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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타 이슬라
하비에르 마리아스 지음, 남진희 옮김 / ㈜소미미디어 / 2023년 6월
평점 :
"심리묘사가 돋보이는 결혼과 인간에 대한 철학적 고찰 "
하비에르 마리아스의 <베르타 이슬라> 를 읽고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3/0628/pimg_7526911563909979.jpg)
“가장 가깝지만 안다고 말할 수 없는 사람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얼마나
특별한 일일까.”"
-스페인 비평상 수상한 스페인의 국민 작가 하비에르 마리아스의 장편소설-
우리는 과연 우리의 배우자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어쩌면 가장 가까운 사이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장 멀리 있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배우자가 가장 가깝게 우리 곁에 있어서 우리는 그 사람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착각일 수도 있음을 이 책 『베르타 이슬라』를 통해 새삼 깨닫게 된다.
이 책 『베르타 이슬라』는 스페인의 국민작가인 하비에르 마리아스의 작품이며, 뛰어난 심리묘사와 결혼에 대한 철학적 고찰로 인해 그는 이 작품으로 스페인 비평상을 수상하였다.
이 책 속에서 작가는 한 부부의 결혼 생활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 결혼 생활은 결코 평범해보이지 않다. 기약없이 떠난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 끊임없이 어딘가로 떠나는 남편 그들의 결혼 생활은 떠남과 기다림의 연속처럼 보인다. 그리고 남편에게는 너무나 비밀이 많아 보이고 의심스러운 것 투성이다. 그는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유령같아 보인다.
1960년대 프랑코 독재 시절, 마드리드의 학교에서 만난 소녀 베르타와 토마스는 사랑에 빠지고 서로를 삶의 동반자로 선택을 하게 된다. 스페인 태생인 베르타와 달리 토마스는 스페인과 영국의 피가 반반 섞였다. 어쩌면 이런 토마스의 혼혈적 특성이 그의 스파이 활동에 영향을 준 것일지 모른다. 그들은 서로 사랑하지만, 토마스는 베르타의 곁을 떠나 영국에서 공부하게 되고, 일련의 불행한 사건으로 그는 비밀정보부 요원으로 활동할 것을 강요받는다. 어쩔 수 없는 선택과 강요로 그의 삶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유령의 삶을 살게 된다.
토마스는 더 심한 유령이 될 것이다. 살아 있지도 죽지도 않은 유령. 자식들조차 기억하지 못 할 유령. 자식도 기억을 못 할 텐데 누가 기억을 하겠는가? 풀 한 줄기, 먼지 한 톨, 흩어져가는 안개, 떨어지면서 뭉치지도 못하는 눈송이, 재, 벌레 한 마리, 한 줄기 바람, 결국 스러지고 마는 한 줄기 연기.
-p.488
그렇게 유령같은 삶을 살아가는 토마스를 보며 아내인 베르타는 불안과 의심에 시달리며, 기약없이 떠나는 토마스를 하염없이 기다린다. 이 책의 제목이 '베르타 이슬라' 라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작가는 베르타의 심리와 생각을 중심으로 스파이 활동을 하며 유령같은 삶을 사는 토마스와의 결혼 생활을 들려준다. 떠남과 돌아옴을 반복하는 남편 토마스를 보며 과연 아내인 베르타는 무슨 생각을 할까. 남편으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요구할 수도 없고, 남편 토마스가 하는 일에 대해서도 궁금해하거나 물어봐서는 안 된다. 아무 것도 묻지 말고, 아무 것도 알려고 하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토마스가 베르타에게 요구하는 것이다.
나는 그 결정으로 우주에서 추방된 사람이 될 거야. (…) 나는 내가 아닌 사람이, 허구의 사람이 될 거야. 이리저리 오가는, 멀어졌다가도 다시 돌아오는 환영이 될 거야.
-p.192
존재하지만, 존재하는 아노는 것, 실행했는데 실행하지 않는 것을 과연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마치 우주에서 추방된 사람처럼, 내가 아닌 다른 사람, 허구의 사람처럼 산다면 과연 어떨까. 자신의 존재를 증명조차 하지 못하고 어둠 속에 항상 숨기고 흔적도 없이 사라져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조차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조차 할 수 없다.
부부이지만, 결코 함께 할 수 없고 마음을 나눌 수 없는 반쪽짜리 부부, 허울뿐인 부부의 모습을 작가는 베르타의 심리묘사를 통해 느끼게 한다. 베르타는 떠남과 기다림에 익숙한 삶을 살면서도 남편에 대한 갈망과 기대를 버리지 못한다. 그 속에서 오는 긴장과 갈등으로 혼란스러워한다. 유령같은 남편의 상황을 이해한다고 하지만, 여전히 그녀는 남편과 함께 살아갈 미래를 꿈꾸기도 한다. 그런 심리갈등과 긴장을 베르타의 독백 속에 잘 드러냈다.
어쩌면 우리가 사는 삶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우리 곁에 가까이 있지만, 정작 우리는 얼마나 우리 주변 사람들에 대해 알고 있을까. 특히 한 집에서 함께 잠을 자고 함께 생활하는 배우자나 가족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을까. 토마스처럼 우리 또한 우리만의 내밀한 슬픔과 자기만의 비밀을 감추고 있지 않을까.
이 책 『베르타 이슬라』를 통해 사랑과 진실, 결혼에 대한 진실과 거짓, 존재의 불확실성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특히 베르타의 심리를 통해 결혼에 대해 철학적으로 고찰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우리 자신의 내면을 되돌아볼 수 있었다.
"사람들은 언제나 약속할 수 없는 것까지도 약속한다"(p. 296)
또한 끊임없이 베르타에게 거짓 약속을 하는 토마스를 보면서 과연 부부 사이의 신뢰에 믿음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된다. 우리 또한 변명과 거짓으로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지킬 수 없는 거짓된 약속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토마스가 베르타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거야.' 라고 약속할 수 없는 것까지 약속을 한 것처럼 말이다.
700페이지 이상의 방대한 벽독책임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인물을 통한 섬세하고 예리한 심리묘사와 인간 관계의 본질에 대한 심오한 통찰로 인해 가독성이 좋아서 몰입하며 읽을 수 있엇다. 마치 인간 관계에 대한 철학책을 읽은 것처럼 결혼과 관계에 대한 철학적 고찰과 통찰이 돋보였다.
나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떠올리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어떤 생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고 앞으로도 모를 것이다. 우리는 각자만의 내밀한 슬픔을 안고 있다.
-p. 739
이 글은 소미미디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료로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