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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부류의 마지막 존재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민승남 옮김 / 엘리 / 2021년 12월
평점 :
그 부류의 마지막 존재
시대의 바람 1968년... "68운동"
68운동, 1968년 3월 프랑스에서 베트남 참전에 대한 항의로 8명의 청년이 아메리칸 익스프레스파리 지사를 습격, 프랑스 전역에서 대학생 시위와 1000만 노동자 파업으로 번진 반체제 반문화 운동이다. 그해 미국, 독일, 체코슬로바키아, 스페인, 일본 등으로 전염성처럼 퍼져갔다. 또한, 일본은 학생운동연대로 전공투(전국학생 공동투쟁위원회)의 69 도쿄대 야스다 강당사건, 70년 미·일 안보조약 개정을 위해 방미하는 사토 총리의 출국 저지를 위한 하네다공항 점거사태 등, 크고 작은 반체제 운동이 일어났던 시대였다.
68년 미국의 대학 역시 베트남 참전 항의 등으로 학생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됐다. 이 시기에 이 책의 주인공 조지는 로맨스를 찾아, 또 다른 주인공 앤은 세상을 바꾸겠다는 포부를 안고 대학 중퇴하고, 각자의 사고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다. 앤은 인민서점에서 일하며 투사의 삶을 이어가며, 조지가 부르주아적 허영과 사치를 추구하는 잡지사에서 일하는 것을 경멸한다.
이 두 사람은 출신이 다르다. 조지는 알코올중독과 폭력이 일상인 가난한 계층 출신임을 수치스럽게, 앤은 노동자들을 착취하여 부를 축적한 자본가인 부모들을 수치로 여긴다. 이들이 유명 사립여자대학 기숙사 같은 방을 쓰게 된 배경은 앤이 다른 세계출신의 학생과 함께 하고 싶다고 해서이다.
이 소설은 소시민의 삶을 선택한 조지의 회고형식으로 전개되는데, 혁명과 낭만의 60년대를 40년이 지난 후에 그 세월을 더듬어간다. 지은이 시그리드 누네즈 역시 주인공들과 같은 해 대학에 들어갔다. 왜 이 소설인가? 집필 동기에 대해서, 60년대 후반은 너무도 혼란스럽고 이해하기 힘든 이상한 시대였던 그 시대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고…. 백인 중산층 십 대와 이십 대가 주축이 된 히피족, 성공 지향적인 미국 주류 사회의 물질주의적이고 억압적인 가치관에 반기를 들고, 인간성 회복을 외치는 이들의 시대,
백인 경찰관의 강압적 체포과정에서 숨진 흑인들…. 정치폭력에 눈 감아온 미국, 조지 플로이드 사건에 이어 경찰 총격에 사망한 레이샤드 브룩스, 체포나 검문 자체가 빈곤의 악순환을 부른다.
그녀의 혁명전사 활동도 한 사건을 계기로 중단, 교도소로
60년대도 이런 일이 인종차별의 고리는 끊어지지 않는다. 앤의 남자친구가 새로 산 오토바이를 타고, 그녀의 집 안에 이르렀을 때, 백인 경찰 두 명이 콰메를 따라와 검문했다. 이에 항의하는 콰메, 총을 꺼내 그의 머리에 대고 이 깜둥이, 깜둥이, 깜둥이…. 마치 쏠듯한 분위기, 앤은 콰메를 위협하는 경찰 토마스 서전트에게 총을 쐈고, 다른 경찰은 콰메의 등을 쏴서 죽였다.
앤은 서전트가 깜둥이란 말을 한 번도 더 하지 않았어도 죽지 않았을 거라고…. 그리고 콰메의 누나가 한 말. 그 미친 멍청이만 아니었어도 내 동생은 지금 살아 있을 것이다.
재판은 1976년에 끝났다. 25년 종신형(25년 복역 후, 심사하여 종신형까지)을 받을 거라는 소문 속에 재판은 진행됐고, 판사는 앤에게 당신은 다른 사람들의 본보기가 되고, 당신 부류의 마지막 존재가 되기 바란다고.
당신 부류…. 신좌파
취재의 대상인 된 이유, 다른 인종과의 사랑, 그리고 인종차별, 부유한 백인계층 출신의 여성이 혁명의 길로, 흑인과 사랑 이런 것들은 당시의 상식, 이른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기이한 행보였다. 재판과정에서 복역 중에도 계속 언론의 인터뷰 요청이 있었다. 앤은 교도소 안에서 자유를 느꼈다고 했다. 간호조무사로 일을 하다, 집안 내력이던 심장 질환으로 쓰러진다.
교도소 안에서 일어난 에피소드들... 그의 혁명전사로서의 모습이었을까?
조지와 앤의 만남,
병원에 입원한 앤, 이미 병색이 짙어 조로증에 걸린 아이처럼 폭삭 늙어버린 그녀는 어떻게 많은 세월을 버텨온 걸까? 혁명의 뜨거운 기운이 사그라질 때, 그들에게 찾아온 시대의 공기는 냉소다. 앤은 자신의 계층 사람들에겐 배은망덕하고 오만한 배신자로, 그가 헌신적으로 사랑한 흑인들에겐 혁명 놀이를 하고 싶어 안달이 난 백인 부잣집 응석받이로 손가락질을 받지만, 그들에게 68년, 그해에 시작된 불꽃은 가슴 한편에 있던 출신에 대한 부끄러움, 경멸, 이를 떨쳐버리고 일어서게 한 공기들,
앤과 내가 미국소설이라고 배웠던 위대한 개츠비, 아메리칸 드림과 미국의 희망, 가능성에 대한…. 앤은 피츠제럴드가 노동자 계층을 나타낸 방식도 못마땅해했다.
시몬 베유, 앤이 우상시한 인물, 그는 성자들에게서 볼 수 있는 천재성을 가진 여성으로 성장했다고 T.S. 엘리엇이 말할 정도였다. 그는 가난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의 운명에 집착했다. 그리고 끝내는 자살의 길을 택했다. 사람들은 그를 실성했다고도 하고, 까다롭다. 폭력적이다. 오만하다, 맹목적, 둔감, 급진적이라고….
시몬 베유를 좋아했던 앤 또한 그러했을까?,
이 소설의 지은이는 자신과 같은 또래, 세대의 두 여성의 삶을 좇았다. 불우한 환경에서 우수한 실력으로 명문 사립대에 진학했던 조지와 부유한 집안 출신의 앤, 하지만 그들의 항로는 달랐다. 앤은 시대의 공기를 흠뻑 마시며, 시몬 베유를 우상으로 여기며, 차별받고 소외당한 흑인들을 향해…. 그것이 성인이 될 때까지 부유한 환경도 이들의 노동력을 착취해왔던 계층과 먹물들의 학생운동, 현실 개혁이 아닌 유치한 놀이에서 벗어나 진정한 혁명의 길을 택했다. 그리고 조지 역시 부잣집 아이들 속에서 보낸 학교생활은 꿈과 희망을 품고 들어온 대학, 어쩌면 신분 상승과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마법의 무엇인가를 기대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그것과의 거리감은 결국은 학교를 떠나, 평범한 일상으로 적당하게 타협하고, 체제에 순응하는 그런 삶 속으로 숨어들게 했을까….
이상한 시대였다고 말하는 지은이, 그 이상한 시대는 두 번 다시 오지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이 작품을 쓴 것인가, 아니면 다시 찾아오기를 기대하면서 였을까,
이 모두 그 시대의 자화상이 아닐까, 조지와 앤은 동전의 양면이 아니었을까, 두 번 다시 미국 사회에서 일어날 수 없는, 아니 찾아오지 않을 그런 시대 속 청춘에 대한 그리움이었을까,
지금도 흑인차별이 배경이 된 사건은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다. 병상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앤, 꺼져가는 혁명의 불꽃, 그 마음속에는 어떤 회한이 일었을까, 그리고 조지는…. 그 부류의 마지막 존재였을까,
<출판사에서 책을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