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절을 딛고 걸어갑니다 - 내가 만난 경력단절 여성 이야기
김정 지음 / 호밀밭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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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절을 딛고 걸어갑니다.

이 책은 부산광역시, 부산문화재단의 2021 청년문화육성 지원 사업을 통해 사업비를 지원받아 펴냈는데, 주제와 내용이 경력단절 여성에 대한 지원을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문제의식과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잘 담겨져 있다. 아마도 여성가족부의 ‘워라벨’(일과 삶을 함께하기 또는 일과 삶의 균형)사업과도 연관성이 있어 보인다.

노동, 성, 가부장주의에 대한 천착

지은이는 에세이 <딸, 엄마도 자라고 있어>-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시간(두두)과 소설 <프롬 윤영옥>-돌봄 책임과 자아 사이에서 진정한 자기를 찾아 나가는 세 여성의 여정(두두)을 담은 작품을 내놓았다. 이 책 역시 “노동, 성, 가부장주의”에 천착한 비판적 글쓰기다. 그도 돌봄노동자이자 글을 쓰는 작가다.

이 책에서 다루는 30명의 여성, 30개의 느낌도 결도 다른 에피소드, 각양각색이라 할 수 있겠다. 30인 30색의 주인공들이 딛고 서 있는 현실, 그들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나오는 진솔한 목소리(표효)를 담아냈다. 지은이가 이 책을 쓰기 위해 30명의 삶의 궤적을 좇아, 발품을 팔고 그물을 엮듯이 한 올 한 올 깁고, 그들의 삶을 공감하면서 톺아본 흔적이 역력하다.

“경력단절” 이는 나와 내 친구, 내 엄마, 이모 그리고 내 딸의 이야기, 내 아내의 이야기다.

“작가 김정”은 이 책에서 일터든 직장이든 일상의 삶이든 ‘단절을 경험한 이들이 앞으로 한 발 한 발 내딛는 과정’을 세상에 알린다. 낮고 잔잔하게 그리고 이 사회에 널리 퍼지도록 기대하면서 말이다. 남성들에게는 듣기 거북한 대목도 있다. 마지막에 실린 글, “노진석 작가로부터”가 왜 결말을 대신했나?, 아니다 이 책은 이미 결론이 나와 있다.

모두들 다 아는 사실인데 왜 돌봄노동이 여성의 고유역할이 돼야하나, 왜곡된 젠더의식에 대한 문제제기, 돌봄의 공공성은 불가능한가?, 양성평등과 같은 법률만으로는 워라벨 같은 정책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거대담론을 마주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 사회 전체를 뜯어고쳐야 하는 일이기에 마치 기후변화에 둔감한 이유가 개인이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커다란 장애를 만났을 때, 일부러 회피하거나 둔감해져야만 조금이라도 편하기 때문이라는 한 심리학자의 말처럼, 남녀 모두 방어기제가 발동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바로 이런 점을 극복하기 위해 모든 이들이 이 책을 읽어야 한다. 남성이건 여성이건...

이 책은 4부로 나뉘어졌고,

1부에서는 전업주부가 일자리를 찾는 과정 속에서 생기는 의문, 노동시장에서 내 가치는 얼마쯤 되는가라는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여성인력개발센터에서 “경단녀 들의 사회복귀, 새로운 일자리 마련”이라는 프로그램을 찾는 이에게 그의 나이를 묻고, 자녀나이와 수를 묻는다. 왜 묻는데? 등 8가지 이야기를,

2부에서는 완성되지 못한 이력서라는 제목 아래 정년 후 손주를 봐야하는 양가집 부모님들, 이 분들에게 부담을 지울 수 없어 자아실현을 포기하거나 연기하는 등, 경력단절을 스스로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경험 등 7가지 이야기를,

3부 엄마와 노동자 사이에서 모순을 경험하는 이야기를 비롯하여 여성 경력단절이라는 사회문제를 다루는 잡지사, 거기서 일하는 남성들의 관성화 된 가부장주의를 다룬 이론과 실천의 간극 등 8가지 이야기를,

4부에서는 커리우먼의 허상을 깬다. 직장 모두에게 환영받았던 결혼식, 출산을 기대하는 덕담도, 현실 앞에서는 그저 거추장스러운 것일 뿐, 이 모든 것들이 여성의 몫으로 떨어지는 현실, 아이 없이 둘만 행복하게 살까라는 고심 끝에 내린 결론으로 반려견을 선택한 딩크족, 여성의 임신, 출산과 돌봄 그리고 경제활동에 관한 남편의 자각 등 7가지 이야기가 각각 담겨있다.

일과 삶의 일과 가정의 양립은 허구인가?

여성들의 경력단절 경로를 본다. 결혼, 가족계획, 자이실현은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꿈일까?

이 책의 30가지 이야기가 모두 경중을 따질 수 없지만, 몇 가지 핵심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예를 들어보자.

먼저 28살의 공간설계를 연구하는 대학원생 A씨의 이야기, 대학원생끼리 모여 맥주 한잔하는 자리에서 청첩장을 내밀며 결혼식을 알린다. 이미 사회생활을 10년 이상하고 대학원공부를 하던 동기들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저기, 논문쓰고 졸업한 후에 인테리어 사무소에서 1~2년 경력을 쌓고 결혼해도 되지 않아?"

"그래, 너 이제 스물여덟인데 결혼하기엔 너무 아깝다."

"그러게 뭐가 그렇게 급했니? 일 좀 익히고 해도 늦지 않는데"

47쪽

A씨는 누구도 축하해주지 않고 해대는 말의 의미를 결혼하고, 대학원을 마친 뒤 일자리를 찾던 중에 알게된다. 면접관은 A가 결혼했다는 말에, 가족계획을 묻는다. 왜 개인 장래 계획을 묻지? A는 그제서야 결혼과 가족계획, 진로가 다 연결된 것을 깨닫게 된다. 그는 ‘일이 먼저야, 일부터 하고 결혼을 했어야 해’라는 자괴감 섞인 말,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만혼화, 딩크족, 저출산 이는 여성의 사회활동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90년대 초까지는 여성의 사회적역할론(왜곡된 젠더론)이 존재했다. 외벌이로도 가족을 먹여살릴 수 있었던 사회경제적 구조에서는 여성의 결혼퇴직제가 당연한 사회문화라고 생각했다. 전업주부로 아이를 낳아 기르고, 교육에 힘쓰고 하는 것들이 말이다. 그런데 경제불황, 사교육비부담 등을 비롯한 여러 요인이 IMF사태 후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이면서 일거에 변화를 불러 일으키는 방아쇠가 된다.

맞벌이를 해야 할 상황에 이르는 가정이 늘어나기 시작하고, 정부 등 국가 정책은 여성의 등을 떠밀어 노동시장으로 밀어넣는다. 아무런 준비 없이... 88만원 세대론의 등장하고, 청년들은 4포, 6포를 경험하게 되는 상황, 고용구조 역시 변화한다. 비정규직이 늘어나고, 기업 역시 핵심인력 외에는 아웃소싱으로 몸집을 계속 줄여나가면서 양극화이 심화된다. 이런 상황에서 결혼은 남녀 모두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

또, 결혼과 출산은 여성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하게 돼, 출산율은 인구수를 유지할 수 없는 수준으로 떨어지고, 육아를 위해 출산휴가, 육아휴직 후에 되돌아 갈 직장은 공무원, 공사에서 이들하는 이들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별로 많지 않다. 대개는 자녀가 조금 크면서 상대적으로 손이 덜 가는 나이가 되면, 자신의 활동을 꿈꾸기도 하는데, 경단녀들이 갈 곳은 현실적으로 2차 노동시장(주로 비정규직)밖에 없다. 뭔가 잘못된 게 아닌가, 나라 국력의 바탕이 되는 출산, 인구를 유지하거나 증가시키는 중요한 일을 하는 이들의 노력은 몰가치, 무가치 한 것일까?

어떤 이에게 결혼은 일과 자이실현을 포기해야 하는, 이상한 선택으로 몰아가는 행복스런 게 아니다. 일본에서는 우리 보다 10여년 앞서 이런 현상을 겪었는데, 지금 현안은 2050년 문제다. 즉, 위의 3대 현상의 결론, ' 저출산초고령화사회' 가 되면 노동인력이 급격하게 줄고 노인들만 남게 된다. 인구도 1억2천에서 7천만 대로 떨어지게 되면 외국에서 노동력을 수입해야 한다는 암울한 일본의 미래 시나리오다. 정부는 대놓고 말한다. 일본사회가 외국인으로 넘쳐날 것이라며, 협박조로 출산을 장려한다. '노동력의 도구'를 생산하라는 말로 들릴 수 있을 정도로 노골적이다

왜 육아와 가사는 경력란에 쓸 수 없지?, 돌봄, 가사노동의 경험은 멀티다. 이런 직업이 또 있을까?

전업주부의 가사노동을 금전으로 환산해 보여주는 통계들이 자주 소개되며,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가 만만치 않다고들 한다. 경력단절 없이 직장을 다니려는 워킹맘들은 물론 개인차는 있겠지만, 심한 경우는 자신의 월급 수준의 육아 도우미 비용을 감당하기도 한다. 이런 비교만으로도 간단하게 육아와 가사노동의 가치를 알 수 있지 않는가,

‘가만히 선언하다’(91쪽)에서는 딸을 어렵게 대학까지 보낸 친정 엄마가 전업주부인 딸에게 하는 말을 보자. 그렇게 공부를 많이 했는데, 집 안에만 있으니 아깝다는 말을 하면서도 아이에게 화내는 딸의 모습을 보고는 엄마는 딸에게 아이들은 사랑과 정성으로 키워야 한다. 번듯한 남편 좋은 아빠와 며느리를 사랑해주는 시부모 등 뭐가 부족하냐, 집에서 아이나 잘 키워야지라는 양가감정, 이중적 태도는 뭘까, 바로 우리사회에 내면화 된 젠더의식이다. 전형적인 가부장주의 사고법이다.

딸은 자신의 바라는 바를 말한다. 집안 일과 아이를 탈없이 키워낸 노력들은 제대로 된 사회적 평가를 받아야 한다. 자랑스런 돌봄과 가사노동으로, 또 이런 경험이 사회 적재 적소에 사용돼야 한다고, 참으로 맞는 말이다.

다시 경단녀의 대책으로 돌아가서 보자.

워라벨프로그램은 부부모두에 적용될 때만 효과가 있다. 여성의 직장은 52시간제를, 남성의 직장은 이런 시간규정이 없는 곳이라면, 오롯이 육아, 가사 모두를 여성이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의 실상은 1980년대 이후부터 줄 곳 M자 모양이다. 출산, 육아 후에 찾는 일자리는 2차 노동시장인 경우가 많다. 즉, 비정규직, 기간제, 계약직, 최저임금, 그도 못받는 그런 자리 밖에 제공 되지 않는다. 노동시장에서의 여성차별(경력단절)은 그들에게 유리천정이 존재함을 알려준다.

2020년 통계청발표를 보면, 남성노동자 대비, 여성노동자 평균임금 69.4%, 정부는 경력단절 여성의 노동시장 재진입 지원을 위해 2009년 '경력단절 여성 등의 경제활동 촉진법'을 제정, 여성 새로 일하기 센터설립, 2016년 전국 150개 새일센터를 통해 구직한 여성수는 39만 여명, 수치상으로는 진전이 있어 보이나, 내용(직종, 일의 내용 등에 대한)의 구체적인 분석은 찾아보기 어렵다.

남편은 아내의 임신, 출산, 육아를 어떻게 생각해야하나?

노준석 작가부부는 설치미술가다. 남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2년간 경력단절 된 아내를 보면서 결혼과 출산을 겪은 여성들이 겪는 몸의 변화와 사회적인 입지의 변화에 대해 생생하게 느끼고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어느 분야에서든 정해진 길은 없다고 생각합니다.다양한 선택과 삶의 형태가 공존할 수 있어야 건강한 사회라고 할 수 있겠죠. 선택은 권리와 연결됩니다.결혼하지 않을 권리, 아이를 가지지 않을 권리, 모유 수유를 하지 않을 권리처럼 엄마이기를 선택한 삶과 출산 후 복직하고 사회로 돌아올 수 있는 권리 역시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종전에는 관심도 없었던 관성에 젖어 철저히 남성 중심으로 생각하던 저에게 결혼과 출산, 육아는 많은 것을 돌아보게 했습니다.

219-220쪽

우리 사회는 결혼, 출산, 육아에 대해서 좀 더 현실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TV오락프로그램에서 아름답게 행복하게 각색하여 떠들어 대는 결혼, 출산, 육아이야기는 아직 경험 못한 이들에게 장밋빛 환상만을 심는다. 이제는 균형을 맞춰기를 주문한다. 누군가에게는 행복한 일들이 되겠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이 부지기 수라는 것이다. 진지하게 결혼이란 무엇인가?, 출산과 육아는 여성에게 있어 뭘 의미하는가 하는 등 우리 사회가 모두 고민하고 대책을 마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겠다.

이 책에 나오는 30가지 이야기를 모두 전해 줄 수 없어 아쉽다. 이 책은 남녀 모두 읽어야 한다. 대학생에서 결혼한 자녀를 둔 이들까지...이 책을 읽고 노동, 성, 가부장주의에 대한 인식이 새롭게 바뀌기를 기대하면서.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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