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뷰티 (완역본) 나와 모두의 클래식 1
애나 슈얼 지음, 위문숙 옮김 / 도토리숲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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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뷰티

 

지은이 애나 슈얼은 시인이자 작가였다. 28살 하고 몇 개월 더 살다 죽었다. 요절인 셈이다. 그는 어릴 적,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리를 심하게 다쳤는데, 치료를 잘 못 하는 바람에 평생 불편한 채로 살았다. 다리를 다친 후로 말을 타고 다니면서 말에게 깊은 관심과 사랑을 가지게 됐다. 1871년 얼마 살지 못할 거라는 선고를 받고 말을 위한 책을 써야겠다고 결심, 아픔 몸으로 6년에 걸쳐 어머니에게 말로 하여 대신 적게 하거나 가끔 몇 자씩 적어 탈고, 5개월 후에 세상을 떴다.

 

 

주인공은 주인이 까망이라 부르는 혈통마, 이른바 족보 있는 말이었다. 망아지 눈에 비친 세상, 엄마(공작부인=더치스)가 해주는 이야기를 듣고 세상을 배워나간다. 소설은 4부 49 에피소드로 돼 있다.

 

까망이는 엄마와 함께 주인의 쌍두마차를 끈다. 엄마는 침착해서 낯선 말보다는 나를 더 잘 가르쳐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엄마는 내게 바르게 행동하며 주인의 마음에 들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현명한 태도라고 알려주었다.

 

엄마는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말했다. 우리 주인처럼 착하고 사려 깊다면 어떤 말이라도 자랑스럽게 섬길 거야. 그렇지만, 말이나 개를 가질 자격이 없을 만큼 고약하고 잔인한 사람들도 있어, 또한 어리석고 허영심에 무식하고 부주의한 사람들도 많은데, 생각하기를 싫어하는 사람들, 생각이 짧아 말을 망쳐 놓기 일쑤다. 엄마의 이 말이 앞으로 까망이의 인생 항로가 될지는 누구도 몰랐다.

 

버트윅 영지에서 행복스런 나날을

 

까망이는 고든 대지주에게 간다. 이를테면 팔려가는 셈이다. 나를 돌봐주는 이는 존이다. 마방에 들어가니 수컷 조랑말 메리레그스, 밤색 암말 진저(생강)가 있었다. 이제부터 버트윅 생활이 시작된다. 주인마님이 블랙뷰티라 이름 지어준다. 나는 까망이에서 블랙뷰티가 됐다.

 

씩씩한 메리레그스, 진저, 다른 마구간에 사는 땅딸막한 저스티스와 주인의 사랑을 받는 늙은 갈색의 사냥말 올리버 경, 우리는 종종 방목장에 모여 잠깐씩 이야기를 나눈다.

 

거칠고 험한 런던의 길위를 거쳐 돌고 돌아, 마지막 집으로

 

주인마님이 몸이 좋지 않아 치료를 해야 하기에 주인은 그곳 생활을 정리해야 해서 그의 친구인 백작에게 블랙뷰티를 팔았다. 마차를 몰고 짐을 나르는 노동이 시작됐다. 한 적한 방목장에서 맛있는 귀리를 먹고 여유롭게 산책하면 달리던 시절을 뒤로하고서 말이다. 블랙뷰티는 그저 이름뿐, 이제는 마차를 끌고 승객용 마차를 끌거나 짐을 나르는 말일 뿐이다. 그의 친구들도 뿔뿔이 팔려나갔다. 좋은 주인을 만나면 그야말로 팔자가 펴는 셈이지만, 다들 그렇지 못했다.

 

블랙뷰티의 새로운 이름은 “잭‘이다. 새로운 주인 제리를 만나, 그의 마차를 끈다. 주인의 의도대로 재빠르게 움직인다. 대형마차, 합승 마차, 짐마차, 수레, 승객용 마차가 뒤엉킨 도로, 한낮 런던도로를 빨리 빠져나가려면 민첩하게 상황을 판단해야 한다. 19세기 영국 런던의 이동이나 운송수단은 마차다.

 

진저의 마지막

 

가여운 진저를 만났다. 어느 날 공원에서 악단 공연이 열리는 중이라 마차들은 손님을 태우기 위해 그 앞에 대기해 있었다. 허름하고 초라한 승객용 마차가 한 대가 우리 옆에 왔다. 남루한 밤색 말, 털이 부수하고 뼈는 앙상하다. 내가 먹던 건초가 바람에 날려 그쪽으로 몇 줄기 떨어지자 불쌍한 말은 길고 가느다란 목을 내밀어 건초를 주워 먹고는 더 없는지 찾는 모습이다. 어디선가 본 듯한 말, 바로 진저였다. 블랙뷰티와 헤어진 후, 진저는 여러 주인을 떠돌다가 마지막에 마부들을 상대로 마차와 말을 빌려주는 사람에게 팔려왔다.

 

주인은 진저가 몸이 아프다는 걸 알아 싸구려 승객용 마차라도 끌게 해서 끝까지 써먹어야 한다고…. 지금은 쉬는 날 없이 매일같이 일하고 있다. 블랙뷰티가 말했다. “넌 학대받으면 가만히 안 있었잖아” 아, 전에는 그랬지. 그런데 아무 소용없더라 사람들은 최고로 강하거든, 그런 사람들은 감정도 없어, 잔혹해지면 할 수 있는 게 없어, 참고 또 참으며 끝까지 버텨야 해라고 했던 진저는 얼마 후 고개 축 늘여 뜨린 채 죽었다.

 

블랙뷰티 속에 비친 불행들...

 

블랙뷰티는 런던에서 말들이 어떤 고통을 겪는지를 보게 됐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얼마든지 막을 수 있는 일이다. 우리는 제대로 대우를 받으면 고된 일도 기꺼이 해낼 수 있다. 나는 은으로 만든 마구를 두르고 좋은 음식을 먹으며 백작의 마차를 끌고 다닌 적이 있다. 가난한 사람들이 모는 말 중에서 예전에 나보다 훨씬 행복하게 살아가는 경우도 아주 많다.

 

블랙뷰티는 사고를 당했다. 다행히 마구간 일꾼이 잘 볼 봐주어 12일째 되던 날에 나는 런던에서 몇 킬로미터 떨어진 말 시장으로 보내졌다. 새로운 주인 농부 서러굿과 손자 월리는 나를 잘 돌봐줬다. 그들은 나를 이제 조용하고 편안한 집을 찾아서 보내려 한다. ”이 말을 소중히 여길만한 곳 말이다“. 서러굿은 월리에게 말했다.

 

이렇게 돌아 돌아 블랙뷰티는 옛 인연을 찾게 됐다. 서러굿은 집에서 몇 킬로미터 떨어진 집에 블랙뷰티를 보여주러 간다. 그 집의 말 사육사 조 그린은 사고로 다리에 흉터가 남은 블랙뷰티를 처음에는 못 알아보다가, 오래전 블랙뷰티가 어렸을 때, 피를 뽑으며 생겼던 자그마한 흉터를 발견하고 뷰티를 알아본다. 뷰티도 조를 알아본다. 그 집의 아가씨들은 고든 부인께 편지를 써서 블랙뷰티가 여기에 와있다는 걸 알려야겠다고 했다. 블랙뷰티는 옛 이름을 찾고 이 행복한 집에서 어느덧 1년이 됐다. 조는 훌륭한 사육사다. 서러굿씨가 조에게 말한다.

 

”자네가 있으니 저 말은 스무 살 넘도록 거뜬히 살 걸세“라며….

 

소설을 읽는 동안 19세기의 영국으로 여행을 해 본다. 당시의 이동, 운송수단이던 마차, 조랑말도 혈통마도 모두 거리에서 일한다. 한적한 농장에서 한가롭게 뛰노는 말도 있다. 블랙뷰티 눈에 비친 인간 세상, 이는 아마도 산업혁명 당시 도시로 몰려든 노동자의 모습이지 않겠는가, 공장에서 일하는 아동들의 모습과 블랙뷰티의 친구들의 모습이 겹쳐진다.

 

주인공은 말이다. 이 소설을 죽을힘을 다해 썼던 애나 슈얼은 말을 사랑하기에 말의 눈으로 당시 영국의 세계를 그렸을지도 모르겠다. 그가 말에게 동정심과 이해심과 배려를 베풀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썼다고 말하지만, 이 소설을 읽고 있노라면 말에게 동정심과 이해심과 배려라기보다는 인간과 자연, 생명을 고귀하게 여기라고 했던 걸 아닐까?,

 

이 소설 속 말은 플랫폼 노동자로, 오토바이를 타는 배달 라이더로 길 위를 위험스럽게 달리는 말들처럼, 사고의 위험 속에 초를 다투는 런던 거리를 달려야 하는 말들처럼, 그렇게 다가온다. 깊은 여운을 남긴다. 블랙뷰티 엄마 더치스가 어린 까망이에게 들려주던, 사람 세계의 천태만상….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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