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눈고개 비화
박해로 지음 / 북오션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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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 <귀경잡록>

 

박해로 작가의 SF호러 연작소설의 키워드는 <귀경잡록>도참비서다. 정감록과 견주는 것은 별론으로 하자. 어차피 세계가 다르니까, ‘원린자’ 멀리서 지구를 찾아온 외계인, 마치 영화 MIB시리즈처럼, 그리고 최근에 나온 <기이현상청 사건일지>처럼,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외계인... 시공간을 초월한 절대자 육십오능음양군자, 그가 부리는 이계(異界-다른 세계)별천지의 원린자들이 호시탐탐 인간 세상을 노린다는 예언서, 뱀껍질의 선비 탁정암는 <귀경잡록>에서 조선이 가장 경계해야 할 적을 원린자라 했다. 육십오능음양군자 앞에서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다는 걸 깨닫게 된 반항적인 백성은 이 책을 혁명 반란의 기치로 삼았고, 탐욕에 눈먼 세력가들은 권력형 범죄를 숨기기 위해... 원린자에게 혐의를 뒤집어씌우고….

 

이번 소설집은 <귀경잡록> 관련으로 벌어진 일 중 하나인 <외눈고개비화>와 <우상숭배>의 이야기가 실렸다. 전작<화승총을 가진 사니이>에서 작가는 100개의 이야기를 싣겠다고 했는데, 이게 몇 번째 이야기일까?

 

 

 

 

외눈고개 비화

 

이야기를 풀어가는 이는 '선규'라는 고을 사또다. 40년 전에 헤어진 친구 '정겸'이 이상한 몰골로 그를 찾아와서 하는 말, 악귀가 들끓는 생지옥에서 가까스로 탈출했는데 그곳에서 겪은 하루가 인간계의 40년과 같아서 이제야 그를 찾아왔노라는 것이다.

 

선규는 정겸에게 박고헌처럼 고을 사또가 됐다며, 만천하에 알려진 금서<귀경잡록>을 들먹인다. 6장에 쓰인 조선을 악귀로부터 구해 낸 인물 박고헌이라는 이를….

하루가 40년?, 하루 동안 외눈고개에서 머물렀건만 인간계의 시간은 이미 40년이 지났다니…. 블랙홀이 존재했던 것일까? 아니면 원린자들과 이계에서 온 무리의 공간은 지구 안이건만 시간이 다르게 흘렀던 것일까?

 

여기에 등장하는 사마귀형상을 한 원린자가 노예로 부리던 조그만 덩치, 배에 눈이 달린 괴물들은 마치 율리시스의 항해를 그린 호머의 서사시- 어느 날 율리시스와 그 부하들이 이마에 눈이 하나만 달리 키클롭스에게 붙잡히고, 새의 몸에 여성의 얼굴을 한 괴물 사이렌- 의 한 대목을 연상케 한다.

 

안동김씨 가문 출신으로 무과에 장원한 정겸의 아버지 김성탁은 규방문학으로 이름을 떨친 당시의 신여성 신부순과 사랑에 빠져 20년 이란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부부의 연을 맺었지만…. 당대 조선에서는 천상 ‘첩’의 신분을 벗어날 길 없던 봉건시대, 이 둘 사이에서 태어난 총명한 ‘정겸’은 과거도 볼 수 없는 서자라는 신분의 덫에 옭매여 천덕꾸러기로 사는데….

그에게는 아버지가 죽으면서 남겨준 유산은 꽤 큰 농장이 있었다. 어느 날 선규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노인과 젊은 처자를 죽이려는 두 사람을 발견하고 이들을 막다가 한 사람을 한 방에 때려죽이고 살인자가 된 정겸, 순흥 관아 옥사에 갇히게 되는데 이것이 그의 운명을 결정짓는 계기가 된다. 한편 같은 옥사에는 북방의 오랑캐와 싸우던 장수 안 지천이 들어와 있다. 그는 세상을 뒤집어 엎어버리고 싶어하던 차에 <귀경잡록>을 통해 원린자를 물리친 박고헌의 이야기를 접하게 되고... 한방에 사람을 녹여버리는 대포의 흔적을 좇다가 천신만고 끝에 그 원린자 중 하나가 인간의 탈을 쓴 마탁봉임을 알게 됐다. 그는 순흥 관아 옥사에 갇혀있었다. 그를 빼내기 위해 일부러 그도 옥사에 갇혔다. 이 옥사에서 정겸을 본 안 지천은 사건의 진상을 알고 있다며, 함께 감옥을 빠져나가자고...

 

원린자와 정겸을 데리고 파옥을 하여, 그 옛날 비행기가 있던 곳까지 대포를 찾으러 가는데…. 외부에서는 보이지 않게 펼쳐놓은 보호막, 눈가림 개를 걷어내고 들어간 곳이 바로 섭주현의 종자 고개이자 외눈 고개였는데…. 비천자(날개가 달리고 배에 눈이 하나 붙은 노란 벌레 형상을 한 괴물들, 소리소문없이 사라진 사람들을 먹을거리로 삼아 박쥐처럼 낮에는 자고, 밤에는 움직이는 번식력이 엄청난 괴물들이다) 안 지천의 동생 묘옥과 함께…. 탁본의 안내를 받아 바로 외눈의 비천자들이 숨어있는 고개, 결국 정겸만이 튕겨 나오고 보니 이미 40년 세월이….

선규는 친구 정겸이 하는 이야기를 정리하여 <외눈고개의 비화>라 궤짝이 넣고 단단히 잠가놓는다. 그리고 장졸들을 데리고 종자 고개로 정겸이 말한 그 비밀통로를 찾아 나선다. 오늘 밤 내가 살아 돌아오지 않으면 외눈고개 비화를 세상에 널리 알리라는 말을 남기며….

 

 

 

 

우상숭배

 

이 역시 <귀경잡록>에 터 잡아 드라큘라처럼 영생을 얻게 된 자의 이야기다. 육십오능음양군자의 수하 십이사도(12간지)와 마치 파우스트에게 영혼을 팔았던 누구처럼, 이들에게 영혼을 판 천 승도 는 150살이 넘었다. 얼굴에 씌워진 탈은 영원히 벗겨지지 않는다. 해가 뜨는 동안 그는 어두운 동굴에 놓여있는 관속에서 잠을 잔다. 밤이면 어여쁜 규수를 납치해온다. 십이사도에게 바칠 제물로…. 여기에 등장하는 권윤헌은 채홍사다. 일을 그르쳐 지금은 내쳐진 처지, 우연히 찾아든 곳에서 천승도를 만나게 되고... 천승도를 햇볕을 쐬게 하여 죽도록- 마치 드라큘라가 햇볕에 타들어 한 줌의 재가 되듯- 놓아두고, 지하 동굴에 갇혀있는 처자들을 구해내는데, 청아라는 여인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청아는 죽은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해가고…. 그녀가 등에 업고 나타난 청동불. 그 안에 갇혀있는 정체 모를 누군가는 그녀의 아버지가 아니었다. 청아를 조종했다. 이 청동불과 십이사도의 싸움이 벌어지고….

결국, 권윤헌은 탈을 쓰고 드라큘라처럼 밤에는 깨어있고, 낮에는 동굴 속 관 속에 들어가 잠을 청하는 그런 신세가….

 

 

 

 

 

<귀경잡록> 시리즈는 묘한 매력이 있다. 기시감이랄까, 어디선가 본 듯, 들은 듯하지만 처음 듣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야기 속에는 천편일률적인 권선징악의 그림자는 깔려있지 않는다. 인간의 본능과 그 외피를 둘러싼 허영, 자신의 욕망 실현을 위해 원린자를 힘을 빌리려는 인간들의 이야기 속에 쳐진 또다시 설계, 읽는 이로 하여금 ‘과연 그럴까?, 그랬을까? 라는 의문을 들게 하는 이야기의 전개가. 이미 이 소설 속 세계로 깊이 들어왔음을…. 마치 실존<귀경잡록>에 매혹되어버린 듯이…. 작가의 새로운 이야기가 기대된다. 이번에는 어떤 세상 이야기를 들려줄지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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