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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도망자의 고백
야쿠마루 가쿠 지음, 이정민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7월
평점 :
벌이 속죄가 아니라면,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어디까지 도망쳐야 하나?
어느 도망자의 고백
야쿠마루 가쿠의 소설, 가해자의 관점에서 쓰인 소설, 작가는 이 소설에서 누가, 언제, 어디서 똑같은 상황을 마주하게 될지 모른다. 차를 운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망사고의 가해자가 될 수 있다고…. 현대사회의 속죄, 보험에 들어있으니, 형사처분을 조금이라도 가볍게 하려면 금전적인 합의와 처벌불원서를 제출하면, 잊힐까, 아니 잊힌다. 피해자의 유족을 만나는 일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일 때만….

우리 사회는 더욱 그러할지도 모르겠다.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이라는 아주 특별한 법이 있기에, 교통사고처리만큼은 진즉부터 통계에 의존하는 재판도 진행됐다. 요즘 AI, 빅데이터 때문에, 인사사고가 나면 가해자와 피해자의 과실상계를 들이대며, 금전보상을 해결 원칙으로 한다. 차로 사람을 치어 죽였다고, 가해자 역시 차로 쳐서 죽이라는 판결은 없으니 말이다.
우리 사회와 사정이 다른 일본은 교통사고도 일반 범죄와 같다. 아무튼, 이 소설은 가해자의 시각에서 이야기를 풀어낸다. 물론 복선이 깔려있다. 소설의 백미일 듯….
이 소설 주인공 마가키 쇼타는 부모의 바람으로 학창 시절 내내 공부만 해서 게이오대학에 들어간 세상 물정 모르는 풋내기, 제 용돈 벌이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는 곳에서 알게 된 여자친구 구리야마 아야카, 사고가 일어난 날은 친구들과 함께 술을 마셨다. 멀리서 술집으로 들어가던 쇼타를 본 아야카는 그에게 문자를 보낸다.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어”라고 이미 막차가 끊긴 시간, 아야카를 놀라게 해주려고, 집으로 돌아와 그녀와 함께 길에서 주워온 고양이를 데리고 차를 타고 아야카에게 향하던 중…. 꿍하는 소리와 함께 뭔가를 타고 넘은 느낌, 백미러로 보인 신호등의 빨간 불, 그대로 달린다. 뺑소니 사건이다.
피해자는 81세 여성 노리와 기미코다. 차량에 치인 상태로 200미터나 끌려갔다. 그리고 사망했다. 곧바로 경찰에 체포된 쇼타, 그는 사람을 치었다는 인식이 없었다고, 개나 고양이인 듯했고, 당시는 비가 왔고 신호등은 파란색이었다고…. 재판에서 그의 주장은 신빙성이 없다고 여겨져 4년 10개월의 징역형을, 소년교도소에서 살고 나온다. 25세가 된 쇼타, 이 사건으로 TV 프로그램에 교육자로서 출연했던 아버지, 평소 엄격한 교육을 주장해 온 그의 아들이 뺑소니범에다 잔인하게…. 누나는 이 사건을 계기로 결혼을 하지 않았다. 못했던 듯하다. 온라인에서는 쇼타의 얼굴이 그 가족들까지 발가벗겨진 채로, 잔인한 살인마가 됐다…. 가족은 이미 뿔뿔이 산산조각이 났다. 부모는 이혼하고, 어머니와 누나는 미가키라는 성을 버리고 외가 성을 따르고 있다.
노리와 기미코의 남편 노리와 후미히사 이제 90을 앞두고 심한 건망증을 겪고 있다. 하지만, 그는 쇼타를 만나고 싶어 했다. 그를 만나서 해결해야 할 일이 있다고….
흥신소를 통해 쇼타의 동태를 살피던 후미히사는 쇼타가 사는 연립주택 옆집으로 이사 오고, 아야카는 쇼타가 뺑소니 사고를 칠 무렵, 쇼타의 아이를 임신한 상태였다. 지금은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는데,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보고 쇼타가 안정이 되면 아이의 존재를 밝힐 셈이었다.
아야카는 쇼타와 친구로 지내자면 일주일 두 번씩 연립주택으로 찾아와 음식을 만들어준다. 옆집의 후미히사에게도,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는 두 사람, 후미히사는 2차대전 때 징병 돼 중국에서 사람을 죽였다. 아마도 죽은 이들의 원한이 두 살배기 어린 딸을 죽게 했고, 오랫동안 함께 살아온 그의 아내마저 데려가 버렸다고…. 쇼타 역시 악몽에 시달린다. 그의 차에 치인 노리와의 모습이 나온다. 살아서 죽음 같은 악몽을 겪으면서…. 쇼타는 남들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그림자처럼 조용히 살면 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뇌리를 떠나지 않는 그 날의 악몽, 죄책감이다. 아야카역시 그날 그런 문자를 보내지 않았더라면 뺑소니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죄책감….
이야기는 뺑소니 사고의 가해자가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그날 밤의 진실을 피해자 유족들 앞에서 고백하고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는 가의 하는 문제가 아니다. 의도했던 고의가 아니었든 간에 후미히사는 2차 대전 때 중국에서, 그리고 쇼타는 집 가까운 횡단보도에서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는 이들을 죽였다. 죽은 이에 관한 속죄는 단순히 형을 살고 나오고 잊힌다고 해서 잊히는 게 아니라고, 후미히사를 통해 오래된 악몽을, 쇼타를 최근의 악몽을, 죄의식을 죄책감을 느끼는 자는 악몽에 시달리는지를 후미히사는 쇼타에게 확인하고 싶었다. 후미히사는 녹슨 칼을 들고 쇼타를 찾아간다.….
후미히사가 자신을 꼭 보고 싶어 한다는 말을 그의 아들에게 전해 들은 쇼타와 아야카는 인플루엔자로 입원한 후미히사를 만나러 가고, 그의 가족들 앞에서 모든 죄의 고백을 한다. 그날 실은 차에 치인 것이 어머니인 줄 알았다고, 무서워서 그랬다고, 거짓말을 했다고…. 다 말했다. 후미히사는 쇼타에게 말한다. 죄책감을 벗어던지라고 이 말을 꼭 전하고 싶었다. 속죄는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라는 말을…. 그날 밤 들고 갔던 낡은 칼은 중국에서 사람을 죽였던 칼이라고…. 후미히사는 죄를 고백하고 속죄할 대상이 없었다….

진정한 속죄란 무엇인지, 현대사회의 속죄방식을 되묻는다. 벌써 수십 년 전에 고의도 과실도 아닌 전쟁 상황 속에서 서로 죽고 죽이는 현장에서, 사람을 죽였다는 죄책감에 평생을 시달렸던 후미히사, 그의 아내를 사고로 죽인 쇼타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 죄책감을 이제는 떨쳐버리라고…. 열심히 사는게 속죄라고
전과자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낙인’이다. 사건의 전말은 알 필요도 없다. 그저 결과만을 두고 판단할 뿐이다. 아마 우리 사회에도 쇼타와 같은 죄책감과 속죄의 길을 걸어가는 이가 있을까? 조금은 다를지도 모르겠다. 우리 사회에만 있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오히려 이 법이 죄책감과 죄의식을 줄여주는 역할을 할지도 모른다. 다른 사건과는 달리, 교통사고건은 일반 전과자와 달리 취급되기에 그런 것인가?
민식이법ㆍ하준이법ㆍ윤창호법 등 이름 딴 법안 10개 넘어, 입법 위해 행동 나섰던 유족들 “원통한 죽음 헛되지 않기를” 교통사고에 관대한 한국 사회, 과실치사다. 음주운전으로 사람을 치어 죽게했다. 원한이 있든 없든, 차와 사람은 고의 과실을 떠나, 부딪치며 크게 다치거나 죽는 게 사람이다. 단지 합의하고 보험처리하면 그만일까?, 사고는 가해자와 가해자는 큰 희생을 치르게 된다. 개인차는 있겠지만, 적어도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고, 언제든지 그 처지가 바뀔 수 있다는 점을, "죄와 벌"은 뭘까, 벌은 어디까지, 벌을 받았다고 죄가 없어지지는 않는다는 말을 이 소설은 웅변하고 있는 것인가? 도망자의 고백은 쇼타의 고백 아니 후미히사의 고백이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