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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글둥글 지구촌 관혼상제 이야기 ㅣ 함께 사는 세상 15
정인수 지음, 윤유리 그림 / 풀빛 / 2014년 7월
평점 :
[둥글둥글 지구촌 관혼상제 이야기] 인생의 마디를 시간에 남기다
나무는 자라며 나이테를 남긴다. 식물의 줄기도 자세히 보면 마디를 형성하며 자라는 것을 볼 수 있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로서 인생의 마디를 시간에 남긴다. 그것들이 바로 관혼상제 의식이다. 성인이 됐다고 기념하는 관례, 평생의 인연을 만드는 혼례, 하늘나라로 사람을 떠나 보내는 상례, 돌아가신 분을 추억하는 제례까지 우리는 인생을 살며 중요한 마디들을 기념하며 살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관혼상제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하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됐다. 나이가 어느 정도 차다보니 관혼상제를 모두 겪어 봤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우리 나라의 풍습이 전부인양 생각하지 않고 지구촌 다른 나라들이 어떤 관혼상제 문화를 갖고 있는지 알고 싶어 이 책을 읽게 됐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을 보면 피부색도 다르고 쓰는 언어도 다르며 여러 가지로 문화가 다르지만 주어진 인생 시계에 따라 나이 들고 늙어가며 풍습을 겪는 것은 똑같기에 같은 듯 다른 듯 비교하며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관례 부분에서 과거 우리 나라는 어른이 됐다고 상투를 틀고 갓을 쓰는 풍습이 있었다. 들돌을 들면 어른으로 인정해주기도 했다. 반면 인상 깊었던 나라는 바누아투. 번지점프를 시키는데 안전장치가 허술했다. 들돌만 들면 어른으로 인정해줬던 우리나라가 훨씬 좋은 조건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어찌 보면 무모한 관례의식이었다. 현대로 오며 더 이상 들돌을 들지 않아도 일정 나이가 되면 성인으로 인정해주게 됐는데 요즘의 ‘성년의 날’은 ‘해방’ 이외에 어떤 의미를 두는지 잘 모르겠다. 여러 나라 풍습을 보니 어른이 된다는 것이 자유 못지 않게 책임의식을 가지란 의미를 주는 것 같은데 관례 의식이 주는 무거운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게 했다.
혼례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제일 재미있었다. 지참금을 가지고 베트남과 인도는 정반대 양상을 보였다. 베트남은 남자가 여자 쪽에 지참금을 준다. 반대로 인도는 여자가 거액의 지참금을 남자 집에 준다. 한 쪽이 다른 쪽에 지참금을 준다는 것도 어색한 일인데 성별에 따라 운명이 달라지니 참으로 신기하고 재밌었다. 내가 만약 인도에서 태어났다면 돈을 잘 벌어도 남자 집에 지참금을 줘야한다는 것인데 좀 억울할 것 같다. 터키에서는 결혼식이 파티처럼 열린다. 7단 케이크가 등장하고 춤을 추는 등 파티 분위기를 제대로 즐기는 것. 한국 결혼식도 많이 간소화되는 추세이긴 하지만 결혼식을 올리기 위해 너무 많은 비용이 드는 것이 사실. 터키처럼 형식보다 실용적인 식을 올리는 것이 결혼 의미에도 더 맞지 않나 생각하게 됐다.
상례, 제례에 있어서도 한국과 다른 풍습을 가진 나라들이 많았다. 특히 사람이 죽으면 화장을 할지 묘지에 묻을지 나라마다 달랐다. 중국은 인구가 너무 많아 묘지금지법이라는 것이 만들어졌다. 반면 유태인들은 웬만해서는 화장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나라 실정에 따라 죽은 이의 사후처리도 달라지는 것. 인도에서는 갠지스 강가에 가서 망자를 화장시키고 베트남에서는 평생 벌어 장례를 치른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돈을 많이 들여 장례를 치른다. 사람의 죽음에 대해 가지는 경건함의 의미는 같지만 어떤 형식으로 장례를 치를지는 나라 사정마다 달랐다. 일본은 고위관료들의 신사참배로 욕을 먹을 때가 많은데 일본인들에게 신사는 자신들의 직계 가족의 제사보다 더 자주 행사를 치르는 곳이었다. 일본에는 신들이 많은데 신들을 모셔놓은 곳이 신사다. 신사에 가서 소원을 비는 경우가 많다는데 야스쿠니 신사의 경우 전범들이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그들에게 전범은 자국을 위해 싸우다 죽은 사람들로 생각돼 신으로 모시는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전범을 신격화해 모신다는 것이 한국인의 시각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있는 것 같다.
형식이냐 실용성이냐. 관혼상제 이야기를 읽으며 두 부분 중 어떤 부분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의식의 결과물이 달라짐을 알게 됐다. 결과물은 나라마다 다르지만 중요한 것은 의식을 치르는 마음가짐이 아닐까. 각 나라들이 마치 짠 것처럼 관혼상제라는 틀을 만들고 의식을 치른다는 자체가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 대통령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런 비슷한 틀이 만들어진 것을 보면 분명 인간사는 비슷한 점들을 내포하고 있는 듯하다. 이로써 지구촌은 관혼상제를 매개로 둥글둥글 통한다는 것을 느낀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