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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질긴 족쇄, 가장 지긋지긋한 족속, 가족 ㅣ 새소설 11
류현재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5월
평점 :
질긴 족쇄, 지긋지긋한 족속, 그 이름 가족
이 소설은 참으로 안타깝고도 사실적이어서 아픈 기록이다. 네 남매를 둔 전직 시청 국장 출신의 아버지와 뇌졸중으로 쓰러져 몇 년째 자리보전하는 어머니, 큰딸 인경의 초등학교 평교사, 둘째인 현창은 유명한 대학교수이며 의사, 셋째는 부모가 기를 쓰고 결혼을 반대했던 남자와 결혼했다 이혼했다. 중학생인 아들과 방 두 칸짜리 원룸에 살면서 보육교사로 일한다. 막내 현기는 10년째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지만, 늘 낙방이다. 아버지와 다투고 집을 나와 택배 물류센터에서 일한다.
아버지는 말한다. 걱정마, 우리한텐 자식이 넷이나 있어
자식들 넷의 저마다 사정은 한 곳으로 향한다. “가족”이란 이들 네 남매에게 어떤 의미로 와 닿는가, 생애주기에 따른 돌봄, 이는 가족이란 공동체의 세대 간 영속을…. 정은 위에서 아래로 부모에게서 자식에게로 자식은 또 그 자식에게로 마치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물이 흐르는 이치와도 같다. 그러나 돌봄은 공동체의 의리라고 해야 할까, 어린 자식이 네발로 사방을 기어 다닐 때는 부모가, 세월이 흘러 부모가 네발로 기어 다닐 때는 다 큰 자식이 부모를 돌봐야 한다. 정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거꾸로 올라가지는 않는다. 애정과 정성이 빠진 그저 세대 간의 의리를 지키기 위한 의무일 뿐이다. 이런 냉정함의 질서를 유현재 작가는 그의 경험을 바탕으로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노부부, 아내를 돌보다가 지친 남편 그 역시도 말라 죽어간다. 내가 쓰러지면, 자리에 누운 아내를 누가 돌볼 것인가라는 생각에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아내를 죽였다. 그리고 그도 죽으려고…. 신문 지상 한 귀퉁이 올라온 가슴 아픈 사연은 그저 남의 일이 아니다.
가족, 애증이야기, 돌봄의 끝
돌봄의 지옥 속에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못한 그렇지만 아들과 함께 맘 편하게 살아가던 셋째가 부모 돌봄을 떠안게 된다. 아버지는 시가 20억 하는 집을 주겠다는 말로 딸을 조종하려 하고, 맏이 딸은 나 역시 지금 힘들거든, 명퇴한 남편과 자동차 음주운전으로 임산부를 친 아들, 둘째는 어떤가, 지긋지긋한 부모한테서 되도록 멀리 떨어지려는…. 그리고 아내에게는 ‘시’ 자로부터 받을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하려고, 노인과 질병 그리고 병원의 역할이라는 칼럼을 신문에 썼다가 병원 동료에게 따돌림을 받고, 환자들로부터 왜 병원에 입원해두게 하는 거냐며, 그리고 아버지는 칼럼에 댓글로 불효자라고 비난을….
우리들의 일상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삶을 투영한 소설, 저마다 다들 가진 특별한 사정 또한 함부로 비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우리 사회에서 무급노동으로 그저 젠더적인 노동이 돼버린 ‘돌봄’ 요양원에 대한 상반된 시각들, 가족이 돌봐야 할 부모를 요양원에 맡기면 불효가 되고, 자식이 부모부양책임으로 유기하는 것으로…. 어릴 적 네 남매가 살았던 동성빌라, 이제는 낡고 허물어져 재개발을 기다리는 흉물스러운 곳, 하지만, 그곳에 부모와 함께 지냈던 어린 시절, 왁자지껄했던 그 시대의 추억의 한쪽에는, 현실로 다가온 돌봄의 절벽이….
누가 부모를 죽였을까, 아버지를 칼로 찌른 이는 우리 가족 중에 누구?, 어머니의 입에 들어있는 찹쌀떡, 우리에게 즐겨 만들어주었던 그 찹쌀떡이…. 그렇게 두 사람은 죽었다. 과연 범은 네 남매가 공모한 걸까, 돌봄으로 심신이 피폐해진 셋째?, 아들의 음주운전 사고로 피해자와 합의를 해야 하는 처지의 맏이…. 어찌 보면 모두에게 범죄 혐의는 있다. 모두가 공범이다. 하지만 이들은 누구도 죽이지 않았다. 다만, 가끔 죽이고 싶었을 뿐이다. 가족인데 왜? 라는 물음과 함께….
이 소설은 돌봄의 국가 책임론을 직접적으로는 말하지 않는다. 다만, 현재 우리 사회의 가족 돌봄이란 뭔지,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한번 들여다보라며 돌봄 문제를 제기한다. 우리는 노인의 심리적 변화에 대해서 너무도 모른다. 그저 우리의 어린 시절, 자상했던, 그리고 모든 걸 희생해서라도 잘 되길 빌어주는 그런 성스럽고 자애로운 이미지만이 남아있는 건 아닌지, 그러나 돌봄이 필요한 상태가 되면, 지겨워지고…. 그래서 이 때문에 내 남은 인생을 쓸데없이 보내야 하나라는 생각이…. 이런 모든 것을 떨쳐낼 방법은 없는 것인가…. 작가는 말한다. 고령사회, 저출산초고령사회다. 이제는 누가 돌봄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인가. 일본의 초고령사회의 문제를 2050문제라 했다. 우리에게도 거의 같은 맥락으로 다가온다. 2050년 아이들이 줄어들고, 이제는 초고령의 노인들만의 나라가...인구가 갖는 함의는? 우리 사회의 존속은?, "가족"이란 이름으로 언제까지 도덕적 의무만을 강요하는 사회가 될 것인가?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