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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친해지는 삶 - 심층심리학습소설
한석훈 지음 / 이분의일 / 2021년 4월
평점 :
죽음과 어떻게 친해지는가?,
심리학의 세계에서 말하는 것들은 무엇이지?,
죽음과 친해지는 삶
지은이 한석훈은 심층심리학을 바탕으로 ‘죽음’과 ‘삶’에 관한 심리학의 제 파의 이론과 논의를 소설형식으로 녹여낸 아주 독특한 글쓰기, 부제로 ‘심층 심리학습소설’이라 명명했다.
줄거리만 놓고 보면 ‘바람둥이 길들이기’를 바탕에 깔고 있는데, 여느 책처럼 딱딱한 철학, 심리학의 이야기를 풀어내면 내용이 너무 무겁지 않을까, 아울러 나와는 다른 세계의 이야기, 일반적으로 그러하더라는 이른바 ‘거리감’, 무장해제를 염두에 둔 듯하다.
죽음과 삶이란 화두에 천착하는 이들, 그리고 보통 생각하는 죽음과 삶의 경계선, 이 둘은 따로국밥이다. 그렇지 않다. 본디 하나로 명암의 정도에 따라 삶이 지배적이거나 죽음이 짙어지는 장면이 드러나기에 죽음과 삶은 순차적으로 찾아오는 경로다. 애초부터 국물에 밥이 들어있고, 국물을 떠먹다 보면 밥이 많아진다. 따로국밥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뭐 이렇게 보자면 아무튼 죽음과 삶은 동시이행이지만, 인식의 차이와 농도에 따라 삶에서 죽음으로….
다양한 경험을 가진 이들이 보는 죽음과 삶
이 책의 등장인물 난봉꾼을 자처, 사랑에 허기진 자수성가 사업가 유희운, 그가 작업을 해보려 했던 진아 교육연구소의 성경애, 은퇴한 철학자 허평구, 건강한 아줌마 대표 강은희, 박수무당이자 정신분석학자 정우현 등이 엮어내는 재미난 대화들, 이 가운데 삶과 죽음 그리고 인간의 본성에 관련된 많은 것들이 담겨있다.
주제는 절대로 가볍지만은 않다. ‘자발적 안락사’의 논쟁도 촉발될 것이며, 무의식의 세계에 관한 이야기들 이름만 대도 꽤 세계적으로 유명한 심리학자들과 그들의 저서가 등장한다.
깊은 차원에서 지성과 상스러움이 공존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듯 보이지만, 그 너머에 있는 뭔가를 찾으려는 노력, 지킬과 하이드처럼 공존하는 양면성, 인간 내면의 이런 모순성을 보여주고 있다. 나를 안다는 게 가능한가, 내가 자리한 사회, 그 안에서 내 지위와 성공, 남들보다 상대적으로 뛰어난 머리(?), 조금 지나치게 말하면 자신의 과신하는 이들, 그 바탕에 깔린 불안, 신경증, 나와 내 안에 존재하는 또 다른 나와(진짜 나) 소통되는 것, 하는 것이 어른이다. 나이를 많이 먹었다고 성인은 아니란 말이다.
아름답게 죽는다는 것, 삶의 끝이 죽음인지, 죽음의 끝이 삶인지, 누가 알겠는가?
유대인의 생사관은 죽음과 삶을 한 쌍으로 본다. 밝음과 어둠의 대비가 아니라, 늘 함께, 그러다 죽음이 찾아오면 그렇게 가는 게 순리라 생각한다(델핀 오르빌뢰르<당신이 살았던 날들>,북하우스,2022). 이 소설에서는 조심스레 이야기를 풀어내지만, 자발적 안락사라는 주제에 눈길이 간다. 예전에 생각했던 인간의 삶 즉, 생물적인 삶과 죽음은 장수, 무병장수였다. 별 감흥도 없이 그저 그런 상용구 정도였는데, 의학 기술이 발달한 현대에 이르러서는 무병장수가 곧 건강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라고, 보통 60세에 정년(이 정년의 프레임, 이것은 논쟁의 여지가 많다. 왜 정년이 필요한지, 그 의미는 무엇인지, 평균수명 연장과 가난한 노인 등) 이후 늘어난 평균수명 사이의 시간, 건강하게 지내야 하는데, 80세이든 90세이든 병상에서 20년을 지낸다면 이는 건강한 삶이 아니다.
이런 사회적 상황에서 나온, 자발적 안락사, 몇 해 전 90세가 넘은 의사 선생께서 내가 정신줄을 놓아버리면 늙은 아내, 그리고 기력이 쇠잔하여 침상에서 대소변을 받아내는 건, 참 못 할 짓이라며, 곡기를 끊고 스스로 자기 죽음을 결정했다. 사안이 사안인지라 누구도 옳다 그르다고 말할 수 없어, 그저 결정을 존중했다. 이런 죽음이 터부시되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논의를 해야 할 시기가 아닌가 싶다.
죽음과 삶을 이야기하면서 종횡무진 이리저리 마구 달려 다닌다. 상상의 나래를 펴면서, 독백처럼 말풍선을 글로 써놓은 대목들, 이런 형식을 뭐라 해야 하나, 상스러운 표현들이지만, 이거 다들 입 밖으로 내지는 않지만, 속으로 떠올리는 것들 아닌가,
아무튼 묘한 재미가 있는 소설형식을 빌려, 죽음과 삶을 말하는 그리고 자발적 안락사, 즉 죽음의 자기결정권에 관한 생각들을 풀어놓은, 가벼운 듯, 무거운 듯, 재미가 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이 깊은 여운으로….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