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기갈기 찢겨나간 한국의 근현대사, 오늘도 묵묵히 그날의 참상을 소리 없이 전한다….
이 책<상처는 언젠가 말을 한다.>는 동생의 죽음을 계기로 인권운동가의 험난한 여정을 시작했던 박래군 선생의 두 번째 한국 현대사 인권 기행기다. 여기에 실린 사건은 동학농민혁명의 현장을 비롯하여 19세기 천주교 병인박해 순교성지와 백정도 인간이라는 형평사 운동의 거점 진주, 골로 간 사람들, 전쟁은 군인들보다 민간인들의 피해가 더 컸다. 밤이면 인민해방군이 낮이면 국방군들이 찾아오는 마을, 청천벽력처럼 군인들이 쏜 총탄에 이유도 없이 죽어갔던 거창 양민학살, 여수와 순천, 구례 사람들, 현대사 고도경제 성장의 그늘에 말살됐던 인권, 형제복지원과 선감학원의 옛터는 당시의 심란한 삶을 살았던 이들의 피해현장이다. 영자, 아키코, 나타샤로 불렸던 일제강점기, 광복과 함께 찾아온 미국 세상, 순자의 동두천 미군 기지촌, 시대의 아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높이 솟아오른 아파트 군락 밑에 짓밟혔던 광주대단지와 용산참사, 70년 근로기준법을 지키라며 분신 산화했던 고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
역사적 사건 하나하나가 떼어내어 소설을 써도 수십 권이 될 듯하다.
박래군 선생이 발품을 팔아 한 곳 한 곳 찾아, 오늘을 통해 보이는 그날의 이야기로 인걸은 온데간데없고, 잡풀만 무성한 골을….
근대의 기점, 인권이라는 개념의 시작 인내천의 동학,
동학혁명을 미완이라 하고, 왕조를 인정했다는 이유로 전근대적인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평가, 옳고 그름을 떠나,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였을까, 프랑스혁명처럼 100년을 싸워오지도 않았고, 외세의 총칼 아래 무너져 내렸던 이들에게 왕조를 인정했기에 전근대적이라는 말은 형식논리다. 하늘이 백성이요. 하늘을 섬기는 마음으로 백성과 함께하는 소강정치(모두가 가족처럼)의 연장선에서 보면 그러하고, 동학의 지도부가 유학을 젖었던 양반계층이었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하지만, 녹두장군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후에도 청포장수(배상옥)의 장흥석대들 전투가 동학농민혁명을 꺼져가는 불씨를 살리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는 사실을 아는 이가 얼마나 될까?, 일본군의 탄압을 피해 전남 신안, 완도, 진도 등지로 숨어든 이들 동학도는 개항 이후, 개항장 목포에 들어온 남가주장로회의 선교사들과 쉽게 이어졌다. 인내천사상을 이해했던 터라….
양민학살의 흔적들
거창 양민학살 이후, 여순항쟁의 학살피해자들이 70여 년 만에 무죄판결을 받았다. 국방군의 조직적인 학살이었고, 이들은 무구한 양민이었을 뿐, 그 어느 것도 아니다. 골짜기로 끌려갔던 사람 중 살아서 돌아온 이들은 있었을까?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던 세월 동안은 아무도 없었다. 이제 증언이 하나둘씩 나온다. 역사에 비밀이라는 게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누군가 목격자는 있다. 대전교도소 터에 묻힌 사람들….
인신매매 국가 대한민국
인간의 몸을 착취할 수 있는 거대 시장을 만들고 유지하면서 사회발전을 꾀했던 국가가 인신매매 국가다. 신안 염전노예사건이 그러하듯, 미국으로부터 신안 소금을 노예노동을 통해 얻은 불공정한 생산품 소금을 수입 제재하겠다는 말까지 나온 바 있다. 바로 2021년 겨울에….
양지마을 “육지 위의 노예섬”
1998년 7월 복지원을 탈출한 남자, 충남 연기군 전의면 양지마을, 쇠창살이 촘촘히 들어선 안쪽에서 나, 납치돼서 끌려온 지 10년 됐소라고. 이 양지마을의 권력자 사회복지법인 천성원의 이사장…. 경찰과 공무원들과 한통속으로 술 먹고 역전 벤치에서 자다가 끌려온 이들, 강제노역 당하고 풀어달라고 하면 거침없이 날아드는 주먹, 300여 명을 잡아다 놓고 사회복지법인 보조금을 받고, 이들을 강제노역시키는…. 인권탄압의 최전선
형제복지원 사건
원생 186명에게 기합을 주고 있는 것을 발견한 검사 김용원이 목격하면서, 세상에 알려진 사건, 국가는 사회복지라는 이름을 단 시설에서 고통을 당한 이들, 그리고 죽어간 이들에 대해서 어떤 책임을 질 수 있을까?, 양지마을, 형제복지원은 빙산의 일각, 전국에 흩어져 있는 복지원의 통상적인 모습이었다. 역 맞이방에서 술에 취해 자고 있거나 노숙자 등 마구잡이로 잡아들여 시설로 보냈다. 경찰관이 인권탄압에 첨병이 돼서,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이른바 부랑자, 양아치, 노숙자 등 사회질서위반 사범 청소, 소탕이다.
선감학원
1942년부터 1982년 40년 동안 시화방조제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선감도로 배를 타고 들어온 소년들, 일제가 만든 부랑 소년들의 수용소가 그때까지 여전히 유지됐다. 이곳을 탈출하려 바다에 뛰어들어 익사한 아이들의 무덤이 낮은 산에 있다.
한국에서 사회복지시설이 격리와 수용을 지향하는 성격을 갖게 만든, 양지마을, 형제복지원, 선감학원이 이런 사회복지시설의 원형인 셈이다.
이 땅 곳곳에 아직도 아물지 못한 상처들이 용기 내, 입을 열도록, 소리쳐 말을 하도록
세계 경제 11위 국, OECD 클럽의 회원국, 이미 선진국대열에 어깨를 나란히 한 대한민국의 성 가치인식 세계 156개국 102위, 인권의식도는 저 밑바닥, 혐오와 차별의 세계적인 국가
우리가 살아가는 대한민국, 요즘은 이런 소리가 자주 들리지 않지만 “헬조선”이다. 인간을 수단으로 이용하고, 납치해서 죽이고 하는 뉴스를 보면서 분노를 공분했던 우리가 정작 주변에서 벌어지는 뉴스에 나오지 않은 인권탄압과 침해에는 무덤덤한 것인가? 참으로 이상타….
끊임없이 지침없이 활동하시는 박래군 선생의 건승을 기원한다.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