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스 스쿨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92
이진 외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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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에 크고 작은 게 어디 있어? 아픈 건 똑같아

 

이 책은 방향 없는 폭력 앞에 무방비로 놓인 청소년, 청소녀들, 이진, 주원규, 김의경, 김설아, 정명섭 등 다섯 작가의 시선으로 전하는 위태로운 학교 이야기이다. 재미나는 주제로 이야기를 엮었다. 학교 내 폭력, 집단따돌림, 학교는 지옥이다. 그러나 그 원인은 학교 내에만 있지 않고, 개개인의 청소년, 청소녀들의 인성과 품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인 문제는 승자독식의 사회다.

 

약자에 대한 배려의 도덕, 윤리적 가치를 말하기보다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아남아야 한다. 눈에 보이는 배경과 권력이 청소년, 청소녀와의 배경이 아닌 그 자체로 변환된다. 학교 교육에 대한 신랄한 비판보다는 왜 이들은 이런 행동을 할까 하는 개개인의 심리를 들여다보고, 사회 전체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 이 책은 이런 것들이 결코 피해자가 못나서, 가해자가 잔악해서 도가 아니라 왜 사회 분위기가 이렇게 됐나 하는 우리 사회의 자기 성찰을 촉구한다….

 

책 속 여행을 하는 동안, 나의 기억은 학창시절도 되돌아갔다. 교복 시대, 배꼽 바지, 바지 밑단 말아 올리기(00 합섬이라는 상표가 보이도록, 그래서 나는 너희와는 달라, 라는 드러내기), 교복 윗단추 하나 풀어 제치고 다니는 전형적인 그룹이 있었다. 당시에는 이들을 불량써클애들이라 불렀다. 고등학교 올라오면서 착실한 친구가 화장실 뒤에서 담배를 피우고, 시골에서 유학 온 같은 반 아이들 자취방으로 몰려다니며, 빌붙어 지내고, 오전 2교시 휴식 시간, 체육 시간에 반 맨 앞줄에 앉은 체구가 작은 친구들의 도시락을 멋대로 까먹고 하던 모습들,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는 일진이라는 이름으로…. 요새는 뭐라 부르는지 모르겠다.

 

언론매체를 통해서 전해지는 청소년, 청소녀들의 상상할 수 없는 행동들, 친구를 데려다 모델에 가둬놓고 물고문하고, 지적 장애인을 데려다 일을 시키고, 일을 제대로 못 한다고 결국에는 때려죽이는 사건에 이르기까지,

 


첫 이야기, 이진 작가의 “옥상 아래 그 언니” 10여 년 전 아이들의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옥상에서 투신?, 그 영혼은 유령이 돼 옥상 창고 안을 떠돌고 있는 듯, 주인공은 같은 반 아이들에게 왕따를 당했다. 그 이유가 뭘까? 트위터에 올린 글이 화근이라 생각한다. 어느 날, 따돌리는 애들을 피해 얼떨결에 옥상까지 올라와 창고에 들어가게 되는데, 거기서 한참 선배인 그 언니(유령)를 만난다. 지금이 2000년이라 생각하는 언니, 2021년으로 타임슬립했나? 언니와 주인공인 나 모두 지금까지 유령 취급을 받았다. 서로를 알아주고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는 사이가 됐다.

 

너만은 너를 지켜. 그 애들이 끊임없이 네 존재를 지워 버리려 들어도 너는 너를 포기하지마. 누군가 네말을 들어줄 때가 올 거야. 그때까지만 기다려. 너를 놓지 말고

(중략)

세상에 나를 알아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내 곁에 있어 주고 내말을 들어 줘서 고마워, 네 덕분에 내가 나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어, 너를 통해 내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어.” (40)

 

 

 

 

집단따돌림은 왜 일어나는 걸까?, 지은이는 따돌림당하는 사람을 궁지에 몰아넣는 가장 큰 감정은 외로움이라 했다. 가해자 자신도 외로워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먼저 나서서 남을 괴롭힌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나에게 가까이 오지 말라고 짖어대는 개는 실은 두려움이 큰 것처럼, 학교의 일진들도 그렇다. 누군가에게 당하지 않으려는, 자신을 보호하려는 몸부림일 수도 있다.

 

두 번째 이야기, 주원규 작가의 “매우 도덕적인 캠프”는 블랙 코미디다. 학교 아이들한테 괴롭힘을 당한 아이들, 이들이 모인 곳이 매우 도덕적인 캠프다. 1주일 만에 멘탈이 갑이 된다. 부모 손에 끌려 캠프에 들어온 아이들, 교관들이 왔다 갔다 한다. 그들이 기대하거나 그럴 거라고 짐작했던 해병대의 강인한 체력 훈련 같은 건 없었다. 그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고 훌쩍 6일이 지났고, 출소를 앞둔 날 밤에 강당으로 모이게 한 그것밖에 없다. 그들 앞에 놓인 A4용지, 거기에 자신들이 당한 이야기를 쓰게 했다. 매우 도덕적인 캠프는, 이들에게 뭘 가르쳐주겠다는 것인가?,

 

 

먼저 너희가 실드치고 난리블루스를 쳐 줘야 학교에선 학폭위도 열리고, 가진 거 뭣도 없는 애들은 쫄아 붙으면서 학교생활이 편해진단 말이야. 선생들도 관심 놓지 말고 너희를 제대로 경호할 수 있도록 정신 무장시키고, 알겠어? (78)

 

 

앞으로 너희가 돈 벌 곳은 이 땅이니까 그렇지 그래야 서민코스프레하며 대충 어울리는 척하며 계속 살아 낼 수 있는 거잖아. 네 엄마한테 물어봐라. 내 말이 맞나 틀리나.

 

매우 도덕적인 캠프는 이런 곳이다. 주어진 조건을 최대한 활용해, 학교를 손에 넣는 거지, 선생들을 고용하는 거야. 보디가드로….

 

꽤 재밌다. 작가는 보이는 폭력에서 피하고 보기 위해 청소년 전체가 겪는 더 깊은 폭력, 서로를 감시하고 자신을 탓하고 타인과 어른이 정해 놓은 규칙에 맞추려고 애쓰는 행동이 자존감을 더 심하게 다치게 할 수 있다고….

 

 

세 번째 이야기는 김의경의 ‘나비’다. 정신지체아 ‘나비’를 꼬드겨, 성 착취의 도구로 내몰고 그 대가로 받은 돈을 놀이 비용을 쓰는 청소녀들, 점점 수위가 높이진 이들, 마침내 나비는 임신하고, 이런 사실이 나비 가족에게 알려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이들은 나비를 한적한 곳으로 끌고 가 나비 배를 때려 하혈하게 만든다. 평범했던 아이들이 어떻게 악마가 돼가는지, 개개인에 대한 책임을 묻자는 말은 아니다. 지은이 말처럼 폭력이 무서운 이유는 어느 순간 둔감해지고 익숙해지기 때문이 아닐까?, 나비를 학대했던 청소녀들은 자신을 학대하는 것이다. 길을 잃고 헤맨 것은 모두다.

 

 

네 번째 이야기는 김설아의 ‘뱀희’다. 마치 드라큘라처럼 흡혈하고, 영화 모이처럼 뱀이 등장한다. 다문화가정 출신 범희, 마리아 고등학교 일진 전교 1등의 재우와 이사장 딸인 인나, 이 둘을 학교에서는 재나라 한다. 재나는 누구든 맘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폭력을 행사하는 이들, 학교 선생도 어쩌지 못한다. 재나는 범희, 아니 뱀희를 건드렸다. 재우는 담뱃불로 범희의 다리와 얼굴을 지진다.

 

결국, 재나는 뱀희에게 죽는다. 마치, 전설의 고향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권선징악의 흔적은 마지막에 나타난다. 재나에게 범희가 곤욕을 치르던 장면을 목격했던, 유진, 1년 뒤 학교 옥상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기 위해 담장 위에 올라선 순간, 뱀희가 나타나, 유진의 손을 잡아 담장 안으로 끌어당겨 내렸다. 나, 뱀희야 기억나지? 라는 엔딩, 너 죽어서는 안 돼, 살아야 해라는 메시지일까?

 

 

다섯째 이야기는 정명성의 ‘즐거운 나의 학교’다. 주인공 안상태, 다른 학교에서 교실에 폭탄을 옮겼을 뿐인데 범인으로 몰렸다 자칭 탐정 준혁아저씨 도움으로 진범이 밝혀졌지만 학교에서 보이지 않는 따돌림과 손가락을 피해 이 학교로 전학한다. 빵빵한 부모를 배경으로 아이들을 못살게 구는 일진그룹을 조정하던 제1인자 대니 최가 피습을 당해, 혼수상태다.

 

누가 그랬을까, 누구? 습격한 이를 찾는 과정에서 2인자는 안상태에게 범인을 찾아오라고 협박한다. 이 사건은 그 누구도 아니다. 단지 그 골목길에 대니 최가 서 있던 위쪽 집에서 떨어진 벽돌이 범인이었다. 대니 최의 어머니는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의 아들이 공격을 당했는데 학교가 범인 찾는 걸 방해하고 있다고. 그런데 기사 댓글에 대니 최한테 괴롭힘을 당했던 아이들의 증언이 터져나온다. 한 둘이 아니라서 난리다. 청원도 한 것 같은데...

 

이렇게 5개의 단편소설을 봤다. 학폭, 청소년 청소녀의 상상 초월 범죄행각, 음습한 일진의 괴롭힘, 정녕 학교는 즐거운 곳이 아닌가, 마이너스 스쿨이라 적도 음습한 학교라고 읽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들이 향하는 곳은 학폭과 학교 내 집단따돌림에 대한 사회고발도 아니다.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났을까, 진정 학교는 뭘 가르쳐야 하는 걸까, 그리고 우리 사회는 이 무겁고 음습한 학교를 밝고 즐거운 학교로 만들 수는 없는 걸까를 묻고 있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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