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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헤어웨어 이야기 - 신화에서 대중문화까지
원종훈.김영휴 지음 / 아마존북스 / 2022년 1월
평점 :
헤어스타일에 관한 관성의 법칙- 짧게 자른 머리는 페미니스트?
베이징 올림픽 양궁의 금메달리스트 ‘안산’ 선수가 페미니스트라는 듭보잡이 한동안 인터넷을 떠돌았다. 머리카락을 짧게 깎으면 페미니스트라는 등식은 어디서 생긴 것인가.
이 책이 그때 나왔더라면 좋았을 것을. 마음으로 책을 열었다. 책머리를 읽자 갑자기 ‘미학’론? 이라 여길 만큼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지은이들이 말하는 헤어웨어의 기원은 조선의 전통 복식과 한옥이라고 했다. 좀 더 들어보자. 전통 복식에 가체, 가체는 화미의 속뜻처럼 환하게 빛나며 곱고 아름다운, 그러면서 부피감을 지닌 결정체, 현대의 시선에 비친 가체는 머리 공간을 띄워 풍성한 풍성함을 살린 심미적 스타일이라…. 꽤 설득력 있는 말이다.
몸에 난 털 중 머리카락과 수염에 관한 의미는 제각각 다르다. 신비주의인가
이 책 제목을 보는 순간 얼마 전에 읽었던 크리스토퍼 올드스톤 모어의 <수염과 남자에 관하여>-남자 얼굴 위에서 펼쳐진 투쟁의 역사-(사일런스북, 2019)와 뇌리에 떠올랐다. 수염을 기른 예수와 그렇지 않은 예수의 구별, 죽음에서 부활한 예수는 턱수염을 기르고 살아생전의 예수는 수염을 기르지 않았다는 것, 참으로 재미난 해석이었다.
가발-가체-헤어스타일-헤어웨어로 바뀌어나가는 것은 이름의 변화만이 아닌 상징의 변화다.
이 책은 머리카락에 관한 역사 이야기다. 그리스·로마 신화로 대표되는 서양 신화와 중국, 인도, 한국 등을 아우르는 동양의 신화. 이렇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을 보면서 기발한 착상이라는 생각, 감탄을 멈출 수 없었다. 읽는 동안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43개나 되는 에피소드를 줄곧 메모하면서 읽었다. 무슨 시험공부를 하듯 말이다.
또렷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마도 조정래 선생의 <한강>에서 70년대 풍경을 묘사한 대목이 나온 듯하다. 시골로 돌아다니면서 아낙네들을 꾀어서 신식 파마(이른바 닭뼈딱 파마)시켜주고 돈도 드릴 터이니라며, 긴 머리카락을 싹둑…. 그때 가발공장은 잘도 돌아갔던 모양이다. 미국으로 어디로 수출이, 불티나게 팔리던 가발들, 거기에는 근대화 물결의 여파가 우리 농촌사회까지 퍼져 들어갈 무렵이었다.
이 책은 아름다움이 어쩌고 저쩌고로 시작하여 그 가운데 머리카락이 장단과 색깔의 의미를 설명하면서 말문을 열고, 머리카락을 향한 인간의 욕망은 미래에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답은 오래된 과거에 존재해왔다. 머리카락은 인류의 의복이다. 헤어웨이는 보편적인 패션 장르로 존재할 것이라는 말로 끝을 맺는다.
목차를 보면서, 예전부터 가졌던 의문들 뭐 진짜 알고 싶었다면 네이버든 구박사(구글)든 뒤져서라도 알아보려 했겠지만, 게을러터져서 그 순간이 지나면 또 잊고 산다.
아무튼, 일본에서는 왜 어린아이 머리를 쓰다듬으면 안 되지라는 단순한 의문, 우리 사회에서는 착하다고 머리를 쓰다듬는데, 그것도 칭찬으로 의미로…. 이 책을 읽는 순간, 아하…. 라는 탄성이 머리에는 자존과 영혼이 들어있다. 일본에서는 그걸 함부로 건드리는 게 아니라는 인식이 있지만, 한국 사회는 윗사람의 특권, 뭔가를 주거나 내릴 수 있는 위치라는 의미로 머리에 손을 댄다. 참 어설프지만, 그런 의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목차대로 훑어가는 게 아니라 흥미대로 골라내서 적어두련다.
머리카락으로 풀어내는 인문학, 미학, 초월적 존재에 관한 이야기들- 헤어웨어-
머리 모양새가 의미하는 것
머리카락의 길고 짧음과 금발, 흑발, 적발(빨간 머리), 적갈색발 등 색깔에 관한 의미, 머리카락을 다듬는 모양새, 변발, 일본의 사무라이식이 좃마게(일명 일본식 상투), 조선 시대의 부모님이 물려준 것들에 대한 훼손 금지 머리카락을 길러 상투를 트는 것들, 켈트족의 장발족, 단발족, 아메리카 선주민 모호크 용맹한 전사 스타일(닭 볏 모양의), 참으로 읽고 보니 다양한 의미와 상징들이…. 우리의 유아 삭발은 동북아시아의 전통?,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온다. 쉴 새 없이, 여성의 긴 머리의 의미는 무엇일까, 점차로 궁금해진다. 중국 전설에서 만난 머리카락은 신비로움과 유혹과 구원 이들의 혼합과 양면성은 혼란스러운 나머지 다음 장면을 예측할 수 없는 긴장감을….
평소 알고 싶었던 내용인데 이 책에서는 아주 뒤쪽에 실려있다. 영국의 법정은 왜 모두 흰색가발을 둘러쓰고 있지, 판사, 검사, 변호사 모두, 으응 그중에 칙선변호사는 또 복색이 다르고, 판사들은 왜 오래돼 낡은 가발을 선호하는가, 이 모든 것이 권위와 경륜의 표시라니, 그리고 가발을 쓴 이유가 참으로 기가 막힌다. 이들이 쓰는 가발은 말총으로 만든다. 마치 조선 시대 양반들이 쓰던 갓처럼, 이 가발을 쓰는 이유는 나이와 성, 그리고 인종상의 차이를 드러내지 않고, 법 앞의 평등을 실현한다는 의미에서라고 한다.
요즘 넷플릭스에서 방영하는 <빨간머리 앤> 주인공 앤의 헤어스타일은 피그테일이다. 일명 돼지 꼬리라는 뜻인데, 이 어원이 재밌다. 17세기 아메리카 선주민들이 즐기던 기호식품 담배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담배를 꼬아놓은 모습이 돼지 꼬리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양 갈래 혹은 세 갈래로 땋은 머리로 나뉜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머리카락 색깔은?
금빛 머리카락을 최고로 치는 유럽, 실제로 줄리엣의 머리카락이 금발인지 흑발인지는 누구도 모른다. 그런데 금발이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하는데, ‘미인=금발’이라는 상징성 때문인가?
혁명의 승리를 위하여
시끌시끌했던 17세기 영국, 귀족 중심의 기사당과 평민 중심의 원두당, 여기에서도 머리카락 즉 헤어스타일로 구분한다. 기사당은 길게 내려오는 고수머리 형태의 가발을 썼다. 원두당은 기사당에 맞서는 상징으로 머리를 짧게 잘랐다. 즉, 단발 스타일이다. 이렇게 보면 ‘안산’ 선수는 기득권에 대항하는 신세대를 상징하는 단발 아닌가?
로마제국, 귀족의 품격과 주술사이에서
로마제국, 게르만 금색으로 가발을 만들다. 금발, 흑발, 적발의 가발도….
로마인들은 염색 가발을 쓰고 다녔는데 귀족의 품격을 나타내고 유지하는 것이 큰 이유였다. 머리숱이 작은 것을 수치로 여겨 이를 가리기 위해 가발을 썼다.
로마인들에게 머리카락은 또 다른 의미를 지녔다. 로마제국의 침공을 받은 갈리아(프랑스-알프스내륙) 지방의 골족(켈트족의 일부)은 머리카락을 잘리게 될 것을 짐작 미리 목숨을 끊었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이야기>에 긴 머리의 갈리아인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켈트족의 머리카락 의미와 유사하다. 로마인에게 신분과 아름다움을 실현하는 세계가 머리카락이다. 전쟁의 승리자가 되어 주술의 힘을 소유하여 신성함을 얻는 것이다. 이로써 머리카락은 신분과 아름다움 그리고 주술의 표시다.
머리카락은 켈트족의 집단 무의식 속에 담긴 개인의 명예를 상징하는 신체였을 뿐만 아니라 인류문화의 터부였기에, 머리카락의 명예나 신성은 켈트족 이외에서도 볼 수 있다. 위 일본 예처럼 말이다.
톤슈라, 중세 수도사들의 머리 모양
삭발례(톤슈라), 수도사들은 세속과 신의 세계, 수도사가 되기 전과 후를 구별하는 경계선이다. 정수리 머리 모양은 원형과 십자가를 띤다. 십자가는 신과 기독교, 그 자체의 상징, 원형은 그리스도가 스스로 죽음을 향하던 최후의 순간에 쓴 가시관이다.
이집트의 파라오, 메네스(가발)는 왜…. 고대이집트인들이 숨긴 비밀의 코드
이집트에서 생겨난 가발은 자연환경 때문이다. 덥고 습한 기후로 머리카락을 길 수 없어 짧게 자르고, 거기에 가발로 장식을 했다. 가발 역시 계급의 상징물로서 작용했다.
아메넘하트 3세가 머리에 두른 네메스의 정체는 일종의 가발이다. 고대이집트인들의 가발 재료는 인모, 양모, 식물의 섬유질 3가지 종류였다. 계급별로 사용되는 재료가 달랐다. 가발은 심미적인 효과도 컸다. 장식은 곧 아름다움의 표현이었다. 아메넘하트 3세는 가발과 머리 장식을 통해 자신이 고대이집트 제12왕조의 파라오이자 신성을 부여받은 전능한 존재임을 과시한 것이다.
인모에 황금색을 칠한 뒤에 꽃 모양의 금장식으로 꾸몄다. 그 위에 쓴 왕관에는 대머리수리 모양이 장식된 것과 독사 모양이 장식된 것이 있었다. 대머리수리는 왕을 보호하는 신, 독사는 왕의 권력을 상징한다. 이 네메스를 머리에 쓰고 다닌다.
몽골 설화, 새 머리 모양의 기원
결혼한 몽골 여성의 머리 모양, 구부러진 반원의 커다란 날개 모양으로 머리 양쪽에 고정하는 장식물(떼르구르우스)을 한 여성은 독수리처럼 큰 새가 날개를 반쯤 접고 있는 머리 모양으로 변신한다. 왜 하필 새의 날개 모양일까?, 비밀은 항가리드라는 큰 매로 반인반수로 보통은 왕을 뜻하며, 몽골 땅을 창조한 새 중의 왕, 항가리드는 가루다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머리카락에 얽힌 이야기는 끝이 없다. 지리적 위치나 문화, 역사적 시기 등과는 관계없이, 인간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욕망이 자리하며, 때로는 신성, 주술이, 성서, 삼손과 압살롬에서 나오는 것처럼, 삼손의 머리카락은 신이 내려준 힘의 근원으로 이는 절대 발설해서는 안 되는 금기였다. 그러나 삼손은 블레셋 여인 데릴라에게 속아 머리카락을 잘린 채 처참한 몰골로 죽는다. 삼손의 머리카락은 아름다운 육체의 향연이자 신과 맺은 맹세였다. 그 육체는 강인한 힘이다. 한편, 악마의 속임수가 가발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라푼젤과 악마의 황금 머리카락 세 개, 그림 형제에 나오는 라푼젤(독일어로 양상추)의 긴 머리에서 유래하는 ‘라푼젤 증후군’ 어린 시절 심리적 불안 요인으로 머리카락에 강박적 집착을 해 삼키는 이상 증상, 라푼젤의 긴 금발 머리는 남성에게는 유혹과 매혹의 도구였다.
수염과 머리카락에 이어 다음은 어떠한 이야기가 등장할지 기대된다.
<출판사에서 책을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