 고이케 마리코는 1978년 <지적인 악녀의 권유>라는 에세이로 작가로 데뷔, 89년 일본추리작가협회상, 96년 <사랑>으로 나오키상을, 98년<욕망>으로 시마세 연애문학상, 06년<무지개 저편>으로 시바타 렌자부로상을, 12년<무화과숲>으로 문학부분 문부과학대신상을, 13년<침묵의 사람>으로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상을 수상했다. 에세이, 미스터리, 서스펜스, 호러, 연애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이 책에 실린 6편의 단편은 ‘얼굴’, ‘숲속의 집’, ‘히카게 치과의원’, ‘조피의 장갑’, ‘산장기담’, ‘붉은 창’이다.
얼굴, 그 마을에 내려온 도깨비 이야기일까, 어느 여름날 혼자 살던 주인공의 어머니가 고향 집에서 숨을 거두었다. 사망원인은 급성심부전…. 주인공은 휴가를 내서 유품을 정리하려 고향집에 내려왔다. 주인공은 어린 시절 혼자서 농로에 나가지 말라던 어머니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농로를 걷는 주인공, 논밭이 끝없이 펼쳐진 마을, 군데군데 고분군인지 묘지인지 논 가운데 섬처럼 떠 있는 숲속에서 울리던 매미 소리가 순간 멈추고…. 반야탈(질투나 원망이 가득 찬 여자 귀신의 얼굴로 두 개의 뿔이 달린 무서운 인상)을 쓴 기모노 차림의 여성이 걸어와 그를 스치고 지나가는데…. 혹시 어머니의 한,
숲속의 집, 방송국 PD였던 친구 아버지와 친구 그리고 주인공이 함께 자주가 지냈던 숲속의 집, 십수 년 전에 일어난 교통사고로 친구 아버지와 친구는 죽은 뒤로 처음 찾는다. 그동안 친구 오빠의 아내가 그 집을 관리해왔다. 숲속의 집에 도착한 날 가랑눈이 흩날렸다. 며칠 지낼 요량으로 마을에 내려가 식료품도 사고, 저녁도 먹을 겸 부부가 함께 일하는 한 식당에 들어가, 식사를 마치고, 주인 내외와 이야기를 하는데…. 부인이 깜짝 놀라며…. 안보이세요. 옆에 휠체어를 탄 분과 그의 딸이 서 있는 것….
이 이야기는 무슨…. 이미 그녀도 죽었던 걸까, 이제야 이 세상을 떠나는 길일까?
히카케 치과의원, 바람을 피운 남편과 이혼하고 심신이 지쳐버린 주인공, 요양 삼아 외사촌이 사는 지역으로 옮겨오고, 쌀과자를 먹다 어금니에 씌운 크라운이 떨어져 나와…. 치과를 찾는데…. 치료를 받고 한참 후, 사촌으로부터 연락이 오고…. 애초 그런 이름의 치과는 없었다고…. 그렇다면 주인공은 누구를 본 걸까,
조피의 장갑, 주인공의 남편이 돌연사했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연구원 생활을 하다가 일본으로 돌아와 주인공과 결혼을…. 맞선을 보는 날, 조피라는 오스트리아에서 남편의 일을 돕던 여직원이었다. 우연인가 지하철 안에서 이 남녀를 본 주인공…. 남편의 영령 앞에 날아든 조피의 장갑….
산장기담, 방송국 PD 출신의 주인공, 자신의 멘토였던 대학 은사의 장례식에 참석했다가 우연히 산장에서 하룻밤을 묵는데, 산장의 주인으로부터 산장에 얽힌 기이한 이야기를 듣게 되고, 때마침 방송국 근무 시절 일을 가르쳤던 후배 PD로부터 심령특집 소재를 찾아달라는 메시지를 받는다. 귀신, 유령과 소통했던 산장의 주인의 아버지, 산장을 지으면서 지하굴을 만들고 와인보관고로 썼던 모양인데…. 지금 그저 물품 보관고로 쓴다고, 산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그 유령과 마주쳤던 경험이 있다는데…….
한 달 후에 돌아온 심령특집을 취재에 나섰던 후배 PD는 이형의 것들을 데리고 주인공에게 찾아온다.
붉은 창, 유산한 언니와 일에 쫓겨 주말도 쉬지 못하는 형부, 우울한 상태로 지내는 언니를 돕기 위해 주인공은 언니 집에 들어가는데…. 어느 날 집 앞에 택시 멈추는 소리에 혹시 형부가 온 게 아닌가 하고 집 밖으로 나왔는데…. 아무도 없다. 형부가 아무도 살지 않은 집에서 걸어 나온다…. 붉은 노을이 지던 어느 날 사람이 살지 않는 앞집 이 층 창문으로 보이는 여성의 모습, 기모노 차림….
섬뜩하고 무섭기보다는 뭔가 포근함과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듯한 이야기의 전개, 자신도 모르게 사이에 저세상으로 뛰어든 히카게 치과, 이웃집 창문에 죽은 사람의 모습이…. 숲속의 집은 함께 사고로 죽었던 내가…. 죽음 속에서 현실과 죽음을 깨닫지 못한 듯한…. 부지불식간에 공포를 예감케 하는 세밀한 풍경 묘사와 시적인 표현들…. 눈 앞에 펼쳐진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납량 특집물과는 결이 다르다. 왠지 씁쓸함이 밝지도 않지만 어둡지만도 않은…. 아마도 읽어보지 않고서는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그래서 호러의 명수라는 평판이 붙은 고이케 마리코가 아닐까?,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한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간혹 눈에 보이는 이들도 있어... 늘 존재하는 게 아닌가
사족으로 편집자 후기(235쪽 이하)가 꽤 재미있다. 여류작가란 상대적이다. 일본 문단의 가부장적인 질서를 적나라하게…. 꼬집고 있는데, 작가에게 애초 성별의 구분이 있었나, 남성 중심사회에서는 당연히 작가는 남성이다. 특수하게 여성이 작가인 경우가 있다는 뜻으로 여류작가, 여성 작가라는 표현을 쓴다.
아무튼, 이판사판 시리즈는 꽤 평범치 않다. 물론 특수하지도 않지만….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