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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행성 1~2 - 전2권 ㅣ 고양이 시리즈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5월
평점 :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고양이 행성>
이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표지 그림과 책 소개부터 흥미롭다. 푹 빠져들 듯하더니, 빠져들고 말았다. 이 책의 행간을 읽는 동안 여러 영화의 컷들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동물 주인공의 영화들에 나오는 캐릭터들이. 우스꽝스런 인간 군상들...마치 덜떨어진 무리처럼보인다. 적어도 고양이 바스테트에게는 말이다.

우리 엄마가 이르기를, 백과사전에 나오기를...
주인공 이집트 고대 고양이여신 바스테트, 그는 피타고라스라는 이웃집 샴고양이를 만나, 평범하게, 즉 자신의 존재를 알지도 못했던 그런 삶을 오늘이 내일 같고, 내일이 오늘 같았던 집고양이의 삶에서 벗어나, 생각이란 무엇인지를 알게 해준, 뭐 진정으로 지구라는 행성에서 당당하게 삶의 주체로 나설 수 있도록 무지에서 눈을 뜨게 해준 수컷 고양이... 바스테트는 인간의 지혜가 담긴<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확장판> ESRAE라는 이름으로 저장해 놓은 USB(제3의 눈) 덕분에 세상을 많이 이해할 수 있었다. 인간세계의 지식을….
인간과 고양이 그리고 이들의 적인 벌떼 같은 존재 ‘쥐’ 프랑스 파리에서 항서(쥐에 대항하는) 연합군을 꾸렸던 바스테트, 그리고 쥐들의 우두머리 ‘티무르’ 무모하기 짝이 없는 아들 안젤로, 피타고라스에게 추파를 던진다고 예단, 질투의 대상이 된 암고양이 에스메랄다. 집사 나탈리, 그리고 바스테트에게 다른 종과 소통할 수 있는 복잡한 장치를 사용할 수 있게 해준 과학자 로망웰즈…. 동물 종, 인간의 말 게다가 영어까지 통하는 앵무새 샹폴리옹, 할리우드 영화의 한 대목을 연상케 하는 등장인물들이다.
종간 소통의 원대한 꿈을 가진 바스테트
쥐들에게 점령당한 유럽 세계를 떠나 강력한 쥐약이 개발됐다는 소식을 듣고 대서양을 건너 뉴욕으로 희망 호를 타고 건너오는데…. 뉴욕은 이미 폐허가 됐고, 유럽 쥐들보다 더 덩치가 큰 쥐들이 장악하고 있고, 대 멸망의 끝에 살아남은 인간들은 고층빌딩에 숨어 사는데….
중간 소통이라는 큰 꿈을 가진 바스테트의 눈에 비친 인간 군상은 대 멸망을 경험하고도 여전히 그들끼리도 서로 소통할 줄 모르는 존재들이었다. 어떤 면에서는 쥐들보다 더 호전적이다.
발전을 모르는 인간들, 정치와 민주주의, 인종 갈등, 성 평등, 광신주의….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적어도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백과 사전을 꿰고서도 말이다. 과연 이런 인간세계가 지속 가능할 것인가? 라는 씁쓸함이 묻어나온다.
인간들과 함께 쥐에 싸우는 바스테트, 지구공동체 모임의 의장에 선출돼, 늘 혼잣말로 자신에게 불러주던 “여왕 폐하”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위기 때마다, 뭔가를 결정해야 할 때마다. 정신 속의 든든한 후원인이 돼 준 엄마, 바스테트는 낙관주의자인 엄마는 이렇게 말했지…. “바닥으로 떨어지면 차고 올라올 일만 남았으니 걱정하지 말아라”라고 했지만, 나는 그렇지 못하다는 투로…. 인간의 백과사전에 쓰인 문장을 떠 올리며 문자 속을 헤아리려 하지만 정작 인간의 글은 읽지도 쓰지도 못한다.
마치 유럽의 혼란함을 뒤로 하고 종교의 자유를 찾아 미국을 찾은 청교도들처럼, 티무르라는 쥐의 우두머리 제3의 눈을 가졌다. 티무르 혹시 칭기즈칸?, 이들 쥐의 DNA를 조작-일종의 유전자 가위인 크리스퍼 기술 등 최신 과학-, 변이를 만들고 서로 의사소통을 못 하도록 해서, 무리의 결집을 훼방 놓고 간을 파괴하고 뇌를 손상시키는 바이러스를 만든다, 이런 기술은 쥐들에게 쓰이겠지만, 무지한 인간은 결국 같은 동류에게 쓸 것이다. 너 죽고 나 살자고 하면서….
여전히 상상력 부재의 인간군상들
쥐들을 쓸어버린 몇 차 대전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쥐들과의 전쟁이 끝나고, 모두가 UN에 모여 총회의 의장을 뽑는다. 힐러리 클린턴이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하겠다고, 군인 부족의 그랜트 장군, 어찌 됐든 전쟁의 영웅이라고, 질서 유지와 안보가 국가 운영의 근간이라며…. 또 로봇공학자, 아메리카 대륙의 선주민을 대표하여 나온 말, 그는 저성장, 인구와 소비 감소를 대표 공약으로, 또 생물학자 이디스 골드스타인, 크리스퍼 기술로 변화된 세계에 적응력을 갖춘 인간종을 만들자고 나서고, 천문학자 그룹을 대표해서 로망웰즈가, 지구 외 다른 곳에 인류의 정착 가능성을 찾아보자며, 모르몬교의 목사 요아힘은 과거의 가치들로 돌아가자고…. 이렇게 나선 후보들의 이야기는 어쩌면 미래 인간세계에 펼쳐질 가능성의 방향들이다.
바스테트는 인간들의 상상력이 고작 이거야? 라고 생각한다. 백과사전에 나오는 누구나 다 아는 내용을 아주 신중히 게다가 심각하게 떠드는 꼴들이라니…. 여전히 인간은 ‘무지’하구먼. 이라고 여겼을 터.
인간과 다른 종 모두의 지도자로 선발된 추앙받는 전쟁영웅 군인 부족의 그랜트 장군…. 마치 2차 대전 후, 아이젠하워가 대통령이 되듯이
<행성>은 무지한 인간들, 다른 종이 이해하려야 할 수 없는 특이한 종자들 그들은 ‘무지’라는 특징이 있기에 어찌 보면 지금껏 살아남을 수 있었다. 베르나르의 감칠맛 나는 문장과 캐릭터가 꽤 복잡한, 아니 복잡하기보다는 그런 심리 상태를 드러내놓는 섬세한 표현수법으로 바스테트가 생각과 행동에 읽는 이가 이입되는 듯한 글쓰기…. 뭐라 말로 설명하기 어려울 때 우리는 “형언할 수 없는” 그 무엇이라 한다.
이 책은 묘한 마력이 있다. 손에 잡힐 듯,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이야기인 듯한 친숙함과 인간세계를 묘하게 비틀어 풍자하는 이야기들….
입담 좋은 바스테트의 말을 듣는 것도 흥미롭다. 이 소설은 보는 것이라기보다는 바스테트가 하는 이야기처럼, 목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아무튼 내 건너편에 앉아서 흥미롭게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