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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신부
권현숙 지음 / 헤르몬하우스 / 2022년 7월
평점 :
늑대신부
작가 권현숙의 간결하면서도 빠른 전개와 숨 가쁜 호흡 속에 깊이 잦아드는 아련함. 소설을 읽으면서 콧등이 시큰거리는 경험은 오랜만이다. 단숨에 읽어내렸다. 왜 늑대신부일까, 왜 몽골이 나오고, 평양, 서울, 한국전쟁 그리고 68년 김신조, 이른바 청와대로 쳐들어가 남한의 대통령 멱을 따겠다는 도발에 앞서 67년 평양에서 정찰조로 서울에 내려와 꿈에서도 그리던 사랑하는 사람과 짧은 기적적인 만남…. 다시 돌아오겠노라는 약속을 남기고, 훌쩍 떠난 뒤 50년…. 동안의 기다림…. 비극의 주인공들, 평양 출신의 강바우(배두)와 백인하, 그녀의 어머니 애시덕(에스더)은 강바우가 다니던 학교의 음악선생으로 그의 재능을 일찍이 알아봤다. 그리고 바우의 어머니와도 선후배 사이였다. 안장섭과 송화자와는 배두와 인하를 대신하고….
못난 군주, 서러운 백성, 되찾은 나라는 결코 하나가 아니었다. 비극의 서막
현대사의 굴곡을 개인의 역동적인 서사로…. 결코 영웅담이 아니다. 나라를 빼앗긴 사람들의 예정된 처절한 운명의 질곡으로 내던져진 두 사람의 앞날이 창창했던 음악가 커플 앞에 놓인 운명, 작가는 마치 신의 저주라도 받은 것처럼, 슬프디슬픈 이런 사랑 이야기를 잔인하게도 그려낸다. 결국, 읽는 이는 어느 대목에선가는 눈물이 흐르게 될 걸 알면서…. 아무리 감정이 메마른 사람일지라도,
젊디젊은 청년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70년의 시간 너머로 다시 살아나고, 죽은 줄 알았던 그 사람은 30년 전에 남한에 있는 그의 아내에게, 사랑하는 여인에게 그의 소재를 둘만이 아닌 암호로 남겼는데…. 엇갈린 운명은 30년 후에…. 프리랜서 사진기자 승리를 통해서, 다시 이어지고…. 죽은 남자, 연인, 남편을 찾아 몽골로 떠나고, 죽은 줄 알았던 그와의 재회, 이들에게 남겨진 시간은 야속하게도 그리 길지 않았다.
아마 두 사람은 만나게 될지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 희망, 아니다. 이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그저 하루하루 죽음을 향해가는 생물처럼….
서촌의 유령 편지, 폐가의 우편함에 들어있는 대한민국 경기도 경성부 북부 옥인동 7의 49 세대문집 베루 씨 친전
30년 전 그녀 앞으로 보낸 편지를 그녀가 보고 몽골을 찾아왔더라면 함께 몽골의 예복을 입고 싶었는데…. 제대로 올리지 못했던 결혼식을 올리려 했는데, 이제나저제나…. 30년 전에 보낸 편지만 폐가가 된 그녀 집 문 안쪽에 마련된 우체통에 남겨지고…. 매번 반려된 편지는 한가득…. 평양에서 서울로 내려와 잠시 나갔다 올께…. 마치 출장을 가듯, 다녀온다는 말을 남기로 50년 넘게 돌아오지 않은 사람….
한국전쟁 당시 인하와 그 가족을 지키기 위해 자진해서 인민군이 됐던 배두가 다시 서울에 나타났다. 곧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떠난 그를 기다리던 연인이자 아내 인하는 간첩으로 잡힌다. 간첩에 매수되어 고정간첩이 됐고, 그녀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간첩을 숨겨둔 대가로…. 모두 영어의 몸이 되고, 집안은 풍비박산, 이들 가족의 재산은 집안일을 거들던 사람이 모두 제 이름으로 바꿔놓고…. 그녀를 겁탈하려 했다. 또다시 영어의 몸이 되어야 하는가…. 이런 사연으로 그 폐가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여인, 그 편지에 붙은 우표는 몽골 우표였다. 몽골에서 온 편지의 사연 속으로….
70년의 굴곡진 인생의 원점으로 돌아 돌아 몽골로…. 죽은 이를 찾아 떠나는 길
그 한 많던 세월을 하룻밤 사이에 젊은 모습으로 되돌아가 꼭 껴안고 그렇게 그 남자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그 게르에서 함께 저세상으로…. 관은 하나였다. 두 몸이 어찌나 꼭 껴안고 있는지 뗄 수가 없었다. 생전에 그가 좋아했던 수선화밭 한쪽에 그대로 묻었다. 이렇게 떨어지지 않아 함께하게 된 두 사람…. 영혼의 결합이었나보다. 이들에게 단 한 번 제대로 된 사랑과 행복을 주지 않았던 세상, 그런 세상인 줄 알았기에 죽어서라도 영혼이 헤어지지 말자며 꼭 껴안은 이들의 바람이, 죽어서야 이뤄지는가…. 미스터리 현상, 어떻게 노인들이 젊은 날 함께 찍은 사진의 얼굴처럼 젊음을 되찾았는지…. 의문이다. 세상을 향한 이들의 한이…. 몽골의 늑대 정령이 이들에게….
늑대는 평생 제 짝만을 사랑한다. 늑대 같은 남자를 만나라 평생 너만 보고살거야
몽골에서 늑대는 신성한 동물이다. 용맹의 상징인 늑대를 조상으로 숭배한다. 늑대보다 더 고귀한 사람만이 늑대를 잡을 수 있다. 또, 늑대는 제 짝 하나만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존재인 모양이다. 몽골의 사나이는 늑대다. 평생 제 짝을 지키기 위해 모든 역경을, 그리고 몽골에 있다고 수없이 많은 편지를 보냈지만 “수취인 불명”이라는 도장이 찍힌 채 돌아왔다. 수취인은 어디에서 뭘 하는지, 결혼은 했을까? 잘 살고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매일 죽음을 생각한다. 머리맡에 깨끗한 옷과 물컵을 놓아두고…. 깨어나면 또 시간이 늘어났을 뿐….
그런 늑대의 신부 역시, 남한에서 간첩 동조자로, 모든 걸 빼앗긴 채로 그렇게 살았다. 심신 모두, 50년 전에 연인, 남편과 헤어진 그때, 모든 걸 잃었다.
그래서 늑대신부라 한 모양이다. 70년 동안 두 사람을 가로막았던 체제…. 너무나도 아련한 이야기, 이 책 속 어딘가에는 마른 눈물 자국이 남아있다.
세상에는 글로서도 말로서도(필설)그 보다 더한 그 무엇으로 형언할 수 없는 일도 있다. 바로 이 소설이 그렇다. 아니 소설이 아니다. 논픽션의 실화일 수도 있다.
60년에 발표된 최인훈의 소설 <광장>에서 남북 그 어느 곳도 선택하지 않고 중립국을 선택했던 지식인 장교 이명준, 일본 유학생으로 한때는 사회주의를 꿈꾸며 항일의 길을 걸으며 광복된 조선을 위해서, 그렇지만 남과 북의 현실과 이를 공고히 하는 이데올로기의 광기, 그 사이로 비친 진실들…. 그는 남북 어느 곳도 선택할 수 없었다….
영화<공동경비구역>의 소피 장(이영애)은 영세중립국 스위스의 장교 이 사건 조사를 맡는데, 나중에 그의 아버지가 인민군 출신이었다는 이유로 해임된다. 최인훈의 광장에서 중립국을 택한 이명준과, 스위스 장교, 소피 장의 아버지 인민군….
이 소설의 설정과 전개는 현재와 과거를 왔다 갔다 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 역시 일제강점기 말에서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남과 북의 현실을, 그리고 이 아픈 현실을 고스란히 안을 수밖에 없었던 남과 여…. 그들은 몽골 초원의 한 게르에서 영원히 헤어지지 않는 연인이 되었다.
한국인의 마음에 “마음 폭탄”을 던지다
이들의 작품, 작곡가와 가수가 간첩이라서 그들이 낸 앨범은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일제강점기 같은 대학에 다니던 친구들의 이름으로 발표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 또한 아프다. 진짜 작곡가와 진짜 가수를 밝히지 못한 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가수와 죽기 전에 진실 일부만을 밝히고 쓰러져간 작곡자, 이들은 한국 사회에서 꽤 유명한 작곡가와 성악가로 대학의 명예교수였다. 진짜 작곡자와 가수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또 그렇게 세상을 향해 내가 노래 “마음의 작곡자”가 아니라고 밝히며 세상을 떠났다. 그의 아내 역시 진짜 가수(성악가)는 따로 있다고…. 밝히며,
예술작품도 간첩이 썼다면 단죄되는가? 간첩이 작곡한 노래를 부르면 안 되나?, 참으로 이데올로기의 벽은 높고도 두껍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남과 북의 긴장을 일으키거나 초래하려는 세력들….
이 소설 늑대신부는 순간이 아닌 전 생애에 걸쳐, 죽음 너머로까지 이어지는 사랑 이야기다. 자신의 이름을 땅에 묻고 음악에 영생을 준 두 음악가의 아픈 이야기다. 참혹한 생의 비수에 맞서 맨몸으로 사랑과 음악을 지켜낸 두 마리의 늑대 이야기다.
우리 사회 어딘가에 또 다른 늑대신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못내 씁쓸하다.
<출판사에서 보내 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