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두(話頭) 아이온총서 1
박인성 지음 / 경진출판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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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話頭)

 

깊은 산 속 절간의 고요함을 깨뜨리는 죽비소리 탁따악, 반쯤 눈을 감고 가부좌를 틀고 뭔가에 집중하는 스님의 어깨 위로 떨어지는 죽비...

어느 영화의 한 장면처럼 정진하는 스님들의 모습, 이들은 ‘화두’에 천착…. 이것이 내가 상상하는 이미지다. 

 

이 책은 12세기의 승려 혜심의 <선문염송집>에 실린 공안(화두) 중 마조 공안 7칙, 남전 공안 10칙, 조주 공안 82칙(모두 99칙)을 해독한 것인데 지은이 박인성 선생은 부처가 양극단을 타파하는 방식과 현대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가 화두를 해설하는 방식<의미의 논리>에 따랐다. 조주 공안은 수록된 순서로 전부를, 그리고 마조와 남전 공안은 조주 공안과 관련 있는 것만을 골라 해석했는데 이런 방법론의 시도, 즉 현대 들뢰즈 철학과 교감하며 화두를 해독한 책은 이 책이 최초라 한다. 

 

불교는 크게 중관, 유식, 인명 등의 인도불교와 천태, 화엄, 선 등의 중국불교로 크게 나뉜다. 이 두 유형의 불교는 다른 성격이다. 중국불교 중 선불교는 천태와 화엄과도 상당히 다른 성격을 지닌다. 선불교가 철저하게 차이 그 자체를 추구하였기 때문이다. 들뢰즈의 철학과도 가깝다. 

 

지은이는 8세기의 ‘구순피선(口脣皮禪)-교학적, 일상적 의미의 말을 깨달음을 이끄는 말로 전환해서 말과 증득을 일치하게 한다’-으로 유명한 조주 선의 화두들을 분석하며 조주의 철학적 사유를 일상어에 따라 해독한다. 선문답 형식의 공안은 논서를 읽을 때와는 달리 불교 용어를 이해해야 한다는 부담 없이 우리를 깨달음으로 이끌어 준다. 

 

간전(看箭) 419: 화살을 보라

 

조주가 수유를 찾아가서 법당으로 올라가자마자, 수유가 말했다. “화살을 보라!” 선사도 말했다. “화살을 보라!”, 수유가 말했다. “지나갔다!” 선사가 말했다 “맞았다!” 이른바 법거량을 했다. 선문답이다. 화두를 제대로 풀었는지를 보는 것이다. 

 

같은 사태를 두고 어떤 사람은 지나갔다고 하고, 또 다른 이는 맞았다고 하니, 누가 거짓말을 했을 리는 없을 테고, 이 두 선사는 판단의 진리가 아니라 이 진리가 발생하여 나오는 진리 혹은 진실을 전하고자 한 때문이다(130쪽) 

어렵다…. 맞았다. 맞지 않았다. 하기 전에 맞았다. 맞지 않았다는 판단을 가능하게 한 영역, 깨달음의 자리가 있다는 것이다.

 

마조의 화두 중 원상(圓相)(165)을 보자, 

들어가도 때리고, 들어가지 않아도 때리겠다. 

 

한 스님이 뵈러 왔을 때, 마조가 일원상을 그리며 말했다. 

“들어가도 때리고, 들어가지 않아도 때리겠다.” 스님이 바로 들어가자 선사가 바로 때렸다. 스님이 말했다. “화상은 저를 때릴 수 없습니다.” 선사는 주장자(?杖子)를 등에 메고 그만두었다.

 

일원상은 곧 한 개의 원은 안과 밖을 나눈다. 지금 마조와 스님은 원 바깥에 있다. 원안으로 들어가도 맞고 안 들어가도 맞을 판이다. 스님은 원안으로 들어갔다. 스님은 맞고 난 후 말했다. “화상은 저를 때릴 수 없습니다.” 이 말이 공안(화두)의 핵심어였다. 때린다를 무화(無化)하여 일원상을 그어 안과 밖을 나누기 전으로 돌아가겠다는 뜻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곰곰이 읽어보면, 때릴 수 없다는 말은 마조가 일원상으로 안과 밖을 나누기 전의 일원상을 보존하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또 일원상을 보존하면서도 안과 밖도 그대로 보존하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평등이란 구분과 위계란 무엇인가, 아마도 상추(相推)(420): 향을 고여오라는 대목은 참으로 읽고 또 읽어볼 만한 대목이다. 두 스님이 서로 수좌를 하지 않겠다고, 수좌가 마치 위계가 있는 것처럼... 그들은 이미 1좌,2좌,3좌라는 위계로 상정이 돼버린 것을 알고 말로 고치려 한다고 해서 안 된다는 걸 안 조주 화상은 지사(스님)로 하여금 향을 고여 맨 앞에 두고 두 스님을 2좌에 나란히... 그리고 향이 나오자 조주는 계향, 정향, 혜향이라 부른다. 이는 3학이라 하여 불자가 배워야 할 기본이다. 왜 그랬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1좌, 2좌, 3좌를 위계로 생각하는 이들에게 전하려는 말, 수좌는 수좌대로 각각의 좌는 나름대로의 해야할 일이 있다. 이들은 계향, 정향, 혜향처럼 모두 평등하다. 요즘 세상에 딱 들어맞는 말이다. 제 각각 할 일을 하는데 누가 높고 낮음이 있을까, 

 

이 책<화두>은 선을 하면서 깨우치는 것이라는 고정된 생각을 하기 쉽겠다. 하지만, 조금만 나를 내려놓고 내가 누구인지, 뭘 하는 것인지,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같은 듯 다른 듯, 행동의 변화가 있는 듯 없는 듯, 살펴보는 것처럼 이 책을 앞에 두고 한 장씩을 읽어나간다면…. 뭔가 느끼는 게 있을 법하다. 

 

읽는 데는 참으로 꽤 시간이 걸렸지만, 책장을 덮는 순간, 귓전과 머릿속을 맴도는 알 수 없는 뭔가가…. 일원상과 상추, 되새겨야할 대목이다. 

 

 

<출판사에서 보내 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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