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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계절이 알려준 것들 - 영국, 작은 도시에서의 일 년
노현지 지음 / 있다 / 2023년 10월
평점 :
영국의 작은 도시, 바스(Bath)의 낯선 계절이 알려준 것들
저자는 영국 '바스'에 있는 학교에서 약 일 년 동안 공부하게 된 남편을 따라 만 8살 딸과 6살 아들과 함께 런던행 비행기에 올랐다. 이 책은 그 곳에서 보낸 희노애락을 담고 있다. 부러움의 시선을 보내는 것도 잠시, 나도 남편 따라 해외 생활의 기회를 엿본다. 바쁜 와중에 제대로 된 준비없이 면접을 본 남편은 이번 ****에 발탁이 되지 않을 것이라 말했지만 괜찮다. 서류심사를 통과 하고 면접의 기회까지 얻은 것에서 가능성을 엿보았다. 조금 더 경력을 쌓고, 잘 될 수 있도록 응원하는 것이 나의 일이라 말하나, 사실 너를 따라 나도 휴직하고 싶었다.
각설하고, 영국 잉글랜드 남서부의 작은 도시, 런던에서 차를 타고 서쪽으로 두 시간 반 정도 이동하면 닿을 수 있는 거리 '바스'에는 역사적으로 인류학적으로 유명한 목욕탕이 있다. 현대 유럽 역사의 근간이 된 고대 로마 시대 공중목용탕 유적인 '로만 바스'가 잘 보존되어 있는 이 곳은 도시 전반에 남아 있는 18~19세기의 아름다운 건물들이 과거의 시간을 간직한 채 여전히 사랑받고 있는 곳이다. 영국의 작은 도시들 중에 하나인 코츠월드만을 방문해본 나로서는 '바스'를 가보지 못함이 아쉽다.
낯선 도시에서 살아간다는 것
낯선 문화에 익숙하지 않고, 예상보다 길어진 정착 준비로 불안정했던 나의 경험은 '다름'을 '불편'과 '불만', 가끔은 '틀림'으로 인지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고, 첫인상으로 그런 부정적인 것을 말하는 것은 이 나라 사람들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다. -p134
만반의 준비를 해도 어딘가 한가지 빼먹기 마련이다. 하여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지 못함과, 예기치 못한 사건 사고들로 숨돌릴 틈 없는 일의 연속이 정착하는 과정에서 일어난다. 처음 부딪치는 모든 것들에서 지레 겁먹고, 걱정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하지만 모든 것은 잘 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함이 아닐까? 이제와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저자의 글처럼, 힘들었던 날들에 대한 기록이 필요한 이유가 아닐까 했다.
코스타 커피가 한 잔, 두 잔 쌓여 짙고 쓴 커피 맛에 스며들듯 저자는 영국 문화에 들어갔다. 인상적인 에피소드 한 가지는 아이들의 생일 파티에 이토록 진심이어야하는 부모들의 모습이었다. 동동거릴 정도로 열심히 준비하고, 최선을 다해 놀아줘야하는 그 시간은 아이를 양육하는 부모들간의 숨겨진 또다른 배려와 연대에 있다는 것이 재미있다. 하루씩 돌아가며 진하게 고생하는 대신 서로에게 만들어 주는 부모들의 품앗이 같은 자유시간 -p115 경험해본 적 없으나, 아이들에게 무척 행복했을 시간이었음에는 틀림이 없다.
크리스마스트리를 비롯한 장식용품을 마트에서 보게 되는 요즘, 저자의 글을 읽으며 맞장구 쳤더랬다. 그것은 크리스마스트리에 대한 로망이다. 영국에서는 크리스마스트리로 생나무를 쓴다. 바늘 같은 가느다란 나뭇잎이 바닥에 떨어지고, 운반이 번거롭고, 나중에 처분하는 것이 귀찮아서 요즘은 인공 플라스틱 트리를 이용하는 사람들도 많아졌지만, 생나무가 은은하게 전하는 향기를 포기하지 못해 (생략) -p162 살면서 해보고 싶은 생고생 중 하나로 멋드러진 트리를 만들고 싶은 사람이 나 뿐만은 아니었음을.
계절의 끝에서 순간순간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기까지
낯선 도시에서 한정된 기간만큼 머무른다는 것은 매일이 도장깨기 하듯 재미있는 동시에 일상에서 작지만 소소한 행복을 발견하는 일이 아닐까 한다. 익숙한 사람들은 미처 보지 못하고 지나가는 가운데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그 가치를 알아보는 것이 필요함을 절감한다. 저마다의 모습으로 기억 될 바스에서의 시간들이 누군가는 재미있게 읽고, 공감했고, 살아보고 싶게 만든다면 그것으로 된 것 아닐까.
시간과 반복된 경험이 가져오는 변화는 참 신기하다. 처음에는 신선했던 것이 지겨워지기도 하고, 절대로 수용할 수 없을 것 같던 것들이 내 것이 되기도 한다. -p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