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권일영 옮김 / 예담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플러스 이미지보다 마이너스 이미지의 정보가 열 배는 빨리 퍼진다. 

마이너스 이미지의 정보보다 효과적인 것이 공포심을 자극하는 방법이다.

셀 수 없이 많은 도시괴담을 들었지만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빨간마스크' 다. '입 찢어진 여자'를 소재로 하는 이 괴담의 주된 내용은 "나 예뻐?"라고 묻는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예쁘다고 대답하면 마스크를 벗고 "이래도 예뻐?" 하며 귀까지 찢어진 입을 보여준다. 여기서 "못생겼다."고 말하면 마스크를 벗고 숨겨두었던 큰 식칼을 꺼내고 뒤쫓아온다는 것이다. 지역에 따라 약간씩은 차이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해두고 괴담은 괴담일 뿐이라는 말을 덧붙이는 바 다.

<소문>을 읽고나서 '빨간마스크' 가 생각났는데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도시괴담과 비슷한 면이 있을 뿐더러, 상황에 대입시켜보면 그 끔찍함이 두배가 되는 탓에 기억에 많이 남았다. 혹 '빨간마스크' 와 관련된 이야기를 잘 모른다면 검색해서 찾아본 뒤 이 책을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소문에서 도시괴담으로 등장하는 인물 '레인맨' 과 비교해봤을 때, 빨간마스크도 잔혹하기 이를데 없고 끔찍하다. 두 이야기가 같이 그려지는 탓에 공포감이 더 살았던 것 같아서 입 찢어진 여자 - 빨간마스크와 관련된 이야기를 함께 읽어보는것도 좋겠다. 

"너, 그 소문 들었니?"

"한밤중 시부야에는 뉴욕에서 온 살인마 레인맨이 나타나서 소녀들을 죽이고 발목을 잘라 간대. 하지만 뮈리엘을 뿌리면 괜찮대." 시부야의 여고생들 사이에 퍼진 도시전설이다. 이것은 본디 신상품 향수 론칭을 위한 흥보전략으로 쓰인것이었다여고생들을 이용한 '소문' 을 널리 알림과 동시에 향수판매를 목적으로 하였으나, 판매가 성공한 이후 소문이 현실이 되어 나타난다. 발목이 잘린 소녀들의 시체가 하나 둘 발견되면서 경찰들은 범인을 찾아간다 과연 범인은 누구일까…….

생각치도 못한 반전을 이야기하는 책이므로, 범인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 수 밖에 없다. 반전이 궁금하다면 읽어보자. 생각도 못한 사건을 통해 범인을 다시 보게 되고, 나를 반성하는 계기가 될테니 말이다. 이 책 내용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꼭 말해두고 싶은 것은 기대치를 높게 갖지 말라는 것이다. 그만큼 실망을 하게 될 가능성이 많다.

놀라운 반전에 이르는 마지막 한 문장의 충격! 상상도 못한 결말에 보기 좋게 배반당하는 묘미! 라는 문구에 혹할지도 모르나,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다 읽은 뒤 이 문장을 곰곰이 되씹어보길 바란다. 처음 이 부분을 접하고 읽은 것보다는 책을 덮은 뒤 다시 보았을 때 반전에 이르는 놀라움과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통해 되짚어보는것이 두배는 더 오싹하고 소름이 돋는다.

인간이란 누구나 남에 대한 칭찬보다 욕이나 자극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고, 또 듣고 싶어하죠. - p19

이 책의 주무대 중 하나로 컴사이트라는 회사가 등장한다. 입소문 마케팅, WOM 전략을 적절히 구사하는 이곳은 '소문' 을 만들어낸 곳이지만 겉에서 보면 이 회사의 이미지는 깨끗하다. 나쁜 소문을 꾸미고, 사건을 은폐하는 것과는 거리감이 느껴진다. 그러나 역시 겉보기와는 다르게 속은 까맣다는 것을 외부인으로서는 알 길이 없다. 이런 꺼림칙한 장면들을 읽어가면서 보이는게 전부가 아님을 깨닫게 되고, 어느것하나 마음놓고 믿을게 없다는 것이 새삼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했다.

등장인물 중에는 컴사이트 사장 쓰에무라가 인상적이었다. 그녀의 톡쏘는 말에는 뭐라 반박할 수 없는 것이 있는데 여러 문장을 통해 고개를 끄덕이게만 될 뿐이다. 어디 하나 흠잡으려해도 딱히 이렇다 할만한게 없다. 일리있는 말들로 사람을 휘어잡는 매력이 돋보였던 캐릭터였다. 연속살인사건으로 인해 고통스러워하는 관계자의 사람에게 그녀는 일침을 가하는데 인상깊었던 말은 아래와 같다.

이렇게 생각해보세요. 우리가 칼을 파는 사람들이라고. 분명히 칼은 팔았어요. 하지만 그걸로 사람을 죽일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잖아요? 안 그래요? 만약에 그 칼을 이용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칼을 판 사람을 누가 비난할 수 있죠? 그걸 흉기로 사용한 사람이 문제죠. 칼이 사람 죽이는 도구라고 생각한 사고방식이 문제예요. - p214

매력적인 등장인물과 행동들은 별로 없었지만, 아차 싶었던 일상의 깨달음 주는 장면은 많아서 좋았다. 드러내놓고 보이지는 않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현 문제점과도 동일시되는 부분들이 있다. 일선 경찰들의 태도와, 치열한 경쟁이 불러온 상대를 헐뜯는 것 등은 씁쓸하지만 많은 것을 안겨준다. 단순히 보면 소문이 현실이 된 것에 불과하지만, 이 안을 자세히 살펴보면 많은 것을 담아내고 있어서 좋았다. 보이지 않는 깊이감이 많았던 책이다. 

"WOM의 위력은 대단하죠. 예전에는 누군가 던진 '저기는 위험해'라는 아무 근거 없는 한마디에 예금인출 소동이 벌어져 망한 은행까지 있어요. 전에 있었던 화장지나 쌀 사재기 소동도 주부들 사이에 나돌았던 소문 때문이었죠. 얼마 전에도 인터넷에 올린 단 한 건의 클레임이 대기업 가전 브랜드의 신용을 무너뜨린 사건이 있었습니다. WOM만으로 회사를 망하게 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죠. 사람을 죽일 수도 있습니다. 간토 대지진 때 한반도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많이 학살당했던 이유도 누군가 퍼뜨린 유언비어 때문이었습니다." - 헛된 소문으로 인한 씁쓸한 폐해가 잘 느껴지던 대목이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느멋진날 2009-06-14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빨간마스크 무서워요ㅠ 제가 들었던 괴담은,,키 맞추는 침대? 눕혀서 침대 길이가 남으면 사람을 늘려서 맞추고, 침대 보다 키가 크면 딱 맞게 자른다는?ㅠ

솜다 2009-06-14 17:55   좋아요 0 | URL
아! 키 맞추는 침대.. 저도 들어본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