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개토태왕의 능비에서 상상과 역사로 빚어낸 ‘노마드 정신’
광개토태왕 능비, 지금은 중국 땅에 사방이 유리 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일제 강점기 탁본을 떠놓은 것을 보고, 지워진 행간을 퍼즐처럼 맞춰나가기에는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작가 엄광용의 끈질긴 노력과 집념, 기자 근성인가 고구려역사회에 들어가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역사학을 공부하면서 중국을 찾고 둔황을 거쳐 실크로드까지, 펼쳐진 ‘광야’ 담덕이 말 타고 달리던 1500년 전의 광야에서 작가의 상상을 씨줄로 역사의 파편을 날줄로 엮어, 우리 앞에 놓인 이 책…. 작가는 우리 민족의 기상, 노마드 정신을 되살려 새로운 미래의 길을 열어갔을 수 있을까라는 문제의식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 광개토태왕의 기상과 정신을 이 소설을 통해….
마치, 고주몽과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떠오른다. 불세출의 영웅들…. 담덕은 질투도 하고, 사랑을 느끼기도…. 영웅의 전형, 천편일률적인 접근에서 벗어나 있다.
순풍과 역풍
371년(고국원왕 41년), 고구려 북방 국경을 지키던 장수 동부욕살 하대곤의 양자로 들어온 해풍, 고국원왕 사유의 동생 왕자 ‘무’의 아들이다. 무는 연나라 모용씨와의 전쟁에 출전하여 승리를 거두지만, 모용씨는 죽은 부왕(미천왕)의 무덤에서 시체를 꺼내고, 태후와 왕후, 백성 5만을 인질로 잡아 후퇴하고, 이들에게서 부왕의 시체와 인질을 데리러 갔던 ‘무’는 요구를 들어주는 조건으로 고구려에서 영원히 사라지라고….
연의 모용씨는 부왕의 시체를 돌려주고 무가 확실히 사라졌다는 확신 때까지 볼모는 그대로…. 미천왕의 시체만 모셔오게 되고, 국경에 이르러 당시 왕제 무의 부장이었던 하대곤에게 뒤를 부탁하고 홀연히….
하대곤은 이 일을 계기로 계속 승차하여 동부욕살에 이르고, 어느 날 무의 편지와 함께 찾아온 어린아이 해풍, 하대곤의 사촌 동생으로 종마장을 열고, 상단을 꾸려 장사를 하던 하대용, 그리고 야무진 그의 딸 연화, 말갈족 후예로 하대용이 거둬들인 무예의 달인인 추수,
하대곤은 사리분간을 제대로 못 하는 리더 고국원왕 대신에 지도자의 자질이 넘쳐나는 왕제 ‘무’ 같은 이들이 왕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품는다. 날로 성장해가는 해풍을 보면서 역모의 꿈도 서서히….
등장인물들의 관계도가 펼쳐지고, 고국원왕은 천제를 지내러 가는 길에 하대용의 집성촌을 찾아들고, 백제정벌 때 군사를 내주지 않았던 동부욕살 하대곤의 동정도 살필 겸….
군사훈련을 겸한 천렵을, 무술을 겨루기, 말달리기 시합을 하는데…. 해풍, 천수, 남장의 연화, 왕자 이련, 이련의 말이 넘어지고 연화는 시합을 포기하고 말에서 내려 이련을 돌보고, 이런 연화의 모습에 신경을 쓰는 추수, 이 시합에서 이긴 해풍….
여기에 왕의 차남 이련 왕자…. 이렇게 하나둘 등장인물이 모여들고, 5천년 역사의 위대한 왕 담덕이야기의 서막이 오른다.

해풍과 추수는 하연화를 연모하는데, 둘 사이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돌고, 연화의 마음은 왕자 이련을 향하고, 지금까지 하대곤을 경제적으로 뒷받침해주던 하대용은 해풍과 연화를 결혼시키려했던 맘을 바꿔, 왕자와 결혼을 추진하려하자, 하대곤과 대용은 거리를 두게 되고, 독립적으로 군사를 꾸려야 한다고 생각한 하대곤….
하대곤의 판 뒤집기를 위해, 왕후를 배출한 우씨 집안에 연통을…. 괴상한 스님 석정과 하대곤의 호위무사 두충과의 만남…. 우씨집안에서 하대곤 진영으로 찾아든 우적, 해풍의 스승이 되고, 해풍에게 군사의 생명이 내 생명임을 일캐워주면서, 장수의 길, 지도자의 길을...
석정은 고구려의 앞날을 역풍과 순풍이 불 것을 예견하는데…. 역풍은 무엇이고, 순풍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한편, 백제를 공격했다가 태자 수에게 패하여 물러났던 고국원왕은 복수의 칼날을 벼리며 와신상담을…. 이것이 역풍과 순풍을 가르는 시작인가?
담덕의 이야기는 한 편의 드라마처럼, TV드라마 <주몽>처럼... 말달리는 모습과 시전거리 등이 떠오른다. 씨줄과 날줄을 엮어내는 글쓰기, 아마도 십 수년간의 준비를 거친 덕분인가, 등장인물 사이의 관계, 담덕과 하대곤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들...
이 흥미로운 전개, 연화를 향한 해풍의 연모, 지켜보는 것도...
2편에서 과연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