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의 꿈 - 제왕학의 진수, 맹자가 전하는 리더의 품격
신정근 지음 / 21세기북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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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의 이야기를 오늘에 되살려 읽노라면

 

 

여여 신정근 선생의 나의 사서 읽기는 고전의 대중화에 이바지한 바가 넓고 크다. 지난 2011년부터 논어를 비롯해, 중용, 대학을 거쳐 맹자에 이르는 10년간이 읽기, 그 마지막이 될지, 어쩔지는 모르겠지만….

 

 

선생은 글머리에서 총성이 멎은 대신, 분단의 고통은 진행 중이며(우리 사회의 지형학적 환경), 경쟁은 나날이 치열해지고(신자유주의, 양극화 1%와 99%의 부의 편재, 경제적 환경), 변화는 빠르게 진행되어(세상의 변화, 특히 코로나 재난은 지금까지 우리 사회의 빠른 변화를 절실하게 느낄 수 있게 해주는 환경이었다), 나와 너 그리고 99%에 속하는 이들의 삶의 조건은 날로 팍팍해지고, 때로는 강퍅해지기도 한다. 피로사회(한병철 "피로사회"-성과사회는 우울증 환자와 낙오자를 만들어 낸다-), 대상 없는 분노와 혐오, 이때 웬만큼 두꺼운 자아가 아니면 이런 공기에 전염된다. 이런 때, 고전 속으로 맹자를 다시 톺아보고, 그 생각을 사상을 이해하면 내가 놓여 있는 환경이 사회가 조금이라도 이해되지 않을까?, 그 속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깨닫게 되지 않을까? 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듯하다. 이 책을 통해서….

 

이 책은 5강 77개의 표제로 이 모두에 입문, 승당, 입실, 여언으로 구분하여, 입문은 현대적 의미를 승당은 원문의 독음과 번역을, 입실에서는 원문의 한자 뜻과 맥락 풀이를, 여언에서는 맹자의 논점을 짚어보고 현대 맥락에서 새기는 방안을 제시한다. 

5강, 우선 1강은 시대의 격랑에 맞서 갈 길을 내놓다. 이는 만남과 대척의 양혜왕 상하라는 주제로. 온 천하가 쌈박질로 힘과 힘의 대결 속에서 맹자는 제3의 길을 말한다. 마치 물은 사람이요. 떠 있는 배는 군주라. 물이 거칠어지면 배는 창졸간에 뒤집어 질수도 있다. 하여, 발밑으로 보고, 인정하라. 사방을 둘러보고 사람을 위한 정치를 하라. 2강에서 부동심을 세우지만, 시대와 불화하다. 이것이 어찌 그때 그 시절만의 일이겠는가, 3강 희망과 논쟁, 생계, 분업, 보편, 위인, 의전, 환경, 결단을, 4강 기준과 상황, 여기서는 교육과 배려, 선심, 집념 등을... 5강 영웅과 제도, 효도와 인정, 계몽, 공작, 도리, 부정, 염치, 부당, 탄핵 , 77개의 단어들의 의미를 새겨보는 것이 여전히 의미있다.

 

 

지은이는 리더론으로서 풀어내고 있지만, 난 보통 사람들의 보편적 삶 속에서 실현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읽고 새긴다. 

 

 

그렇지만, 내년이면 당장에 누군가를 대표자로 뽑아야 한다. 2030, 4050 등 세대론이 등장하면서 갈등 아닌 갈등으로 조장시키고 있다. 이런 전국시대는 총칼만 없을 뿐, 그 파괴력은 더 크다. 사람의 영혼을 멍들게 하고, 마음을 다치게 하며, 종내에는 희망을 잃게 한다. 빼앗긴 논밭이야, 빼앗아 오면 그만이지만….

 

죽음보다는 생명을, 독선보다 포용을, 진영보다 보편을, 경쟁보다 공존을 끌어안을 그런 사람 어디 없소. 목말라요. 물 좀 주소….

 

 

다시 맹자의 강의로 돌아가 보자. 

 

 

1강에서는 경쟁과 상생을, 그리고 비난, 정치, 사랑과 살생, 핑계, 황당, 궁핍, 정당을 이야기한다. 정치는 짐승을 몰아 사람을 잡아먹게 한다(솔수식인), 사랑은 인자에게 맞설 사람이 없다(인자무적), 이 글귀들의 행간에 적인 보이지 않는 사례들, 즉 나와 내 주변의 경험으로 읽어내야만, 살아있는 글귀들이 된다. 2강에는 덕정과 의지, 착실을 또 강압과 연대, 경청 자신 화합, 존중, 성찰 예측, 이 모든 단어가 지금도 여전히 필요하다. 연대, 놀라고 함께 아파하는 공감의 마음(측은지심), 나를 내려놓고 남을 따르는 경청(사기종인), 성찰 스스로 책임을 시인하는 사람(지기죄자), 읽고 생각해 보면, 인간 세상은 동서고금의 보편적 성향과 모습이 있는 듯 여겨진다. 그래서 고전을 매번 새롭게 읽어야 하는 이유이겠다고 느낀다. 

 

그렇다 사람에게는 네 가지가 있어야 한다고 즉, 싸가지(싹수)다. 인의예지, 여기에 신을 보태서 오상이나 오가지라 해야겠다. 맹자의 사단설(공손추 편), 인간의 도덕적 본성은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이란 것도 결국에는 얼굴 있는 자본주의, 인정 있는 자본주의, 배려의 자본주의라는 말과 같이 새겨봐도 될 듯하다. 제 허물은 보지 않고 남의 허물을 보는 것도 악이다. 사양할 줄 모르고 건방을 떠는 것도 악이다. 옳고 그름을 가리지 못하는 것도 악이다. 그중에 가장 중한 것은 측은지심이다. 어려운 처지에 공감하고 이를 도우려는 맘이 없는 것은 악 중의 악이다. 

제대로 된 측은지심의 실천과 실행을 고민해 본 적이 있나, 수오지심을 해 본 적이 있나, 나에게 엄격하지 않고, 남에게 엄격한 이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그러하다.

 

많이 배우고, 깊이 알고 하는 것들은 다 누군가가 남겨놓은 것들이다. 이들 익혔으면 버려라. 거리를 두고, 나만의 생각으로 내 머리로 사고해야 한다. 고전을 배우고 익히는 것 또한 이런 자세와 태도가 아니라면, 그저 자왈~에 불가하다. 내 삶을 왜 다른 이의 삶으로 대처하려는가, 따라 배우는 것도 좋지만, 그 주체는 나여야 한다. 나를 중심으로 말이다. 스스로 롤 모델을 만들고 이를 따라가려다 지친 군상들이 적지 않다. 이들은 나를 믿지 못한다. 나를 모른다. 맹자의 귀한 말씀이 우이독경이 돼서는 안 되겠기에…. 생각나는 대로 적었다. 아마도 최진석 선생이 <나 홀로 읽는 도덕경>에서 사유를 하라는 의미도 이와 같은 맥락이요. 사유하지 않는 것이 악이다(변상욱 에세이 두 사람이 걷는 법에 대하여, 멀리깊이, 2021)라는 대목 또한 그러하다. 

 

신정근 선생이 이 책 어디에도 이런 독법이 필요하다고는 적지 않았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미 이 책이 의미하는 바를 대충 짐작하고 있지 않은가, 

 

맹자를 오늘에 되살려 읽어야 할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 공부이지 아닐까 싶다. 맹자의 꿈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이제는 우리의 꿈으로서...

 

 

<출판사에서 책을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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