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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술사 - 므네모스의 책장
임다미 지음 / 팩토리나인 / 2022년 2월
평점 :
힘들고 견디기 어려운 기억은 지워버려야 하나? 아니면 극복해 나가야 하나?
이 소설<기억술사, 므네모스 책장>은 이를 바라보는 눈이 다른 두 사람, 한 사람은 기억을 지우려 하고, 다른 한 사람은 지워진 기억을 되살리려 한다. 이 이야기의 씨줄은 이들이며, 날줄은 등장인물들의 에피소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기억의 신<므네모시네>, 지하 세계에서 ‘기억의 연못’을 지배하는 여신, 지하로 가는 레테강의 물을 마시면 생전의 기억이 지워지고, 므네모시네 연못을 물을 마시면 전생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여자친구와 벤치에 앉은 주인공 선오, 그의 무릎을 베개 삼아 누운 여자친구 머리를 우연히 머리에 손을 대자, 확~하고 그녀의 기억세계, 즉 기억이 저장해놓은 도서관으로, 일기가 보이고, 이를 읽는 선오, 그녀가 그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게 되어 기분이 좋아지지만, 마지막 또 다른 남자와 데이트를 했다는 기억을 마주한다. 이걸 그녀에게 물어봐야 하나….
참지 못하고 물었다. 나 외에 다른 남자와 데이트했냐고?, 화를 내고 가버린 여자친구, 이렇게 해서 자신이 남의 기억의 장소로 들어갈 수 있음을 알게 된 선오…. 이런 능력, 주술사, 영매, 그다지 달갑지 않아, 대학을 졸업하고 작은 컨설팅회사에 들어가는데…. 여기서 왜곡된 기억들의 세계를 마주하게 된다.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해대는 군상, 이런 것들이 보기 싫어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문을 열게 된 기억치료연구소 므네모스, 선오는 그를 찾는 이들의 기억 도서관 속에 실타래처럼 엉킨 기억을 제자리로 가져다 놓아준다. 기억의 도서관에는 마치 사서처럼 일하는 ‘뭉그리’가 있다. 무의식 속에서 원하는 대로 기억을 지우기도 하는 등의 일을 한다. 아무튼, 선오의 신비한 능력은 소문나고….
희주 기억 속에 자리한 그 ‘무엇’
희주, 대기업에 취직했지만, 그의 직장생활은 경쟁, 뒷담화, 깎아내리기 이른바 약육강식의 정글, 할머니가 돌아가셔도 3일 휴가를 낼 수도 없는 회사 분위기, 자신이 ‘부속품’ 거대한 시스템의 톱니바퀴에 지나지 않음을, 무의식 속에서 이런 힘들고 견디기 어려운 기억들을 지워버리려 의지가, ‘무엇’을 만들어 냈다. 매일 같이 없어지는 기억들, 선오의 소문을 반신반의하면서 므네모스를 찾게 된다. 그녀의 머릿속을 들여다본 본 선오, 뭉그리와는 다른 ‘무엇’의 존재를 발견하고 놀라는데….
희주의 기억은 어렸을 때 기억부터 점차 중학교, 고등학교 순으로 없어져 가는데, 기억을 되찾기 위해, 그리고 더 이상 기억을 잃지 않게 하려고…. 그녀의 초등학교 때 친구 은주와 지금은 검사가 된 첫사랑 태준을 만나 옛날 기억을 찾으려 한다, 희주와 은주 모두 같은 병원의 조선생이라는 정신과 의사에게 치료를 받는다. “힘든 기억을 없애주었으면 한다고”, 은주는 좋은 대학을 나왔지만, 취직이 여의치 않다, 부모는 공무원시험이라도 보라고 한다. 자신 앞에 놓인 힘든 현실 여기서 벗어나고자 한다. 또 한 명 이현수경사, 회계사 출신인 그는 회계사일에는 별반 흥미를 느끼지 못해 3년간 공부해서 경찰에 입문, 강력계 배치되는 데 적응을 못 하던 중(직장 갑질을 당하는 등) 경찰의 무능함을 보여주기 위해 강도 사건을 일으키고, 제대로 된 일자리로 구하지 못해 헤매는 채우진을 용의자로 체포, 사건을 조작하는데….
조 선생은 어두운 기억을 지우는 능력, 선오처럼 기억을 들여다보는 능력을 가졌다. 그는 어릴 적 똑똑했던 사촌형 강동범의 머릿속에 들어가 기억에 손을 대버렸다. 이를 고치기 위해 의사가 됐지만, 그의 형은 여전히 봉쇄된 기억의 벽을 허물지 못하고…. 희주, 은주, 이현수는 모두 조 선생에게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
결국, 선오는 조 선생이 이들의 힘든 과거 기억을 없애버렸음을 눈치채고, 조 선생 또한 선오의 능력을 알아본다. 선오는 조 선생을 찾아가, 왜 기억을 없애려 하는지를 묻는데…. 조 선생이 선오의 머리를 엿보는 순간, 자물쇠에…. 즉, 이제는 더 사람의 기억을 들여다볼 수 없게 됐다. 즉 능력의 봉인이 된 것이다.
소설의 결말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감당하기 어려운 힘든 기억이 없어졌으면 하는 의지발동이 기억을 잃게 하고 틀 속에 갇히게 된다고, 여기서 벗어나는 것은 본인의 의식적 의지 활동 외에는 없다고….
참 재밌는 소설이다. 작가의 이력이 소설 바탕에 깔린 듯, 아니 그런 냄새를 풍긴다. 한때 심리상담가를 꿈꾸다, 변호사가 된 작가는 이제 소설가로,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려 한다. 이 소설은 선과 악의 대결 구도가 아니다. 인간 심리 세계를 소재로 어려운 심리학 용어를 쓰지 않고, 말로 풀어낸다. 자존감이 낮아진 희주, 은아와 이현수는, 불안하고 감당하기 힘든 현실의 기억을 떨쳐내거나 밀어내려는 방어기제, 억압, 부정, 치환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선오는 자신의 기억을 들여다보는데, 아마 이런 것들을 굳이 표현하자면, 정신분석을 했다는 말이기도 하다. 조 선생은 정서불안 등에 관해서 전문용어를 나열하지 않는다. 선오 역시 그러하다.
우리 사회에서 ‘헬조선’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받는 스트레스 자신의 꿈과 희망을 포기해야 하는 시대, 우리는 모두 희주요, 은주이며, 이현수, 강동범이다. 조 선생의 지론대로 견딜 수 없는 현실을 부정하거나 내 안 깊숙한 곳에 봉인해버리거나 덜 위협적인 대상에게 표출하고 있다. 알던 모르든 간에….
하지만, 결국은 모든 것은 나에게로다. 내 의지에 따라서 극복해야 한다. 조 선생은 이를 무책임하다고 비난한다. 잔인하다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현실의 압박 속에서 벗어나도록 해주는 것이…. 어느 말이 옳은지 그른지는 모르겠다. 다만, 내 인생의 나의 것이요. 극복 의지를 다지고 헤쳐나가는 게 자기 인생에 책임을 다하는 거라고…. 조 선생의 사촌형 강동범은 선오에게 치료를 받으러 매주 토요일 그를 찾아온다.
아무튼, 이 소설은 몰입도가 좋다. 순간 훅하고 빠져들 수 있어서 좋다. 우리 사회의 현실에 관한 접근이, 친숙감을 주었을지도, 읽는 동안 힐링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
<출판사에서 책을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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