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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그 너머 - 우리의 정치 미래를 상상하다
지지 파파차리시 지음, 이상원 옮김 / 뜰book / 2022년 2월
평점 :
민주주의 그 너머
민주주의는 우리가 걸어가는 여정의 종착점이 아니다. ‘기술’은 그 너머 더 먼 곳으로 보내줄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전제다. 민주주의와 그 너머에 대해 생각하며, 모든 상황에서 기술이 담당할 다양한 역할을 그려보려 하는 것이 이 책이 지향하는 바다.
이 책은 5장으로 구성됐고, 1장은 만약에 이렇다면? 이라는 전제에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2장은 도망 다니는 민주주의 다가서면 저만치 멀리 달아나 버리는 민주주의, 침묵과 소음, 익숙함과 모호함 평등, 발언권, 회의론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3장, 시민이 된다는 것?, 4장 새로운 무언가를 향해, 그리고 5장 민주주의 이전, 열 가지 제안과 민주주의 이후, 즉, 결론이 여기에 있다.
민주주의,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역사 속에서 손만 뻗으면 닿을 듯했던 ‘민주주의’는 신기루처럼 다가가면 사라지고 만다. 민주주의는 영원히 우리 시선 바깥에 존재하는 것을 느끼고 있다. 난민촌이든 시리아, 리비아, 파키스탄, 이집트이든 또 미국, 영국, 독일, 브라질이건 심지어는 중국이나 러시아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들이 모두 유사하다는 것이다.
생각하라. 거꾸로 보라. 높은 곳과 낮은 곳을 모두 훑어라.
알고 있는 것을 잊어라
믿고 있는 것을 다시 생각하라
들어라, 배우기 위해 다시 상상하라 (머리말에서)
민주주의란 무엇입니까?,
시민이 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요?
더 나은 민주주의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요?
도망 다니는 민주주의, 지은이는 세계의 많은 이들을 만나 ‘민주주의’ ‘시민권’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여러 현상이 목격됐다. 첫 번째는 침묵이었다. 말을 하고 싶었지만, 어떻게 말할지 몰랐다. 그리고 두 번째, 민주주의에 대한 익숙한 정의(고정, 관성)가 나오고 그 모호성이 지적됐다. 익숙함과 모호함은 인터뷰자들이 민주주의가 어떤 형태여야 하는지를 이해하고 있으나, 구체적인 형태에 대해서 모른다는 말이다. 세 번째, 평등, 대부분은 복잡한 개념으로 이해하며, 선거권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 너머에 뭔가가 있다는 말이다. 네 번째 발언권, 평등과 발언권은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얻기 어려울 것이라는 회의론이 나왔다. 결국 민주주의를 정의하려는 대화는 침묵에서 익숙함과 모호함을 거쳐, 평등, 발언권, 회의론으로 흘러간 것이다.
시민이 된다는 것
지은이가 세계를 돌아다니며 들었던 시민권에 관한 생각은 서로를 연결, 협력, 대화하고자 하는 몸짓에 의존한다. 그는 정치인들은 유권자와 직접적인 접촉을 피할수록 대중의 관심이 줄어든다는 점과 시민들은 저마다 튼튼한 의견을 지니고 있지만, 의견을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데서 점점 지쳐갔다고 한다. 존 듀이는 훌륭한 시민들 만드는 데 커뮤니케이션과 저널리즘이 중요한 역할을 맡을 수 있다고 기대했지만, 현대 미디어가 제공하는 정보의 질은 시민권으로 가는 길에 가장 큰 장애물이라고 봤다. 존 듀이가 활동하던 1930~50년대까지는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요즘 미디어를 제5 권력이라고까지 하지 않는가, ‘개소리’를 해대는 공공재라고, 아무튼 이 대목은 대의민주주의의 왜곡이나 위기를 말하는 것으로 들린다. 시민들과의 대화에서 자신이 뽑은 공직자를 환호하거나 찬양하는 시민은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열 가지 제안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침묵과 소음, 익숙함과 모호함, 평등, 발언권, 회의론, 시민이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더 나은 민주주의를 만들어 준다는 것은 무엇인가? 늘상 화두가 되는 포퓰리즘, 부패와 교육 문제들…. 지은이는 민주주의 그 너머에 있는 뭔가를 찾기 위해서는 열 가지 일을 해보자고 제안한다.
1) 트렌드 뒤집기: 부드러운 자본주의와 강력한 민주주의
2) 미시적 통치: 풀뿌리, 작은 커뮤니티, 미시적 공동체에서 하나씩 둘씩 다시 챙겨보기
3) 투표하지 않는 이들을 고려하기: 시민이 된다는 것은 투표와 쓰레기 재활용 이상이어야 한다고…. 불참이 무관심한 것은 아니라고, 대안이 없어서 그런 거라고, 투표행위가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믿음이 없기에 거부하는 것이다.
4) 장기정책과 단기정책: 임기 동안에, 사실은 미완의 프로젝트만 남겨놓고 또다시 원점에서 시작하는 일들이 없애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장, 단기의 구분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5) 투표를 넘어서기: 투표권의 의미, 시민적 참여의 최종 직전의 단계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시민참여를 공식적으로 선언하는 지점으로 봐야 한다.
6) 모두를 위한 시민교육, 7) 메시아 잊어버리기, 8) 역이용하기: 뉴스미디어, 머리기사 그리고 주목 경제, 9) 저널리즘 재창조, 10) 스스로 변화를 일으키는 시민 되기
민주주의를 우리의 목표가 아니라 더 나은 상태로 나아가기 위한 전환 단계라고 봐야 한다. 민주주의가 존재하지 않은 곳에 그것을 만들려는 혁명을 위해 우리는 환호와 지지를 보냈다. 민주주의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지 고정된 박제가 아니다. 그런 민주주의는 이미 박물관에나 들어가 있어야 한다.
지은이는 민주주의의 실천 내지 행동 방식으로 기술을 이용하자고 한다. 트위터가 됐건, SNS가 됐건, 자주 자신의 의견을 내놓고 말하자고 해야 한다고, 정치인들이 귀를 기울일 수 있도록….
이 책에 실린 내용은 상당히 여러 가지 것들을 보여준다. 지은이는 세계, 각 지역에 사는 이들과의 인터뷰에서 사는 곳, 종교, 문화가 다르면 민주주의에 관한 관념과 이해방식이 다를 수 있다는 가설을 세웠다. 하지만, 지구촌 사람들은 그러지 않더라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즉, 보편적이라는 것이다. 누가 누구 위에 존재하고, 그들의 말을 들어주고, 협력하고, 함께 문제를 풀고, 장해를 헤쳐나가기를 인류라는 종은 집단적일 수밖에 없음을 확인하는 대목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열 가지 제안은 당연한 듯 보이지만, 지금껏 제대로 해오지 못했던 일들을 확인시켜주고 있다는 점에서 또한 보편적이다. 쉽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정치에 식상에 하는 이들, 선거에 불참하는 이들은 정치에 무관심해서일까? 천만에 인간은 본디 무리생활을 하기에 자신들의 의견이 반영되고, 이를 바탕으로 뭔가가 이뤄졌을 때, 신명 나게 그 일에 기꺼이 참여하고 열심이다. 그런데 벽에 대고 이야기하는 듯한 고립감을 조장하고 또 그렇게 만들어가는 것이 미디어다. 시민 모니터링 등 다양한 이야기는 주민자치회로 대의민주주의에 환멸을 느낀 이들이 미시통치라는 틀로 생각하는 것이 바로 주민자치회의 모양새다. 이렇게 하나둘씩 장애물을 걷어낸다면 길을 새로 열릴 듯하다.
<출판사에서 책을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