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과잉 사회 - 관계의 단절과 진실을 왜곡하는 초연결 시대의 역설
정인규 지음 / 시크릿하우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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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과잉의 사회

 

지은이는 20대의 철학도다. 그가 말하는 <시선> 초등학교 3학생이던 시절 그가 경험했던 관계와 진실이라는 화두,

시선은 여러 가지 역할을 한다. 무언가 또는 누군가를 볼 때 우리는 인식과 해석을 하고 성찰을 통해 인정한다. 시선으로써 관심을 보이고, 동질감을 확인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위협과 부담을 주기도 한다. 특히, 현대사회에서 <시선>은 복잡해진다. 초등학생의 눈에 비친, 시선의 횡포, 보고 싶은 대로 보고 예단하고 제멋대로 재단하여, 입방아에 올리면 그것이 진실이든 거짓이든 사실화돼버린다는 서사…. 현대사회는 커뮤니케이션의 기술 진화와 함께 역설적이게도 소통은 어렵고, 다양한 배경과 이념을 똘레랑스하는 풍토(여유)가 확증 편향적 사고방식으로 빠져드는 듯하다. 이는 더욱 긴밀해질 것 같았던 관계의 단절을, 진실의 조정을 초래하는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즘의 역설이다. 이 역설 가운데 자리한 것이 시선이다.

 

이 책은 7장으로 이뤄졌다. 1장에서는 아이콘텍트다. 눈과 눈을 마주치면서…. 사람을 대하는 가장 기본적인 자세다. 2장에서 돌연변이 시선, 3장 관음의 보편화, 4장 조명중독, 5장 뜯어보기, 6장 전문가의 시선, 7장 눈이 닿지 않는 그곳이 실려있다.

 

아이콘텍트- 시선-

 

우리는 곧잘 이런 말을 한다. 어린이집에서 아이들과 아이콘텍트가 중요하다고, 대화할 때도 눈을 맞추고 눈으로 뭔가를 전달하고 감정을 표현한다. 소통의 도구 중 언어와 함께 중요한 것이 눈 맞춤이다. 눈을 마주친 이상 나는 너를 사물로 대할 수 없으며, 너에게 그런 대우를 받아서도 안 된다. 이는 사회의 형태소, 개념적 근원이다. 아이콘텍트는 알아보기, 돌아보기, 마주보기를 한다.

 

시선의 자유는 자연스럽게 자기 형성 또는 정체성의 자유로 연결된다. 당신이 나를 누구로 보는 것은 내 정체성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내 정체성 자체의 구성 요소가 될 수 있다. 누군가 축구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축구선수로서 보여야 한다. 일견 축구선수라는 정체성과 다른 이에게 축구선수로 보이고 인식되는 시선은 일방적인 인과관계로 연결되는 듯하다. 그러나 내가 축구선수로 보이지 않는 한 내가 나를 축구선수라고 할 수 없음 또한 사실이다. 눈에 보이는 단계를 거쳐, 해석의 자유와 상상의 자유가 발동된다.

 

시선의 변화

 

스피치의 패션화, 외관에 지배당하는 패션은 통상적인 대화에서 내가 이 말을 하면 상대방에게 어떻게 비칠까, 또 해석될까? 라는 의문이 존재했다면 패션화된 스피치는 내 말이 이렇게 보일 것이라는 예측 만을 남긴다. 패션은 해석의 대상이 아니라 관찰과 복제의 대상이다. 눈을 마주친다는 것은 상대방에게 내 안을 보이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제 눈을 마주치면서 입은 딴소리한다. 눈은 이미 아니라고 말한다. 입은 그렇다고 한다. 바로 이렇게 하는 것이 스피치의 패션화다. 그 밖에도 관음, 관종, 노출, 조회 수 가짜뉴스, 개소리 등등의 현상 역시, 시선에서 비롯된 것이다. 눈을 마주치지 않고 일부로 회피하면서 누군가를 음해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누군가와 눈을 마주치면서 말한 자신이 없게 된 사회….

 

눈과 손, 탈과 조명

 

눈으로 훑는다. 손으로 만진다. ‘시선 강간’이란 말이 바로 그런 의미다. 음흉한 시선으로 상대방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모욕감을 느끼게 한다는 뜻이다. 시선 강간에 이르지 않더라도 훔쳐보기(관음)를 하기 위해 인간은 ‘탈’을 만들었다. 탈을 쓴 자는 시선이 차단된다. 마치 박정희가 늘 선글라스를 쓰듯- 그의 불안감을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기 위해 눈의 상태를 보이지 않게 하려는 의도에서-, 서로를 향하는 시선이 차단된다. 조명 또한 그런 역할을 한다.

 

전문가의 시선

 

프레임을 씌우는 것도 따르는 것도 <시선>이다. 시선이 진실을 구성한다. 그리고 시선이 언어를 유도한다.

 

전문가들은 물과 H2O를 구분한다. 후자 외에 물이라는 부르는 것이 잘못됐음을 지적한다. 언어는 시대가 흐르면서 불가피하게 변화한다. 그 과정에서 전문가들은 변화가 진화되도록 올바른 키잡이가 된다. 단순히 많은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적 맥락이 관례로 자리 잡는 게 아니라 전문성의 권위로부터 인정을 받은 언어가 올바른 화용으로 정립된다. 비정상, 비상식의 관례화를 방지하는 것 역시 전문성의 역할이라 하겠다. 이의 부작용이라 할까, 예기치 못한 또 하나의 반사로 위에서 말하는 것들이 생겨나는 원인이 된 것은 아닐까 싶다.

 

지은이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시선> 즉 아이콘텍트의 본디 의미로의 회귀를 말함이다. 시선을 통해서 자유를 얻는다. 눈과 눈의 만남은 불안과 갈등을 주기도 하지만, 서로의 이해를 도모하기도 한다. 아이콘텍트의 <시선>은 이미 익숙함이 아니라 앞으로 알아갈 사람을 인정하는 눈빛이다. 또한, 관계라는 것에도 명암은 분명 존재한다. 관계가 어느 일방으로 편중, 편향되면 보이는 것 자체도 왜곡된다. 관계와 시선은 관계회복을 지향한다.

 

기실, 성희롱이나 직장 내 괴롭힘(직장 갑질) 등도 그 바탕에는 관계와 시선이 존재한다. 상대방은 존중하는 평등의 눈길, 시선이라면 관계 역시 평등해진다. 평등 관계에서는 누구를 희롱하거나 괴롭히는 행동은 일어날 수 없다. 인식하든 못하든 무의식적인 편견에 휘둘리면 관계가 제대로 이뤄질 수 없다. 시선 또한 이미 편견과 편향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시선이라는 것, 성폭력, 성폭행의 피해자인 여성을 보는 우리의 시선 역시 무의식적인 편견에 바탕을 둔 고정관념이 여전히 지배한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은 인형이 아니니 말이다.

 

젊은 철학도가 천착해 온 관계와 시선이라는 화두는 우리 사회가 지금 맨 먼저 고민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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