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맡겨진 소녀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4월
평점 :
"한 소녀가 처음으로 겪는 돌봄과 사랑 "
클레어 키건의 <맡겨진 소녀>를 읽고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3/0526/pimg_7526911563871336.jpg)
“어느 여름 친척 집에 맡겨진 소녀, 그곳에서 처음으로 겪는 다정한 돌봄과 사랑"
- 2022년 부커상 최종후보 클레어 키건의 국내 초역 작품-
아이를 낳고 부모가 되고 나니, 부모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아이를 낳았다고 해서 저절로 부모가 되는 것은 아님을 알게 된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끊임없는 관심과 사랑이 필요함을 아이들을 돌보는 육아 과정에서 매번 깨닫게 된다.
여기 한 소녀의 이야기가 있다. 그 소녀는 애정없는 부모와 많은 형제 자매들 속에서 제대로 사랑과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는 부모가 있음에도 얼굴도 잘 모르는 낯선 친적 집에 맡겨지기까지 한다. 이 책 『맡겨진 소녀』에서 클레어 키건 작가는 애정이 없는 부모로부터 낯선 친척 집에 맡겨진 한 소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일랜드의 시골 마을에 사는 어린 소녀는 미사가 끝난 어느 날, 집이 아닌 엄마의 고향쪽으로 그녀와 아빠와 함께 가게 된다. 소녀는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그 소녀가 향한 곳은 엄마의 먼 친척이 되는 킨셀라 아주머니와 아저씨의 집이다. 소녀의 먼 친척이라고 하지만, 그녀에게는 생판 남이고 모르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낯선 곳, 낯선 사람들에게 맡겨진 소녀는 그곳에서 여름을 보내게 된다. 하지만 걱정했던 것과 반대로 그 소녀는 그 곳에서 찬란한 여름을 맞이하게 된다. 오히려 거기서 지내면서 받은 돌봄과 사랑은 소녀에게서 잊을 수 없는 행복한 기억이 된다. 그곳에서 그녀가 받은 되는 돌봄과 배려, 사랑과 관심은 애정없이 방치되듯이 자란 소녀애게는 모두다 생전 처음으로 받게 된 것이었다. 소녀를 씻겨주는 킨셀라 아주머니의 손을 보며 소녀는 생각한다. 자신이 느끼고 있는 감정이 무엇인지 그녀는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한 번도 느꺄본 적이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이라는 것도 사랑을 받아본 사람이 그것이 사랑임을 아는 법이니깐.
아주머니의 손은 엄마 손 같은데 거기엔 또 다른 것, 내가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어서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는 것도 있다. 나는 정말 적당한 말을 찾을 수가 없지만 여기는 새로운 곳이라서 새로운 말이 필요하다.
-p.25
어쩌면 부모라면 아이를 먹이고 재우고 씻기고 하는 돌봄과 육아가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의무조차 소홀히하며 아이를 방치하는 부모도 있다. 물론 그 이유가 먹고 사는데 바빠서, 너무나 돌봐야할 아이들이 많아서와 같은 이유일 수도 있지만, 부모 곁을 떠나 먼 친척 손에 맡겨진 소녀가 처한 상황이 안타깝기도 하다. 작가는 그 소녀가 그 곳에서 지낸 여름의 나날들을 작품 속 화자인 '나'의 시선으로 보여준다. 아이의 시선과 생각으로 그려냈기에, 아이의 심리나 감정이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마치 아이가 쓴 일기처럼 소녀는 자신의 일상을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다. 하지만 그 짤막한 문장들 속에서 아이의 생각과 마음이 묻어난다.
소녀를 잠시 맡아서 돌보게 된 킨셀라 아주머니와 아저씨는 소녀가 집에 머무르는 동안 그녀의 부모보다 더 각별한 애정과 관심을 기울인다. 마치 자신의 딸처럼, 그들은 소녀가 낯설어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도록 그녀를 살핀다. 그 덕분에 소녀는 그들로부터 '사랑'이란 무엇인지, 돌봐진다는 것이 무엇인지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부모의 사랑과 가족의 따뜻함을 알게 된다.
"불쌍하기도 하지." 아주머니가 속삭인다. "네가 내 딸이라면 절대 모르는 사람 집에 맡기지 않을 텐데."
-p.34
그들 또한 자식을 키워보고 불의의 사고로 자식을 잃어봤기에 소녀를 안타까워하고 더 잘 돌보려는 것은 아닐까. 그들의 모습은 마치 <빨강 머리 앤>에서 앤을 맡아서 사랑으로 키웠던 마닐라와 매슈 남매와 닮아 보인다. 미사에 입고 갈 제대로 된 옷 하나 없던 소녀에게 예쁘고 깨끗한 새 옷을 사 입히고, 함께 집안 일도 하면서 이야기도 나누고, 멋진 풍경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 모든 작지만 소중한 기억과 그들의 사랑이 소녀의 마음 속에 남아 찬란했던 한 여름의 추억을 선사하기도 한다.
“아저씨가 손을 잡자마자 나는 아빠가 한 번도 내 손을 잡아주지 않았음을 깨닫고, 이런 기분이 들지 않게 아저씨가 손을 놔줬으면 하는 마음도 든다. 힘든 기분이지만 걸어가다 보니 마음이 가라앉기 시작한다. 나는 집에서의 내 삶과 여기에서의 내 삶의 차이를 가만히 내버려 둔다.”
-p. 69~70
오히려 다시 돌아가게 된 집에서 소녀는 낯설고 불편한 감정을 느낀다. 여전히 자신에게 애정도 관심도 없는 그녀의 부모, 새로 남동생까지 태어나서 앉을 자리도 없는 너무나 많은 아이들의 모습 속에서 소녀는 전혀 집으로 돌아온 안정을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돌아가는 킨셀라 아저씨의 품을 향해 전력질주해서 달려간 것일까. 한 번도 자신을 안아주지 않았던 아빠보다 자신을 살뜰히 챙겨주고 함께 시간을 보냈던 킨셀라 아저씨의 품에 안기고 싶었을 것이다. 자신을 바라보는 진짜 아빠보다 자신이 안겨있는 킨셀라 아저씨가 더욱 아빠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그 장면에서 너무나 가슴이 뭉클해졌다. 마치 영화 속 마지막 장면을 보는 듯이 그 장면이 머릿 속에 그려지면서 어느덧 눈에 눈물이 고였다.
"아빠," 내가 그에게 경고한다. 그를 부른다. "아빠."
-p. 98
'아빠'라고 부르는 그 소녀의 한 마디가 책장을 덮고 나서도 내내 머릿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비록 98페이지의 짧은 분량이긴 했지만, 가슴 시리도록 아프고 아름다운 이야기는 우리에게 감동을 선사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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