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시의 쓸모 - 나를 사랑하게 하는 내 마음의 기술
원재훈 지음 / 사무사책방 / 2021년 9월
평점 :
원재훈 시인의 글쓰기- 시의 쓸모-
시는 나를 사랑하게 하는 내 마음의 기술
이 책은 작가가 글을 쓰면서 이슬방울처럼 떨어진 그의 마음을 담은 책이다. 어찌 보면 작가의 창작 진액이다. 시를, 소설을 쓰면서 아껴두었던 말들을 가슴에 켜켜이 쌓아두었던 모양이다. 이글의 형식은 뭘까, 시이기도 하고 산문이기도 하고 때로는 소설 같기도 하다. 아마도 시어로 표현하기에는 그의 마음속 표현을 다 담아내기 어려웠던 걸까?

작가는 1988년 세계문학에 시 ‘공룡시대’, 2012년 여름 작가 세계에 중편소설 ‘망치’로 등단했다. 시인이자 소설가다. 시인은 글을 압축, 절제된 시어로 표현해야 하고, 소설가는 이른바 ‘썰’로 풀어내는 어찌 보면 서로 어울리기 어려운 게 아닌가 싶은데, 그는 이 책을 통해서 ‘융합’ 새로운 형태의 글쓰기를 시도한 걸까?
이 책은 쉬이 읽히는 책은 분명 아니다. 켜켜이 쌓고 꾹꾹 눌러 담은 정성스러운 선물꾸러미처럼 매듭 하나하나 푸는 게 꽤 힘들다. 글 하나하나를 따로 엮어내지 이렇게 책으로 엮었담 이란 푸념이 나올 정도로 진중하다. 여기에 실린 4장 29개의 글, 한 세대를 훌쩍 넘은 창작활동 속에 쌓인 연륜과 공력이 남김없이 쏟아부은 듯, 깊은 울림으로 때로는 경쾌함으로 또 때로는 묵직함으로 전해져 온다. 공간마다 헤세의 그림이 들어있다. 시와 그림, 그리고 삶의 이야기가 아마도 이 책의 제목인 듯 말이다.
작가는 프롤로그에 마음 아프다. 마음을 찾는다. 한 번 보고 싶다고 말한다….
수도승의 말처럼 그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이가 없다고들 하지만, 그래도……. 그동안 살면서 이렇게 저렇게 찾아다니다 보니 가끔은 보이지 않던 마음을 손에 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때론 그것이 시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때 그 마음을 이 책에 담았습니다.
그는 이 책에 마음을 쏟아붓고, 에필로그에 이렇게 말한다. "시는 마음"이라고. 상처받은 우리의 마음을 위로하는 세상의 모든 노을을 위하여, 40년 전 작가의 사촌 여동생은 “오빠 시가 뭐야. 시는 어떻게 쓰는 거야”라는 질문에 대해 작가는 “나도 잘 몰라, 시는 신 같은 거야”라는 그때의 아쉬움을 덜어버리는 작업이 이 책이라 했다. 그는 그때나 지금이나 시를 모르는 건 마찬가지지만, 그 대답을 적은 것이라고….
뭐라 형언할 수 없는 이 책, 그저 아 글이 이렇게 치밀하고도 아름답기조차, 글들이 살아서 그림처럼 내 앞에 나타나고, 노래처럼 귓가에 맴도는구나 하는 경이로운 느낌 그 자체다.
29 이야기 중 2 꼭지를, 우선 19번째 시의 마음에서
작가는 말하고 또 적는다.
“세상은 내 마음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커다란 유리구슬입니다. 옥파비오 파스의 시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건 다양성입니다. 다양한 안목으로 다가서면 세상은 무한대로 펼쳐집니다. 유리구슬에 빛이 통과하면서 생기는 프리즘처럼 삶의 다양성을 즐기시길 바랍니다. 맹목적 행위나 믿음처럼 위험한 것은 없습니다. 그것이 종교나 정치적으로 연결되면 폭력적인 아수라장이 됩니다. 맹목은 더럽고 위험한 것입니다. 주의하십시오. 그것은 매우 위험한 것입니다. (150쪽)
마치 카롤린 엠케의 혐오사회(다산초당, 2017)의 한 대목을 읽는 듯하다. 다양성이란 똘레랑스다. 너와 나의 다름은 인정하면 된다. 성장배경과 문화가 다르면 사고방식과 가치관도 달라질 수 있다. 그것이 국외든 국내이든 말이다. 맹목적인 믿음과 행위가 그 무엇과 연결되면 집단광기로 돌변한다는 작가의 지적도 곱씹어야 할 말이다.
28. 용서하는 마음을 본다.
작가는 용서는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선물이라 적고 있다. 조건 없는 것이어야 함은 물론이다. 입으로 용서를 말하면, 몸과 마음은 그렇지 않은 수많은 일을 봐왔다. 김수민이 쓴 리더의 언어로 말하기(에이의취향, 2021)에서는 진정한 사과를 말한다. 몸과 마음을 다해, 왜 일이 그리됐고, 어떤 조처를 했고,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내용의 진정성이 담겨야 한다고 강조한다.
작가는 말한다.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실수를 하고 살지요. 죄를 짓기도 합니다. 사소한 일에서 범죄에 가까운 일 또는 심지어 범죄를 저지르기도 하지요. 그런데 문제는 내 잘못보다는 타인의 잘못이 먼저 각인된다는 겁니다. 내가 잘못한 일은 용서받으려고 하지만, 타인이 잘못한 일에 대해서는 용서보다는 복수를 생각합니다. 사람의 속성이 이러하니까 타인을 용서하는 자신만의 방법을 만들어두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221쪽)
내 탓이요가 정답은 아닐지 모르지만, 내 탓으로 일이 그리된 건 아닌지, 수오지심(내 허물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잘못을 나무라라)을 생각해 볼 일이다.
작가는 최근에 얼어붙은 임진강을 보면서, 이런 문장을 적었다.
얼어붙은 강물,
떨어져 비수처럼 꽂히는
날카로운 겨울 햇살
저 차갑고 단단한 침묵 밑에는
얼어붙을 수 없는 그대의 마음이 흐른다.
”얼음낚시“ 중에서
책 (224쪽)
그는 용서는 복잡하고 어려운 마음이라고 하면서 우리는 보통 일상적인 차원으로 이해한다고 했다. 그런 다음 용서하기 힘든 문제는 종교적 차원으로 접근한다. 마치 위대한 사람의 전유물처럼, 사법제도와 그리스 신화를 들어서 ”용서“의 의미와 이해하고자 했다. 왜 용서란 어려운 거겠냐는 의문을 제기하면서 누스바움의 분노와 용서를 소개한다.
작가는 용서라는 주제에 접근하는 방법에서도 그의 경륜과 깊은 고민의 흔적들이 보인다.
우리 마음의 일용할 양식은 바로 이런 책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참으로 오랜만에 묵직하고도 경쾌함을 갖춘 양서를 접해 기쁘고 즐겁다.
이 책은 문학을 꿈꾸는 이, 우리 사회를 어떻게 봐야 옳게 보는 것인지 고민하는 이를 비롯하여 산문을 쓰고자 하는 이, 논술 공부를 하려는 학생에 이르기까지 폭이 넓다. 이 책을 곁에 두고 하루에 한 꼭지씩만 읽어도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출판사에서 책을 받아서 읽고 주관적인 생각을 담아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