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생물 이야기
양지윤 지음 / 팩토리나인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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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생물 이야기

 

생물과 무생물을 가르는 건 과학 세계의 구분법이다. 살아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살아있지 않는다는 말은 죽었다는 말이 아니다. 그저 살아있지 않는다는 것일 뿐, 애초에 살아있지 않은 것이기에 죽을 수도 없을 테니, 생물이 무생물이 되다. 그렇지, 밀림과 산림의 큰 나무가 사람 손에 베어져 톱으로 잘리고, 재단되고, 거기에 항균, 부식방지처리까지 거치면, 자재가 되니, 그것으로 문을 만들던, 책상을 만들던 여전히 그 본질은 나무니까, 우리는 이런 걸 무생물이라고 부른다.

 

작가 양지윤의 이 책<무생물 이야기>은 어른을 위한 동화?

 

동화란 동화(童話=아이들의 동심을 바탕으로 지은 이야기, 공상적)이거나 동화(同化=성질, 양식, 사상 따위가 다른 것이 서로 같게 됨) 혹은 동화(同和=같이 화합, 융화), 이 모두를 다 갖춘 것은 아닐까 싶다. 공상적이며, 화합, 융화 성질이 다르던 것이 서로 같아지게 되듯이

 

어느 날 아침에 깨어나 보니, 무생물들의 말소리가 들린다. 마치 동물과 말을 하는 수의사가 주인공으로 나온 어떤 영화처럼…. 보통사람들에게는 들리지 않았을 말들이…. 아니다, 그를 포함한 세상 모든 이들이 무생물이 되어버린 게 아닐까,

 

내 삶과 일상 공간에 자리했던 냉장고가, 변기가 나폴레옹처럼 물대포를 쏘고, 샤워기가 뱀처럼 머리를 치켜들고 내 목을 감으려고 하고, 침대가 나를 밀어뜨리고, 마치 술에 취해 걷던 밤길 저편에 서 있는 가로등이 나를 가로막아서고, 나를 가로등과 씨름을 하고, 길바닥이 갑자기 일어나 내 뺨을 세차게 때리고. 그 후로는 정신이 없다. 어떻게 누구의 도움으로 방 안에 드러누웠는지도 모를 정도 술에 취한 경험이, 술에 취하지 않고도 일어날 수 있다….

꽤 재미있는 구성의 소설이다. 변기가 나에게 이야기를 걸어오고…. 생텍쥐페리<어린 왕자>에 나오는 명언들, 여기에 보이는 건 껍데기에 지나지 않아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라는 말….

 

나의 침대 이야기에서

 

“침대는 오래전부터 내 꿈을 매트리스 아래 보관하고 있다고 했다. 내가 꾼 꿈 중에 가장 멋진 꿈은 별똥별을 타고 세계 여행을 한 일이었다.”(35쪽)

서로의 존재에 아무런 감각이 없던 생물시대에서 무생물이 되고 나서야 서로의 존재에 관한 감각과 관심이….

이 소설은 살아가는 것은 살아가는 게 아니라 그저 관성 법칙에 따라 움직일 뿐, 아무런 감각도 의지도 미래의 희망도 없이 로봇처럼, 좀비처럼 살아가는 게 “생물”이라고, 역설적이게도 “무생물”이 되는 순간, 세상의 모든 것들에게서 나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고, 관계로 맺으면서 진짜 생물, 살아 움직이게 되니 말이다.

 

무생물이라 쓰고 생물이라 읽고, 생물이라 쓰고 무생물이라 읽어야 할 세상 속에서 초점 없는 흐릿한 눈으로 영화<매트릭스>의 세상을, 인공지능 로봇에게 세뇌돼 그저 양분을 제공하는 인간들, 황폐한 지구의 모습 위로 펼쳐진 환상의 세계,

무생물 이야기는 어른을 위한 동화, 동화, 동화다. 서로 성질이 다른 것을 같이 되게 만들고, 융합하고, 작용하는 그런 이야기, 꿈을 잃어버린 생물 세상과 나와 내 주변의 모든 것들을 둘러보게 만드는 무생물의 상태…. 어찌 보면 나를 대상화시켜놓고 뜯어보는 것처럼,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찾는 것이 무생물의 이야기가 아닐까….

 

긴 여운을 남기는 소설….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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