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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24년 1월
평점 :
#도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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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집
#추천
산문집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박완서 작가의 책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는 출간일을 기다렸다.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의 개정판이라 더 반가웠다. 단순히 기존 내용에 표지와 제목만 바꾼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이야기를 담아서 이렇게나 멋지게 독자를 만나로 왔다.
● 큰소리를 안 쳐도 억울하지 않을 만큼, 꼭 그만큼만 아이들을 위하고 사랑하리라는 게 내가 지키고자 하는 절도다. 부모의 보살핌이나 사랑이 결코 무게로 그들에게 느껴지지 않기를, 집이, 부모의 슬하가, 세상에서 가장 편하고 마음 놓이는 곳이기를 바랄 뿐이다.(380쪽)
그동안 나는 어떤 것에도 무게를 느껴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나에게 무게는 곧 책임감으로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어떤 무게에도 소홀하지 않고 소중히, 다정히 대하자,라는 마음에서 만들어진 나만의 규칙 같은 거였다. 때때로 그것이 버겁고 힘들 때도 있었지만 그래야만 지킬 수 있다고 닫힌 생각으로 옭아맸었다.
작가는 사랑이 무게로 느껴질까 걱정을 한다. 그 걱정에 설득 당했다. 일상 이야기를 통해서 진솔함과 잔잔한 여운이 남는 글에 정감이 가고 마음이 따뜻해져서 좋았다. 때로는 엄마처럼 자상하게 안아 주고, 때로는 인생 선배처럼 힘이 되는 말을 건네기도 한다. 내가 가진 수없이 많은 무게를 하나씩 꺼내 놓으며 읽었다. 오래전에 이 책을 읽었을 때에는 박완서 이름만으로 선택했었다. 이번에 다시 만난 개정판은 그의 이름 넘어 문장 속의 깊은 뜻을 헤아리게 된다. 마음에 와닿는 문장에서는 마음껏 머물렀다.
공감은 이런 거구나. 내가 좋아하고 이해하는 것에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지 않고 이해할 수 없는 것에도 아 그럴 수 있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도록 작가의 다양한 시선을 통해서 다시 한번 배우게 된다. 생각의 선을 조금 더 확장시키니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된다. 시대는 다르지만 그 시대를 이해하고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넓고 깊은 작가만의 혜안과 통찰을 만날 수 있어서 젊은 친구들에게 더 추천해 주고 싶다.
이제 작가의 새로운 글을 볼 수는 없지만 남겨진 글은 영원히 우리 곁에서 함께 숨 쉬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시간을 지나온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 가치있는 글이다. 앞으로도 계속 읽히는 글이 되길 바란다. 절판 없이 계속!!!
● 정기가 없는 자연은 그냥 경치일 뿐이었다. 경치는 아무리 좋은 경치라 해도 눈으로 보는 것으로 족하지 마음속으로 스며 오진 않는다.(90쪽)
● 아무리 눈치 볼 거 없다 해도 자연의 눈치만은 봐야 하는 것은 인간의 최소한의 법도다.(93쪽)
● 남의 생각을 조금이라도 받아들일 태세가 돼 있으면 그건 이미 극단적인 편견이 아니다.(129쪽)
● 폭력에 용기와 다르듯이 편견은 신념과 다르다. 신념은 마음을 열고 얼마든지 남의 옳은 생각을 받아들임으로써 자신을 살찌우려 들지만 편견은 남의 옳은 생각을 두려워하는 닫힌 마음이다.(129쪽)
● 인간답게 사는 길도 나만 인간답게 살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면 쉬울 수도 있지만, 그런 생각 자체가 이미 인간답지 못하다. 이웃이 까닭 없이 인간다움을 침해받는 사회에서 나만은 오래오래 지키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인간 이하의 어리석음이다.(130쪽)
● 법 대신 편법을, 원칙 대신 변칙으로 사는 걸 은연중 권장하는 사회는 뭔가 잘못된 사회다. 마찬가지로 특혜나 특사가 자주 있어야 하는 사회도 인간다움이 그만큼 자주 짓밟힌 사회라는 혐의를 면키 어려울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 인권만은 특혜로 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함부로 빼앗을 수도 없는 것이 아닐까.(136쪽)
● 생명이 소멸돼 갈 때일수록 막 움튼 생명과 아름답게 어울린다는 건 무슨 조화일까? 생명은 덧없이 소멸되는 게 아니라 영원히 이어진다고 믿고 싶은 마음 때문일까?(155쪽)
● 사람의 마음속엔 이런 용수철 같은 게 있는 법이다. 이 용수철이 엉뚱한 방향으로 튀어 오르지 않게 법의 규제에도 묘미가 있어야지 미련해서는 안 되겠다.(177쪽)
● 답답한 일이 있거든 답답해하거라. 답답한 것과 맞서거라. 답답한 것을 답답한 줄 모르는 바보야말로 구제할 길 없는 바보가 아니겠는가.(213쪽)
● 이런 식으로 제아무리 높은 사람의 점잖은 모습도 기회만 있으면 엉망으로 재구성을 하려 든다. 그러나 문제는 내가 쓰레기처럼 덮쳐 오는 일상의 권태와 악덕으로부터 손끝하나 까딱 않고 탈출한 것으로 생각하는 내 비열함이다. 늘 그렇듯이 문제는 바로 나에게 있는 것이다.(313쪽)
● 나는 결코 세월을 토해 낼 수는 없으리란 걸, 다만 잊을 수 있늘 뿐이란 걸 안다. 내 눈가에 나이테를 하나 남기고 올해는 갈 테도, 올해의 괴로움은 잊혀질 것이다.(34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