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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옳은가 - 궁극의 질문들, 우리의 방향이 되다
후안 엔리케스 지음, 이경식 옮김 / 세계사 / 2022년 4월
평점 :
품절
세상에 옳은 것은 없다. 다만, 그렇게 보일 뿐이다. 누군가에게는 그른 것으로 보일 수 있기에...
세상에 옳은 것은 없다. 찰나지간만 맞을 뿐, 길고 긴 시간 속에서는 무엇이 옳고 그름을 나눌수 있는가...
이런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이 책을 읽고서...
옳음과 그름은 중대한 주제
오늘날 우리가 옳다, 그르다는 관념과 옛사람들이 생각하는 그것은 사뭇 다르다. 중세의 고귀한 법정에서는 열두 살짜리 아이가 결혼하는 것이 자연스러웠고, 또 법도에 맞았다. 또 섭취할 영양 자원이 매우 부족했을 때, 식인행위는 하나의 자연스러운 규범이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믿고 때로는 신봉하기 조차하는 윤리 규범은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인가. 모두 시나브로 변해가고 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한다. 세대론을 논할 때, 베이비붐 세대와 X세대, MZ세대의 가치관이 다르다고 쉽게 말한다. 가치관 바탕에 깔린 윤리기준까지도 들여다보는 것일까?, 옳고 그름의 문제는 뜨거운 이슈가 되었을까?, 지은이의 사유의 관점은 어떤 것일까, 동의할 수 있을까,
지은이는 이렇게 질문한다. 저건 내가 보고 배운 것과 다르잖아, 어째서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 사악하기 짝이 없는 짓을 하는 거지, 옳은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실천하지 못한 사람이 이토록 많은 이유는 도대체 뭘까? 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는 것이 이 책이다.
세상에는 용인되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의 기준을 정해놓는다. 기술은 그 기준의 위치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촉매 역할을 한다. 지은이는 이 대목을 짚어 말하기를, “지금 우리는 기술이 기하급수적인 속도로 바뀌는 시대에 살고 있다. 말하자면 우리가 사는 현재는 윤리가 기하급수적인 속도로 바뀌는 시대라는 뜻이다.”(19쪽)
지은이는 도발적으로 전문윤리학자가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옳고 그름에 대해, 또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는 그 질문에 답하기가 얼마나 곤혹스러운지에 대해 불쾌감을 느낀다면 목적이 달성된 셈이라고 말한다.
무엇이 옳은 가에 관한 대답
극단적으로 양극화되고 스스로 확실하다고 여기는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그것은 더 겸손한 태도와 덜 비난하는 자세, 그리고 후손들이 지금 우리의 행위는 놓고 야만적으로 여기리란 사실에 대한 깨달음이다.
이 책은 7장 체제로 구성됐다. 1장에서는 인간의 재설계를, 2장에서는 기술이 윤리를 바꾸는 것, 3장 어제의 세계는 지금도, 4장 SNS 속 무제한 자유, 5장 지금의 사회구조시스템이 각각 옳은 것인가를 하는 물음을 던지고 있다. 그리고 6장 당신의 옮음은 모두 틀렸다고, 하며, 7장 그래서…. 결론은?
지은이의 무서운 상상과 질문들, 인간을 다시 설계하는 것이 옳은가?
동성애를 치료하거나 유도할 수 있다면 꼭 그렇게 해야 할까?, 이른바 성적지향을 안전하게 바꾸는 방법을 우리는 정말 개발해야 하는 걸까?, 마치 소설 속에 나오는 복제인간이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는 순간, 이미 복제가 아니라 독립된 인격체다. 이런 인공지능 로봇은 인간일까, 로봇일까 하는 딜레마에 빠져드는 순간 소설의 결론은 로봇, 더는 누군가를 복제하고 그 인간을 대신하지 못하게 하고, 다만 인간의 편의를 위한 보편적인 서비스가 가능한 로봇만 만들라고…. 이 역시 기술이다. 소름 끼치게도 소설을 쓴 작가가 이 책을 본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말이다.
자, 그렇다면 동성애 성향의 원인을 유전자에서 찾아낸다면 성 소수자의 인권 수준을 높이거나 그들에게 찍힌 낙인도 없앨 수 있다. 대신에 유전자에 대한 개입 혹은 치료라는 수단이 등장할 수도 있는 것처럼.
기술이 윤리를 바꾸는 것은 옳은가?
SNS, 거짓말, 가짜뉴스라는 대목을 보자(130쪽). 예전에는 우리가 무엇은 이렇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는 저렇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랬다가 다시 이도 저도 아닌 제삼의 사실을 발견했다. 그렇다면 오늘의 진리가 내일은 죽은 진리가 된다. 과거에는 원자보다 더 작은 건 없었다고 믿었다. 과학이란 분야엔 X가 진실임을 뒷받침하는 논리적 근거와 증명 자료가 있다. 뭐 트럼프가 토해내는 거짓말과 가짜뉴스와는 격이 다르다. 모든 정치인은 거짓말을 한다는 오랜 믿음 때문에 트럼프가 하는 거짓말이 윤리적으로 잘못됨을 알면서도 그저 그러려니 정치인이니까 하고 넘어간다. 나치 선전가 괴벨스의 유명한 말, 거짓말도 백번을 반복하면 진실이 된다고….
진실은 사라지고 분열된 세상에서 상식은 땅에 묻힌다. 비윤리적인 거짓말 체계는 어떻게 해서 지금까지 살아남았을까?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는 기술들과 연관이 있다. 또 하나의 함정은 듣고 싶은 이야기,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데 급급하고, 다른 이들이 우리를 표적으로 삼아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공동체는 갈기갈기 찢어진다.
우리가 정보에 빨리 접근할 수 있고, 교차확인 능력이 한층 향상된다면 터무니없는 가짜 지식이나 뉴스는 엄청난 압박을 받을 것이다. 기술의 이면성이다.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거짓도 진실도…. 분기 선상에 있는 것이 기술이란 점을 거듭 확인할 필요가 있다.
지금의 사회구조 시스템은 옳은가?
지은이가 예로 드는 사례 중 민간, 민영 교도소의 현상을 한번 보자. 한국에서도 한두 개의 민영 교도소가 시범운영 단계에 있다. 자, 그러면 미국의 교도소는 기업인가? 시민을 가두어야만 돈을 버는 비즈니스라는 말이다. 공공재가 말이다. 미국에서의 범죄율은 줄어들고 있는데, 오히려 사람들은 더 많이 투옥되고 있다.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다. 형사사법 시스템의 변화와도 맞물려 있다. 감형 없는 판결, 보석 없는 무기징역, 판사의 재량권을 존중하는 미국에서 이런 변화가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다. 이를 숫자로 환산하면 헷갈린다. 어느 정도 사람이 교도소에 있을까, 미국 성인의 절반은 가족 중 1명이 교도소에 있다면 그 정도 규모인지 짐작할 것이다.
당신의 옳음은 모두 틀렸다
자, 자율주행 자동차 제4차 산업혁명의 키워드의 하나다. 핵심은 어떻게 하면 완벽하게 안전하게 만들까가 아니라 실제로 도로에 이 자동차를 내놓으려면 얼마나 기다려야 할까, 완벽하고 안전한 상태까지 도달하려면, 뭐 영원히 기다려야 하지 않을까 싶다. 2배, 5배, 10배 안전하면 괜찮다는 것일까?, 대답은 틀렸다. 자율주행 자동차의 도입 여부는 윤리적인 결정이 될 수 있다. 허용오차를 어느 정도까지 감내해야 하는 걸까?, 그렇다고 사고로부터 자율주행 자동차가 우리 생명을 지켜줄 수 있을까, 윤리학자들은 이런 근본적 시스템 안전성이란 핵심문제보다는 엉뚱하게도 극단적인 경우에 초점을 맞춘다. 어느 정도까지 현대기술의 한계로 인정할 것인가?, 결국에는 자동차사고로 사람이 죽는다는 현상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을 것이다. 대상화된 수천 명보다 내가 아는 한 사람의 교통사고 죽음이 더 크게 다가오는 법이다.
이 책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궁극적인 질문을 해라. 그리고 너의 머리로 생각하라 오만 가지 상상을, 지혜를 동원해서” 현대사회는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삶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보는 눈이 그저 흐리멍덩해진 것이다. 정치가 내 목만 아니라 내 이웃의 목을 조일 때,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나만 살아남으면 괜찮을까, 모두 죽는다면…. 허무맹랑한 생각이라고 비웃음을 당하던 생각들이 지금 바로 이 순간 우리에게 필요한 사유요. 사고법이다.
이 책을 읽다 보니, 아, 이렇게 질문을 하고, 스스로 답을 얻고, 그 답을 의심하고 또 질문하고, 이런 과정을 계속하다 보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